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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 Jul 15. 2019

나른한 오후4시

엄마가 잠든 사이


여름날의 나른한 오후.


저녁즈음에 비소식이 있어서일까.

하얀 이불을 덮은듯 몽실몽실한 구름뿐인 하늘 어디쯤 게으른 해님이 쿨쿨 낮잠을 자고 있을것 같 오후다. 나른한 하늘을 보자니 밀려오는 잠을 애써 깨우기 싫어다. 잠시 눈꺼풀이 무겁다 싶더니  마음 한 목소리로 피곤하다 아우성 친다. 이미 남편 거실바닥에 대자로 뻗어 잠이 들었다.


주부도 일요일엔 좀 쉬어야 한다는 나름의 합당한 변명을 준비하고, 행주 삶는것도 나물 다듬기도 녁 찬거리 걱정도 잠시 접어두고 방에 들어가 무작정 누워 버렸. 마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리더니, 이내 꿈결인듯 희미해지며 눈이 스르르 감긴다.

 낮잠이 들나 보다.




여름날 오후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가끔 헷갈릴때가 있다. 지금이 아침인 저녁인가하고...창밖이 아직 너무 환해서 잠시 착각을 했다.


7월은 해가 하늘에 늦도록 떠 있기에 8시가 다 되도록 어둠이 내리지 않는다. 단잠을 깨고보니 날빛도 환하고, 내가 잠이 든 시점에서 시간이 멈춘듯 모든게 그대로였다. 마당에서 떠드는 아이들 소리도 여전하고, 남편도 여전히 잠에서 깨지 않고 코를 골고 있었다. 어머니는 마실 가셨다 아직 귀가하지 않으셨고, 큰애와 둘째는  이층에서 무얼 하는지 조용조용 기척 없다.


낮잠을 자는동안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게 신기했다. 그 누구도 엄마, 아내,며느리를 한번도 찾지 않았다는것도... 주방부터 거실 욕실까지 한번 쭈욱 둘러보아도 모든게 그대로다. 컵하나 까지도 다 가지런히 제자리에 있다.  옷가지 인형 장난감등이 제멋대로 어질러져 있고, 주방의 접시와 컵등이 여기저기 나와 있 않음 마땅히  다행스러워 해야 하는 어떨땐 그걸 인정하기가 왜 썩 내키지 않은걸까.




식구중 나를 아무도 찾지 않았고 깨우지 않았어도

얌전히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친근한 아이들이 있다. 설거지해 엎어놓은 밥그릇들, 어머님이 저녁 찬거리 밭에서 주섬주섬 캐다놓은 아씨 정구지(부추), 마당에 널어놓은 빨래들 그렇다. 매일매일 내 손길이 닿아 더 애정이 가는 아이들이다.


반질반질 예쁘게 닦아 주셔요

저는 바싹하게 구워 드셔요

예쁘게 개어 사용해 주셔요



사실 집안의 모든 바닥부터 소파, 문짝, 숟가락 젖가락, 냉장고속 작은 나라의 반찬통 하나, 크고 작은 쓰레기통에 이르기까지 나의 손이 닿지 않은게 거의 없을 정도다.


아이들이 어느정도 자라니 막내를 제외하곤, 식사때 밥이나 챙겨주고 나온 옷가지들 세탁해주고, 용돈 달라고 손 벌릴때 조금 쥐어주는것 외의 엄마로서의 역할에 가끔 공허함을 느낄때가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예전에 없던 살림집착이 생겼다. 그릇은 더 반질반질 윤이 나야 하고,  걸레와 행주는  이틀이 멀다하고 유난떨며 삶아 널고는 바람에 잘 마르고 있나 오며가며 괜히 건드리며 확인하곤 한다.



가끔  더 열심을 내어 청소했다 생각이 드는 날, 셀프인테리어로 분위기를 약간 전환해 본날에 남편이나 아이들에게 물어본다. 머 달라진거 없냐고... 늘 기대와 달리 달라진걸 알아채는 어른이나 아이는  없었다.




남편이 잠이 깨었나 보다.

머 먹을거 없나?

저녁식때가 넘었으니 냉장고를 뒤적거리는 남편의 행동은 전혀 이상스러울게 없어도, 한번씩 쿡 찌르듯 되묻는다.


"당신은 밥 챙겨주는 사람, 빨래 해주는 사람이 필요한가요, 아님 내가 필요한 건가요!"


여름날의 오후 4시처럼

나른한 중년을 지나는 어느날

난 가끔 헷갈릴때가 있다.


그들이 필요한게 정말 '나' 일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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