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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abica Duck Dec 29. 2021

12월 1주 차

집중하다 :  한 가지 일에 모든 힘을 쏟아붓다.


 생존. 인간의 삶을 한 단어로 말하라면 생존보다 더 어울리는 단어는 없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그 순간까지 살아있기 위해 힘쓴다. 크고 작은 호흡을 반복하고, 먹고 마시기를 반복하고, 움직이길 반복하며 그 마지막까지 살아있으려 한다. 삶은 마라톤과 같다고들 하는데 그 긴 주로를 걷는 동안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생각에 치여있다보면 인간은 제 일 목적인 생존이 어딘가 파묻혀 생존을 하기 위해 살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행동이 생존을 위한 것임을 잊게 된다. 그렇지만 한 인간이 처음 스스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정할 때에는, 가령 성인이 되어 처음 나가 산다던지, 생존만을 생각하게 된다. 소민이 공항에서 도망을 치고 다시 도심으로 돌아갈 때 소민 마음속에는 생존보다는 소민의 마음을 빨아들이는 한국, 그 문화를 무척 매만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개장이 있으면 폐장이 있는 것처럼 어느 시점부터 자신이 잊고 있던 혹은 한 번도 인지하지 못했던 의식주의 해결 부상하기 시작했다. 아는 사람도, 돈도, 갈 곳도 없는 소민은 문제가 코 앞에 닥 처서야 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다행히 여름이었기에 길에서 자도 그나마 살 가능성은 높았다, 며칠을 밖에서 자면서 지내는 소민에게 한 행인이 경찰서로 데려다줬다. 묻는 말에 불어로만 답하는 소민이었지만, 기술 덕분에, Thanks Google~, 힘겹게 소통을 하고는 경찰에게 데려다준 것이다. 다만 소민은 그 힘겨운 생존에서도 한 가지는 고수했는데 바로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는 것. 경찰서에서도 불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겨우 핸드폰에 의존했다. 경찰은 소민의 원칙은 무시한 채, 상황과 아이의 나이 등을 고려하면 어른의 판단이 맞을 것이라는 통념적인 판단으로, 대사관에 연락해 로랑과 연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무렵 로랑은 한국에 여전히 머물고 있었다. 아니 떠날 수 없었다. 공항에서 소민을 기다리다 시간이 지체되자 소민을 찾기 시작했고 소민이 보이지 않자 공항 사무실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공지를 했음에도 소민을 찾지 못했다. 항공사 측에 연락을 해 혹시 아이가 혼자 타면 알려달라 언질을 하고, 소피는 부득이하게 소피의 아버지에게 한국에 와 데려가라고 부탁을 해두어 그때까지만 함께 하기로 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친숙한 곳으로 간다는 점을 생각하며 다시 머물게 된 며칠 동안 소민과 갔던 모든 곳을 돌아다녔지만 작은 우연으로도 찾지 못했다. 로랑은 소민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소민이 한국에 남고 싶다면 자신도 함께 서울에 있어야겠다는 다짐을 자신의 신께 고백하며 다시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기도, 인간이 무능에 맞닥뜨리면 결국 신을 혹은 악마를 찾아 그 간절함을 고하는 법이다. 그 간절함 앞에서는 현실은, 현실적이었던 것들을 뭉개고 오직 한 가지 염원만이 현실이 될 뿐이다. 나머지는 그에 맞춰 변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기도를 하며 매일같이 소민을 찾던 중 대사관에서 소민을 데리고 있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소민은 로랑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을 경찰에게 들었을 때는 기쁜 마음보다는 결국 한국을 떠나야 하는 건가 싶어 좌절했다. 하지만 막상 로랑을 마주하게 되자 눈물이 나면서 그대로 달려가 부둥켜안고는 미안하다고 했다. 로랑도 소민을 안으며 늦게 찾아서 미안하다며 몸은 괜찮은지, 얼마나 걱정을 많이 했는지, 또 신께 다시 만날 수 있게 하심에 감사를 표하며 소민에게 숙소로 돌아가자고 했다. 경찰에게 감사를 표하고 숙소에 돌아와, 소피는 이미 돌아간 후였다, 로랑은 소민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소민은 한국을 떠나기 싫은 마음에 로랑이 허락을 절대 하지 않아 공항에서 도망쳤음을 이야기했고, 그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서 로랑은 소민에게 한국에 살고 싶으면 한국에 살자고 이야기했다. 소민은 그 말에 무엇보다 기뻐하며 다시 울며 로랑에게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할 뿐이었다. 그렇게 소민은 긴 시간을 걸쳐 한국에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간절함의 크기와 성취는 비례할까. 우리가 무엇을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은 간절함이 크기 때문일까, 혹은 우연일까. 마음을 쏟는 만큼 이룰 수 있는 것일까, 혹은 우연일까. 인생은 이뤄내는 것일까, 이뤄지는 것일까. 어떤 일은 간절한 만큼 이뤄지고 어떤 일은 간절해도 이뤄지지 않는 것은 삶이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관적이지만 인생에 희망이란 없다. 그냥 우연히 무엇은 되고 무엇은 되지 않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우연적인 일조차 일어날만해 일어났기에 필연적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지금을 사는 인간에게는 우연일 뿐이다.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고 그 속에서 우리는 우연이든 우연이지 않든 기대하고 노력하고 생각하며 사는 각 개인일 뿐이다. 소민이 한국에서 태어난 것, 프랑스에 입양된 것, 그림에 빠지게 된 것, 다양한 경험을 하며 그림의 이해를 높인 것, 다시 한국에 간 것 그리고 한국에 남게 된 것, 그 모든 것은 우연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후의 삶이 소민을 세상이 알아주는 천재로 만들지 혹은 한 명의 소시민으로 만들어 그 삶을 살게 할지는 알 수 없다. 소민이 그 생명 다할 즈음 자신의 주마등을 스치며 바라볼 때 소민은 자신의 삶에 일어난 것들이 다 일어날 법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모든 것은 우연히 일어났을 뿐이다. 소민이 간절했든 간절하지 않았든, 노력했든 노력하지 않았든, 생각했든 생각하지 않았든, 모든 것은 우연에 불과하고 소민은 우연들이 만드는 삶을 한 편 살아갈 그리고 살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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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럽지만 저의 후반기 소설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더 이끌어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고도 생각을 했고(남은 주제를 스토리와 엮는 것이 쉽지 않은 부분) 12월 즈음에는 마무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다시 예전 스타일 글도 한 두 편은 쓸 생각이었습니다.) 이렇게 끝을 냈습니다. 처음보다 힘에 부친 점도 많고 어려운 점이 많아 쉽지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나름의 한 작품을 만들어낸 것에는 자부심을 가져보려 합니다(순 엉터리 글일지라도 말이죠) 몇 자 더 붙이면 나는 소설은 못쓰겠다 느끼기도 했습니다, 스스로 느낀다면 읽는 사람은 어떨지 알기에 더 슬프군요,

올해는 다 끝났지만 저의 글은 아직 올해가 다 가지 않았기 때문에 남은 날들도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좋은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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