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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urquoise Sep 05. 2015

We are waiting for you, Janet

'옐런 독트린'을 점치다

"Friday is a big day for the U.S. economy"

http://money.cnn.com/video/news/economy/2015/09/02/christine-romans-federal-reserve-interest-rrates.cnnmoney/


CNN Money를 살펴보다가  재미있는 영상을 하나 보게 됐습니다. 'A short history of cheap money'라는 제목이군요. 영상 바로 아래에는 "금요일은 미국 경제에 매우 중요한 날(빅데이)이다"라는 부제목이 붙어 있었고요. CNN 소속 기자 겸 앵커인 크리스틴 로만이 멋진 내레이션으로 미국의 8월 고용지표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줍니다. 물론, 중요하죠. 9월 FOMC를 목전에 두고 발표되는 마지막 실업률 지표니까요. 알고는 있었으나, 이렇게까지 '엑센트'를 주는구나 싶었습니다. 그것도 금리 인상이 발표된 것도 아니고, (표면적으로는) 경제지표일 뿐인데 말이죠.


그 영상을 접한지 몇 시간이 지나, 그토록 중요하다고 외치던 미국의 8월 실업률 지표가 나왔습니다. 실업률 5.1%, 국내 언론 보도에 따르자면 7년여만에 최저치라고 합니다. 미국 연준이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완전 고용'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죠. 9월 FOMC에서 금리를 올리고자 내심 마음을 먹고 있었다면 일단 '절반의 명분'은 확보한 셈입니다. (신규 고용자 수가 시장 예상보다 적었던 부분만 뺀다면 완벽한 절반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美 연준이 '가뿐하게' 금리 인상을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거의 '제로' 수준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물가가 오르지 않으면 소비도 늘어날 리가 없겠죠. 소비자 입장에서는 오늘 사나 내일 사나, 가격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당장 '무리해서라도' 지갑을 열 필요를 못 느낀다는 겁니다. 소비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미국 경제를 감안해 본다면 이건 치명적이겠네요. 거기에 금리까지 올린다는 건 상처 난 데에 흙탕물을 들이 붓는 것만큼 잔인한 일일 겁니다. '디플레이션' 가능성이 공공연하게 제기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이외에도 자질구레한 것들이 많습니다. 글로벌 증시 상황이 지금은 좋지 않다, 중국 경제 둔화세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금리를 올려버리면 신흥국 금융 위기가 온다 등 옐런 의장이 금리를 올리지 못할 이유만 지금 모아봐도 책 한 권은 족히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돕니다.


물론 저도 세계 경제의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의 중앙은행이 이처럼 시장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통화 정책의 키를 반대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 쉽지는 않을 거라는 데에 동의합니다. (그게 쉬운 거라면 CNN Money에서 특집 스팟을 따로 만들 정도로 요란을 떨진 않았겠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곧 다가올 9월 FOMC에서 연준 위원들의 의견이 조용히 금리를 현 상태로 유지하는 것으로 모아지지는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다분히 정치적인 맥락을 배제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싶은 발상 때문입니다.


세계 경제가 침체 국면에 있을 때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하여 시장을 인위적으로 받쳐 올리는 방법은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이 도입했습니다. 1987년 '블랙먼데이'에서도,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으로 미국 헤지펀드가 파산했을 때에도 그린스펀은 그가 직접 지표를 챙기며 시전한 '금리 인하 카드'로 시장을 달랬습니다. 후일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에는 너무 퍼준 탓에 자산 버블이 생겨 새로운 위기를 만들어 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만, 오랜 기간 동안 고성장 속에 안정적인 물가까지 잡는 '골디락스'를 구가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거물'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린스펀의 뒤를 이은 벤 버냉키는 금리 인하 카드에 한 술 더 뜬 정책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금리를 더 이상 내릴 수 없을 때까지 끌어 내린 것뿐만 아니라 국채를 매입하고, 여러 자산을 담보로 시장에 직접 자금을 풀어댄 것이죠. 이른바 '양적완화'라고 불리는, 아주 유명한 방법입니다. 그린스펀이 사용하던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터져버린 세계 금융 위기를 타개하기 어렵다고 보고, 버냉키는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히든 카드'를 뽑아 든 것입니다. 물론, 그만한 근거가 있었을 테고 QE에 따른 결과 예측도 충분히 하고 단행했을 테지만, 이런 생각도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던 전임자의 명성, 그 속에 파묻히기는 싫다는 생각 말입니다. 그린스펀과 똑같은 방법으로만 대응한다면 버냉키는 그린스펀이 그려놓은 한계선 안에서만 정책을 펼친 '그저 그런' FRB 의장으로 남게 됐을 겁니다. 게다가 그린스펀이 이미 오랜 기간 벌여놓은 금리 인하 정책 때문에, 똑같은 방법만으로 2008년 금융위기에는 소위 '약발'이 제대로 들지 않았을 테죠. 즉, 그린스펀의 방법만 사용해서 시장을 안정시키면 본전, 조금이라도 효과가 덜 난다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상황이었을 겁니다.


뭔가 한 가지는 'My way'를 내보여야 하는 구도, 현 옐런 의장에게도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아니, 버냉키 의장 시절보다 상황은 더 어렵습니다. 그린스펀이 사용한 첫 번째 달래기 카드는 이미 시장에서는 먹히지 않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겪었음에도 결국 해결을 위해 금리는 또 최저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으니, 시장 참여자들은 비정상적인 금리 상황을 이제는 오히려 '평상시'로 여기고 있는 모습입니다. (호의가 계속되니 그게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을 여기다 붙여도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비슷한 상황이죠) 버냉키의 두 번째 카드, 역시 시장에서 너무 익숙해져서 "QE4는 언제 할 거냐"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QE는 전형적인 '비전통적인' 경기 부양 방식이고 버냉키의 '전매 특허'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세계 경제가 조금이라도 수그러드는 뉘앙스가 느껴지면 QE는 앞으로 심심찮게 뉴스에 등장하는 단어가 될지도 모릅니다.


옐런은 그럼 무슨 '카드'를 쓸 수 있을까요? 어떤 방식으로 자신이 美 FRB의 의장이라는 것을 시장에 각인시킬 수 있을까요? '헬리콥터 벤' 이상으로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법이 또 있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양적완화의 규모를 더 늘릴 수는 있겠죠. QE4도 상황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그건 '옐런의 카드'가 아닙니다. 그린스펀의 유물이거나, 버냉키의 유산이죠. 옐런 의장에게는 자신만의 방법이 필요합니다. 사실상 세계 경제의 헤드쿼터 역할을 하고 있는 FRB에서 속칭 '바지 사장' 노릇만 하다 임기를 마치고 싶은 의장은 아마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옐런 의장의 'My way', 즉 '옐런 독트린'은 바로 금리 인상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 경제가 회복되면서 '파티'를 시작할 때 즈음해서 그릇을 뺏어버리는, 그린스펀 이전의 중앙은행이 했던 역할로 회귀하는 것입니다. 옐런 입장에서, 전임자들이 '벌려 놓은' 일에 대한 '뒤치다꺼리'만 하다 임기를 마치기 보다 확실한 노선을 보여주어 집권의 헤게모니를 확보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싶은 겁니다. 8월 고용보고서가 명분의 절반은 (어설프지만) 채워줬으니 나머지 물가 부분은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면서 획득하면 될 노릇이라고 옐런은 내심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금리 인상 속도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번 9월에 만일 금리 인상이 결정된다면 누구나 예상하는 25bp 인상이 혹시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른바 '베이비스텝'이라고 해서 25bp씩 올렸을 때 시장이 받는 충격이 가장 적다는 것이 지금까지 세계 중앙은행들에 불문율처럼 남아 있다고 하는데요. 옐런 입장에서는 이것도 썩 기분 좋은 일이 아닐 겁니다. '베이비스텝'으로 금리를 조정하는 것도 앨런 그린스펀이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죠. 전임자의 그림자를 지우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면, 굳이 그린스펀이 고안해 낸 '보폭'을 따를 필요도 없을 테니까요. 게다가 실제로 0~0.25% 수준인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를 25bp 올리게 되면 예상보다 큰 충격이 시장을 덮칠 수도 있어 보입니다. 0.25%에서 0.5%로 오르는 건 금리가 한 단계 올랐다는 표현으로 충분하지만, 0%에서 0.25%가 되는 것은 '공짜'에서 '유료'로 전환된다는 심리적인 요인도 추가되기 때문입니다. (무모한 도전입니다만) 개인적으로 예측을 한다면, 인상 결정 시 폭은 의외로 10~15bp 정도로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옐런을 비롯한 연준 위원들도 자신의 임기 내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전제하에 말이죠.


(쓰다 보니 어느새 인상 폭 예측까지 하고 있고.. 9월 FOMC 결과가 나오자마자 사문(死文)이 되길 제 스스로 자초하고 있었군요) 미국의 금리 인상 여부와 속도를 맞춰본다는 건 사실 의미 없는 '짓'입니다. 오늘 본 영상 중에 어떤 해외 전문가는 "금리 얘기 자꾸 해봐야 연준의 대답은 '지표에 따라 숙고하겠다'는  말뿐이다"라며 자조적인 얘기까지 하던데요. 맞습니다, 점쟁이도 아니고.


다만 분명한 것은 저나 여러분이나 마찬가지로 빨리 미국의 금리 인상 여부가 윤곽을 드러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답답한 마음에 '추리 소설'까지 쓰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일 겁니다. 딱밤을 때리겠다며 이마에 손을 대고 몇 개월째 부들부들 떨고만 있는 것 같아 이마를 내보이고 있는 입장에서는 불안하기가 어디 비할 데도 없네요. 시장을 바라보고 있는 제 마음이 그런데, 직접 시장에 투자하고 계신 개인 투자자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싶습니다.


며칠 남지 않았네요. 옐런 의장이 그 느린 말투로 또박또박, 뭐라고 말하든 시장은 한 번 크게 흔들릴 겁니다. 그 방향이 위쪽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파도를 헤치고 나면 잔잔이 찰랑이는 시장이 기다리고 있었으면 하는 바람, "아무래도 좋으니 어서 확실하게 얘기 좀 해"라는 조바심이 끈끈하게 엮인 9월 한 달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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