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urquoise Oct 07. 2015

폴크스바겐을 위한 변명

'제국' 이후의 시대 vs. 자동차 전국(戰國)시대

장사치가 '호갱'을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것이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이겠습니까마는, 폴크스바겐 사태는 가히 전대미문의 경지라 할 만합니다. 일단 그 규모 자체가 타의 추종을 불허하죠.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윈도우에 해킹 프로그램을 넣어 아무도 몰래 판매하고 있었다! 라든지, 이케아사에서 배송을 위탁받은 물건을 의도적으로 저급 품질의 제품으로 교체하여 발송하고 있었다! 라든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건이 하나쯤 더 벌어져야 폴크스바겐 사태와 비견할 만하겠네요. 자동차 업계를 들었다 놨다 하는 이슈의 장본인이 전 세계 자동차 메이커 규모 1위에 빛나는 기업이라니. 현재 진행형인 '사건'임에도 저는 잘 믿어지지가 않을 정돕니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가 저지른 일이라는 것을 제쳐두더라도 '호갱'을 양산하려고 했던 폴크스바겐의 이번 '짓'은 자동차 업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수법인  듯합니다. 대규모 리콜 사태를 겪었던 GM은 엔진 결함을 10년이나 숨기고 있다가 그로 인한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주장이 나오자 무릎을 꿇었죠. GM 사태의 핵심은 '은폐하다'로 축약해볼 수 있겠습니다. 도요타의 경우도 비슷했죠. 페달 문제를 끝까지 아니다 아니다 잡아 떼다가 결국 리콜을 하며 고개를 숙이고 만 사건, 이 경우는 '인정하지 않다' 정도로 볼 수 있겠네요. 사이즈는 조금 다르긴 합니다만, 현대차의 연비 문제가 불거졌던 건 어떨까요. 연비를 과장해서 나타냈다고 하여 미국의 제재를 받았던 것 말이죠. 결국 현대차도 제기된 문제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문장으로 줄여본다면 '과장하다' 정도면 될 것 같네요.


(모두가 아시다시피) 폴크스바겐은 다릅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속이다'라고 단정 지을 수 있겠습니다. 벌써 서술어의 느낌이 앞선 사례들과 다른 게 느껴지시죠. 폴크스바겐 사태는 제품과 연관된 무엇을 숨기거나 부풀린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전의 어떤 사례보다도 '공격적으로' 제품의 부족함을 메우려 했다는 점, 그리고 '매우 열심히' 고차원적인 방법으로 고객은 물론 각 나라의 환경·교통 당국까지 기만했다는 점, 폴크스바겐 사태가 공분을 사는 이유일 겁니다. (주행 여부를 판단하는 프로그램을 심어서 연비 테스트 여부를 자동을 판별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니, 그걸 만들 품으로 디젤 기술을 한 뼘이라도 더 발전시키지 그랬나 싶은 생각이네요)

폴크스바겐 파사트 TDI 엔진 / 요기 어딘가에 조작 장치가 들어있다는 얘기군요. (자료 출처 : 로이터)

폴크스바겐이 이번 '스캔들'을 잠 재우기 위한 비용으로 천문학적인 액수(추산치마다 약간씩 다르긴 하지만 제가 본 제일 큰 액수는 100조 원을 넘기더군요)를 지출해야 할 것이라는 보도가 연일 쏟아지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같은 '충격과 분노' 때문일 겁니다. 리콜 비용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빗발칠 소송 결과에 따른 배상, 미국 환경보호청 벌금, 거기에 떨어진 주가로 인한 시가총액 증발까지. 폴크스바겐 입장에서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이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겠다 싶습니다.


하지만 한편 이런 생각도 듭니다.


어떻게 입증할 것이냐


폴크스바겐이 적극적으로 '사기'를 쳤다는 부분에 대해선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연비 테스트를 속여왔던 것이 소비자에게 '얼마나' 손해를 입힐 수 있느냐는 것이죠. 물론 유·무형적인 손해를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폴크스바겐 사태가 연일 보도되면서 기존 구매자들에게 상대적인 박탈감을 안겨주는 부분도 분명 있을 테고요. 중고차 가격이 떨어지는 영향도 꽤 오랜 시간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 실제 연비가 좋지 않기 때문에 연료를 더 많이 소모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죠. 실제로 소송이 제기되는 쟁점이 바로 이런 부분들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증명할 것이냐는 겁니다.


법률적인 지식은 딱히 없습니다만 소비자가 폴크스바겐에 소(訴)를 제기한다면 어떤 부분에서 얼만큼의 손해를 입었는지 입증해야 하는 쪽은 (상식적으로 봐도) 소비자 쪽입니다. 그런데 이번 '스캔들'의 경우, 연료 과다 사용 부분을 제외하고는 소비자가 입은 손해를 정량화하여 표현하기가 난감할  듯합니다. 기존 구매자가 느끼는 불명예스러움과 박탈감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추산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 이걸 누가 도식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설령 그려내어 보여준다고 한들, 그게 적확하다는 합의는 어떻게 이끌어낼지도 의문입니다. 앞서 폴크스바겐 사태가 다른 자동차 메이커들과의 사례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고 말씀드린 부분이 이 지점에서도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유사 스캔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독보적'인 수법을 썼기 때문에 다른 어떤 모델을 도입해도 소비자 불만을 구체화시키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중고차 가격 하락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폴크스바겐이라는 메이커가 좋지 않은 이유로 자주 노출되는 것은 분명 중고차 가치에도 영향을 준다. 누구나 이렇게 여기긴 합니다만, 어느 정도나 가치를 떨구는 역할을 했느냐가 문젭니다. 중고차 가격이 떨어지는 이유가 폴크스바겐 스캔들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이건 또 누가 어떻게 증명할 건지 궁금합니다.

차 값 떨어지는 이유가 어디 한둘이어야 말이죠 (자료 출처 : 로이터)

유류비에 대한 부분은 어떨까요. 이건 앞선 쟁점들과는 달리 어느 정도의 배상은 피해갈 수 없을  듯합니다. 간단히 생각해서 수학적인 계산만으로도 상당 부분 입증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단, 계산은 계산일 뿐, 그것을 실증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일 겁니다. 살인 사건을 비롯한 형사 사건에서도 정황적인 증거는 직접적인 기소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알고 있는데, 이 케이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즉, "자동차 유류비가 폴크스바겐의 조작이 아니었으면 더 적게, 이만큼만 나왔을 것이다"라는 주장은 "이런 저런 상황을 고려해보고 현장 상황을 봤을 때 A가 범인임이 틀림없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살인 도구', 폴크스바겐 사태에 대입하면 '실측 자료'를 소비자 측에서 제시해야 한다는 겁니다. 계산에 의한 추론이 아닌 실측에 의한 직접 증거, 이건 확보해두고 소송을 제기한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위의 쟁점들을 소비자 측에서 충분히 증명했다고 해도, 폴크스바겐은 모든 청구 금액을 낼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각 국가 법원마다 판결을 다르겠지만) 증명된 손해를 원고 측에서 주장하는 대로 모두 들어줄 것이냐는 건 누가 봐도 회의적이지 않을까요. 폴크스바겐이 져야 할 책임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하는 과정이 또 필요할 겁니다. 그럼 최대 110조 원까지 예상됐던 '스캔들 진정 비용'은, 어쩌면 폴크스바겐이 어렵지만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 그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게 그렇게 나쁜 거냐


아, 물론 나쁩니다. '사기'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짓을 했으니 죄질이 매우 안 좋다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그게 그렇게 '죽을 죄'를 지은 것이냐는 생각도 듭니다. (사례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판결이 있었다고 하죠. 갈비를 판매할 때, 갈비뼈에 살코기를 인위적으로 붙여 판매해도 그것은 갈비가 맞는 것으로 인정한다는. 대학 교양 수업 때 이런 판례가 있다는 걸 듣고 경악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기억하는 판결의 취지는 이랬습니다. 상업적 판매를 하는 주체가 약간의 과장을 하는 것은 어느 정도 허용될 수 있는 부분이다 라는 것입니다.


폴크스바겐 사태와 접을 붙여 본다면 어떨까요.

"연비에 대한 '사기'를 친 것은 맞으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타고 다닐 수 없을 만큼 이상하거나 치명적인 자동차를 만들어 판 것은 아니지 않으냐" 이런 논리도 가능해 보입니다. 실제로 그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자동차가 좋다 나쁘다를 말할 때 주로 언급되는 것은 주행 성능과 내구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흔히 '독일 명차'라고 불리던 이유도 바로 탁월한 엔진 퍼포먼스와 탱크 같은 내구성이었죠. 폴크스바겐 자동차는 '스캔들'이 있기 전에도, 있은 후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주행 능력과 '단단함'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업계 친구의 말에 따르면, 요즘은 폴크스바겐 자동차가 예전만큼 내구성이 좋지는 못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좋지 않은 쪽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고 하네요. 차체의 단단함, 굳이 말하자면 차체 강성 정도로 갈무리하면 어떨까 싶어 수정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연비 조작 여부와 폴크스바겐 자동차의 주된 메리트가 서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죠. 물론 연비 부분이 넓은 의미에서 '주행 성능'에 포함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폴크스바겐 자동차는 '높은 연비'를 주무기로 마케팅을 했던 메이커는 아니었습니다. (폴크스바겐 자동차 연비가 좋지 않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일반적으로 '고연비' 메이커라고 하면 일감 떠오르는 메이커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한 축으로 삼는 일본 브랜드이거나 고속 주행보다는 안정적인 도심 주행에 주안점을 둔 (독일을 제외한) 유럽 브랜드이지 않았을까요. 많은 소비자들도 높은 연비를 위해서라면 폴크스바겐보다 다른 대안에 먼저 눈길을 돌릴 겁니다. 그러니 '연비 조작 스캔들'로 인해 "전체적으로 주행 성능에 문제가 있는, '이상한' 자동차를  팔았다"라고 주장하기에는 근거가 좀 빈약해 보입니다. 폴크스바겐 자동차는 여전히 잘 달리고 있단말이죠. ('잘 달린다'는 것을 넓게 해석하면 기준을 맞추면서 탁월한 퍼포먼스를 보이는 것으로 봐야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의견이 맞다는 생각입니다. '여전히 잘 달리고 있다'라고 쓴 것은 폴크스바겐 자동차를 구매한 평범한 소비자 입장에서 좁은 의미로 적용했다고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폴크스바겐 자동차가 '연비의 대명사'였던가요? 글쎄요... (자료 출처 : 로이터)

치명적인 자동차의 범주는 어떨까요. 이건 확실히 개인마다 차이가 있는 부분이겠습니다만,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자동차'는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자동차'일 겁니다. 어떤 명분을 들이대더라도 운전자나 보행자에게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 자동차는 용납될 수 없다는 것, 이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없을 거라는 건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습니다. 도요타의 페달 문제, GM의 엔진 결함이 대규모 리콜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도,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도 없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충분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폴크스바겐 사태는 약간 포커스가 다릅니다. '연비 조작'이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냐 하면 그렇지는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즉, 자동차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직접적으로 훼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폴크스바겐의 연비 조작이 직격타를 날리는 부분은 공공 환경입니다. 규정 이상의 오염 물질을 배출하기 때문에 대기 오염을 일으킨다는 얘긴데, (물론 환경 오염을 수십 배 더 유발할 수 있는 자동차는 규제해야 마땅합니다만) 운전자와 보행자에게 얼마나 위협이 되는 부분인지는 의문입니다. 폴크스바겐 자동차가 탑승자와 근처 보행자의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언젠가는 나올까요. 글쎄요. 제가 보기엔 '안 죽습니다'. 동네에서 머플러 고장 난 채로 시커먼 연기를 뿜고 다니는 트럭이 탑승자나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얘기는, 어떻게 그 두 이슈를 연관시키기가 더 어려울 것 같네요. 폴크스바겐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죠. 연비 테스트를 기만하긴 했지만 치명적인 자동차를 만들어 팔았다고 보기도 무리가 있습니다.


이러다 망하는 거 아니야?


폴크스바겐 관련 기사를 접한 사람들은 요즘 자기도 모르게 이런 얘기들을 하곤 합니다. 폴크스바겐 사태가 독일차에 대한 신뢰 추락과 의혹 제기로 번지면서 '디젤 게이트'로 확산되는 분위기라, 디젤 자동차 산업에 대한 의문 부호까지 등장하는 추셉니다.


도요타 사태 때도 그랬고, GM 사건 때도 그랬습니다. "망하는 거 아냐 이거?"

하지만 도요타와 GM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각 사건 이전만큼은 아니지만 결함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주장이 나온 사건 후유증 치고는 나름 선방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물며 폴크스바겐일까요. 소비자로서의 분노를 걷어내고 살펴보면 폴크스바겐 스캔들이 처음 느꼈던 크기보다는 조금 더 작은 것으로 보입니다. 어마어마한 배상 액수, 추락하는 폴크스바겐 주가, 사퇴한 CEO와 추가 조사 예고 등. 언론 보도 상에 비치는 자극적인 단어들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 선 우리에게는 폴크스바겐에 대한 분노와 실망이 '스노우 볼'처럼 계속 커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전기차 테마가 움직이고, 현대차 반사이익이라는 예단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겠죠.


기간을 정하기는 어렵겠습니다. 그만큼 폴크스바겐의 '구라'는 충격적입니다. 한동안은 거리에 자주 보였던 -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기도 한 - 폴크스바겐 자동차가 조금씩 줄어들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아직 종언을 논하기는 이릅니다. 극단적으로 몰락을 기정 사실화하고 '제국 이후의 시대'를 점치기 보다는 폴크스바겐의 부진을 틈타 벌어진 '전국(戰國) 시대'의 판도를 예측해보는 냉정한 투자 관점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We are waiting for you, Janet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