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urquoise Sep 15. 2015

잔인한 세밀함, 지독한 애달픔

내일 할 일 - 윤종신

연인과의 이별은 제 아무리 아름다워도 아픈 법이다. 느릿한 선율을 잘 차려 입은 노래일지라도 그 속에 새겨진 이별은 바짝 독을 품은 가시 같아서 그 쓰라림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가슴을 후벼 파는 송곳이 되기도 한다. 많은 '이별 노래'들이 그처럼 멋지게, 심지어는 황홀하게 절망의 과정을 묘사하곤 한다. 해가 갈수록 그 세밀함은 더 정교해져 이젠 실제로 이별하는 '연인이었던 자들'의 얘기가 시시해 보일 정도라니. 음악가들의 '잔인함'도 점점 진화하고 있다.


윤종신은 이별에 대한 '잔인한' 묘사로 우리나라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뮤지션이다. 그의 음악 스펙트럼은 너무 넓고 깊어서 사실 이별 노래로만 국한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팥빙수에 대한 오랜 연구 결과를 음악으로 승화시킨 케이스는 너무나 유명해서 매년 여름 동네 빵집 앞에 붙은 사진만 봐도 콧노래가 자동 재생될 정도다. <수목원에서>, <그대 없이는 못 살아> 같은 노래를 듣고 있자면 윤종신이라는 사람은 어느 곳에 있든, 어떤 상황에 놓여 처해 있든 독창적이고 세밀한 자신만의 노랫말을 찾아낼 수 있는 '꾼'이구나 하는 감탄이 새어나온다. 팬의 한 사람으로서, 그의 음악 중 한 곡만을 베어낸다는 것이 민망하고 불안할 따름이다.


<내일 할 일>은 그의 이별 노래 중 '잔인한'걸로는 단연 돋보이는 곡이다. 이것은 이별하는 사람들을 그린 것이 아닌, 헤어지는 연인의 슬픔을 담은 것도 아닌, 어떻게 보면 이별 노래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미스터리 한 시점을 절묘하게 캐치한 노래다. 내일 헤어짐을 결심한 사람, 일반적으로 이별의 '가해자'로 치부되는 악역을 화자로 출연시켰다는 점도 파격이다. '하드보일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떠오르는 생각 그대로의 '날 것'을 별다른 수사 없이 조곤조곤 되뇌이며, 심지어 연인을 타이르듯 평온하게 이별을 예상하는 화법은 일반적인 이별의 상징과는 거리가 있어 혼란을 불러 일으킨다. (그것이 매력이긴 하지만) 거기에 '사랑하니까 널 보낼게'처럼 구태의연하게 '피해자 코스프레'도 하지 않고 내일 일으킬 사태를 조용히 곱씹어보는 모습은 한켠 섬뜩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이 노래는 지독히도 슬프고 애달프다. 고요한 잠자리에 누워 있지만 이명(耳鳴)이 들릴 정도로 격렬하게 내일을 걱정하는 모습은 젊은 날 가슴앓이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려봄 직한 그림이다. 오랜 연인 사이였기에 헤어지자고 말하는 순간 어떤 표정을 지을지 가늠할 수 조차 없다는 얘기는 지지고 볶으면서도 서로를 종교처럼 믿고 살아온 연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범인(犯人)만이 알고 있는 디테일이다. 그리고 내일은 괜찮을지 몰라도 그 다음 날부터 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외침, 단호한 이별 통보를 준비하고 있지만 내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미련을 애써 감추는 모습이기에 더 안타까운 것이다.


이른 아침 일어나야 해 내일 우리들의 이별하는 날
평소보다 훨씬 좋은 모습으로 널 만나야겠어.
조금도 고민 없던 것처럼
태연한 표정이 아무래도 서로 잊기 좋겠지.

이별 직후 검색해보면 혼자 볼만한 영화들이 뜨네.
가슴 먹먹해지는 것부터 눈물 쏙 빼는 것까지
내일은 빠듯한 하루가 되겠어.
우리 만나 널 보내랴 무덤덤한 척하랴

안녕 오랜 나의 사람아 하루 종일
이별 준비야 너 떠난 뒤가 막연했기에
아무리 떠올려 봐도 그려지지 않는
너의 이별표정도 이 밤 지나면 보게 되겠지
안녕 오랜 나의 사람아 내일 슬프지 않기로 해
마지막은 기억에 남기에
눈물은 미련이라는  것쯤
서로의 가슴은 알기에 우리 편하게 내일 이별해

내일은 괜찮아도 바로 다가오는 다음 날부턴
단 하나의 준비조차 없는데
그 날부터 난 뭘 해야 하는 건지

안녕 오랜 나의 사람아 하루 종일
이별 준비야 너 떠난 뒤가 막연했기에
아무리 떠올려 봐도 그려지지 않는
너의 이별표정도 이 밤 지나면 보게 되겠지
안녕 오랜 나의 사람아 내일 슬프지 않기로 해
마지막은 기억에 남기에
눈물은 미련이란  것쯤 서로의 가슴은 알기에
우리 편하게 내일 이별해

이제 그만 잠을 자려해 아마 나는 잘 할 수 있을 거야
수많았던 우리 만남들 중에서 그 마지막을


윤종신의 음악을  오래전 그 날부터 좋아했던 지금의 아내가 좋아하는 노래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다. 우리는 이제 노랫말 속 남자, 혹은 여자처럼 서로에게 혹독할 순 없을 것이다. 다만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하며 치열하게 사랑했던 지난 10여 년 중 가장 고통스럽게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던 어눌함을 담고 있는 노랫말이기에, 앞으로도 함께 살아갈 나와 내 아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한 곡이다.


성시경의 리메이크 뮤직비디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