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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urquoise Aug 23. 2015

'인파이터 개미'를 그리다

패퇴하는 개미를 바라보는 안타까움

증시에 때아닌 '폭우'가 내렸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코스피, 코스닥은 '유례가 없다'는 표현이 과하지 않을 정도로 급락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시장과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이들 중에 한 사람이지만, 저 역시 며칠 동안 이토록 강하게 하방 압력을 받는 시장 분위기가 있었는지 쉽게 떠올려지지 않습니다. (그 덕(?)에 시장 전문가들이  정신없이 바빠져서 방송을 꾸려 가기는 대단히 어려웠었죠)


이번 폭락의 배경은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에서 지적하고 있다시피 '어마어마한' 한 가지 이슈만으로 이뤄져 있지는 않습니다. 북한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나, 미국의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했던 경우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이죠. 다만, 다양한 대내외 악재들을 한 가지로 수렴해보면 이번에도 김정일 사망이나 리먼브라더스 사태 때와 비슷한 방향으로 모이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바로 주식 시장이 가장 싫어한다는 '불확실성'입니다. 중국의 경기 둔화 신호, 미국의 금리 인상 시점, 북한의 예상치 못한 도발과 종잡을 수 없는 지정학적 리스크, 이 세 가지 모두 누구도 정확하게 앞날을 예상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시장은 수직 낙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의 모든 전문가들은 지금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리스크 관리'를 말합니다. 맞습니다. 지금 시장은 분명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설 시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그 방법이 어떤 것이냐는 게 관건이겠죠. 일반적으로 '리스크 관리'라 하면 주식을 재빨리 팔아치워 시장에서 빠져 나오는, 이른바 '현금화' 전략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이 올바른 선택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도 '투매'를 해야 맞는 것인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먼저 잇따른 시장 폭락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대북 리스크'

북한 정권이 김정은에게 넘어간 이후로 목함 지뢰 도발이나 대북 확성기 포격 등 예측이 어려운 '짓'을 하면서 불확실성이 커진 모습입니다. 정권을 잡은 사람이 워낙 어린데다, 북한 내부 정치적 상황도 뚜렷한 방향을 보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니 '이판사판이다'는 식으로 밀어 붙이는 액션이 나올까 싶어 불안감이 한층 더 커지는 모양새죠. 물론, 상황이 악화돼서 국지전, 혹은 전면전으로 번질 경우가 된다면 얘기는 경제 논리를 벗어나게 되겠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해결의 실마리를 잡아갈 수 있다고 볼 때 (그래서 경제적인 관점으로 이 상황을 판단한다고 할 때)라면 '리스크 관리'가 나올 시점은 아닐 거라는 생각입니다.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이  한두 번 있었던 일도 아닌 만큼 이미 여러 차례 북한발 이슈가 터질 때마다 시장은 충격을 받은 이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갔었죠. 남북이 '전쟁'에 준하는 상황에 돌입하지 않는다면 공포심에 '투매'를 감행한 투자자들은 단기간 내에 무지막지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겁니다.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누가 아느냐"며 투매의 이유를 붙인다고 해도 좀 이상합니다. 남북 긴장이 고조되고 있던 상황임에도 '사재기'했다는 보도가 없었던 걸 보면 이미 시민들은 어느 정도 '학습효과'를 거두고 있는 셈인데, 유독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만 상황을 비관적으로 본 이유는 뭔지 모르겠습니다.

사재기는 커녕 '터닝메카드'를 사주려는 부모님의 마음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네요 (사진출처 - via 커뮤니티)


미국의 금리 인상 이슈는 어떨까요.

옐런 의장이 "올해 안에 금리를 올리겠다"고 공언한 이후로 시장의 관심은 9월이냐, 12월이냐, 아니면 혹시 내년이냐에 쏠려왔습니다. 현 시점에서 시장이 미국 금리 인상 시점을 두고 '불확실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그 때문이죠. 글쎄요. 언제 금리 인상을 할지는 아마 누구도 단언하기 어려울 겁니다. (옐런이랑 전화통화가 되는 사람이라도 말이죠) 하지만 최근 들어 시장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 시점이 언제이든 올해 안으로 단행하기만 한다면 증시에 큰 악재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미 '제로'로 떨어져 있는 미국 연방은행의 금리 하한선이 0.25%로 높아진다는 것 자체는 돈줄을 옥죄는 효과를 나타낼 수 있겠습니다만, 문제는 속돕니다. 미 연준은 지난 일 년 내내 금리 인상 시간표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언급해왔고, 시장은 이미 '긴축 발작'을 조금씩 겪어내 오는 중이었습니다. 금리 인상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달러가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는 게 그 방증이죠. 외환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으로 달러를 거둬들이기 시작하면 달러 가치가 강해지는 게 교과서적인 논리지만, 이미 오랜 기간 '강달러'가 지속되어 왔기 때문에 정작 금리 인상이 시작되면 달러가 약세로 돌아설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예측 가능한 악재는 악재가 아니다'라는 증시 격언이 들어맞는 대목인 거죠. 물론, 달러가 약세로 돌아서게 됐을 때 상대적으로 강세를 나타낼 원화를 생각하면 수출 중심적인 국내 산업 구조가 그리 반길 일은 아니긴 합니다. 더구나 금리 인상 시점에 달러가 약세를 나타낼지도 모른다는 예측 또한 예측일 뿐, 세계 환율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달러화가 어떻게 움직이게 될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일입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해 보이는 점은 미국의 금리 인상 이슈가 시장 폭락을 야기할 만큼 엄청난 악재가 되지는 않을 거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중장기적인 증시 침체를 대비한 '리스크 관리', 현금화 전략이 시급한 상황은 아닐 거라는 게 시장의 중론입니다. (오히려 올해 안에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지 않는 것이 더 큰 리스크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죠. 미국 경제가 얼마나 안 좋기에 일 년 내내 올리겠다고 했던 걸 못하느냐는 얘깁니다)

이제 금리를 올해 안 올리면 악재가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옐런 의장님 (사진출처 - 연합뉴스)


중국의 상황은 앞선 두 가지 이슈보다는 심각해 보입니다.

속속 나오고 있는 경기 지표들이 모두 '침체'를 가리키고 있는 상황인데다,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 정책도 방향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지경입니다. 내수 경기 활성화를 기치로 내걸고 공공연하게 정부가 증시를 부양하고 있었던 게 바로 얼마 전인데,  지난주에는 느닷없이 위안화 가치를 연달아 3일 동안 끌어내렸습니다. 달러화 대비 위안화 가치가 크게 절상되어 있었기 때문에 위안화 가치를 큰 폭으로 내리는 것을 두고 '환율 전쟁'으로 가는 '선전포고'라 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시점이 왜 하필 지금이어야 했는가는 생각해 볼 문젭니다. 적어도 중국의 경기가 중국 정부의 생각대로 '내수 활성화'를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건 확실해 보이기 때문이죠. 위안화 가치를 내리면 당장 수입물가가 오르게 되고, 내수 소비가 위축되는 수순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이걸 모를 리 없는 중국 정부가 환율을 적극적으로 조정하고 있다는 것은 내수 진작만으로는 쉽지 않으니 내수와 수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중국 내수 기업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상해지수가 며칠 동안 큰 폭으로 하락하는 것 역시 이런 맥락이라고 볼 수 있겠고요.

'리커창지수'가 2008년 저점까지 떨어졌다고 하던데... 밤잠 못이루는지 다크서클이 보이는 것 같네요.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

이제는 미국보다 중국증시에 더 민감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로 상해지수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우리 증시이기 때문에, 중국의 경기 둔화는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하지만 '위기'이기 때문에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연초부터 꾸준히 내놓았던 '미니 부양책'들이 서서히 효과를 발휘할 시점이 왔다, 지급준비율 인하나 금리 인하 같은 대대적인 통화정책이나 직접 돈을 풀어버리는 재정정책을 본격 가동할 경우 경기 둔화 분위기는 급 반전될 수 있다 등의 분석이 해외 IB 들을 통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즉, 중국 경기가 악화되고는 있지만 중국 정부가 내놓을 '카드'는 아직 꽤 남아 있다는 얘기죠.

때문에, 현재 중국의 경제가 침체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해서 주식을 모두 팔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추이를 관망해야 하는 시점에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긴 하지만 '투매'와 동일한 단어로 해석하기는 어려운 것이죠.


현 시점에서 필요한 '리스크 관리'는 결국 시장 전문가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어찌 보면 너무 많이 들어서 무감각해진 전략으로 모아집니다. '투매'를 통한 현금화가 아닌 자산의 재구성, 즉, '리밸런싱'이죠. 여기에는 물론 현금 비중을 높이는 것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보다 중요한 건 똑같이 '폭우'를 맞았을 때, 포트폴리오 내에서 어떤 종목이 더 빨리 회복할 수 있느냐를 판단하는 작업일 겁니다. 자산가치 대비 엄청나게 높이, 그리고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주가가 올라 '거품'의 우려가 있는 종목을 계속 들고 가겠다는 생각은 결코 좋은 전략이라고 볼 수는 없겠죠. (주식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 전략은 아니다 싶겠네요) 실적이 꾸준히 나고, 주가가 저평가 국면에 있고, 펀더멘탈이 우량한 주식에 더 큰 비중을 실어야 한다는 얘기,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명젭니다.


하지만 그게 실제로는 말처럼 쉽지가 않은 모양입니다. 외국인과 기관의 공매도에 몸살을 앓고 있는 종목 게시판을 보면 "대차해지 공매타도"가 구호처럼 쓰이고는 있지만, 요즘처럼 대내외 이슈가 '삼각파도'처럼 몰려올 때면 개인 투자자들은 "일단 던지고 보자"는 생각에 엄청난 순매도 규모를 보이곤 합니다. 덕분에 공매도 세력들은 아주 싼 값에 주식을 되사서 갚아나가는,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죠.


내일도 시장은 열릴 겁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국내 시장은 또 다시 요동치게 될 겁니다. 안 좋은 뉴스가 전해진다면 개인 투자자들은 또 다시 공포에 사로잡혀 '던지고' 말겠죠. 시장을 바라보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분명, 이 시점에서 갖고 있는 주식을 팔아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현금 비중을 높여야 할 이유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 매도 버튼을 누르기 전에 이 돈이 어떤 용도로 쓰여야 할지, 어떤 곳에 포커스를 두고 비중을 실어야 할지 확고한 노선을 정하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설령 그것이 100% 현금일지라도 말이죠) 개인이 투매하는 틈을 타 공매도 물량을 유유히 다시 챙겨갈 기회를 얻는 세력들, 원화 가치가 계속 떨어진다며 ATM에서 돈을 찾아가듯 자금을 빼가는 외국인들, 이들에게 주식을 넘겨주고 반절이나마 남은 돈을 들고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는 개인들, 그런 '개미'들의 모습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우리가 외국인, 기관이라고 부르는 주체들도 결국 사람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일 테죠. 공포를 느끼고, 추락하는 증시에서 빠져 나오고 싶은 마음이야 뭐가 다르겠습니까마는. 그들이 '개미'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아마도 '전략'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는 것일 겁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그들을 시장의 지배자로 만들어주는 것일 겁니다.


정보의 양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개개인마다 성격도 다르고, 처한 상황도 다르고, 투자한 돈을 얼마나 어렵게 마련했을지도 짐작이 갑니다. 그래서 '개미'가 수급 세력을 이기는 시장을 바라는 건 어쩌면 이상론(理想論)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기지는 못할지언정 개인 투자자들도 그들을 상대로 (주식 게시판분들이 쓰는 말맞따나) '존버'할 수는 있지 않을까요. 수많은 악재 '펀치' 속에서 "일단 튀어"라며 등을 보이기 보다, 한껏 가드를 올리고 상황을 역전시킬 '카운터'를 고민하는 '인파이터 개미 군단'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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