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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 그늘 Aug 22. 2020

오목소녀

'어떻게 질 것인가'에 대한 성찰

    현대 사회를 일컬어 ‘경쟁사회’라고 하죠. 돈이 많든 없든, 좋은 직장이든 아니든, 각자의 리그에서 경쟁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내몰리고, 내 능력치가 탄로 나진 않을까 전전긍긍하곤 합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힐링(healing)’을 얘기하는 책과 TV 프로그램들이 많은 인기를 얻습니다. 귀촌, 무욕의 삶 등등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보편적인 모습과 반대되는 이야기를 접하며 잠시 위로를 얻지만, 다시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고통을 잊기 위해 해독제를 찾아다니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무한 루프의 시대에서 좀 더 가볍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는 없을까요.

    영화 ‘오목소녀’도 그저 그런 힐링류의 영화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지는 삶’이 생각보다 괜찮을 수도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이 사회로부터 주입된 막연한 공포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명문대에 가지 못한다는 공포, 승진을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 돈을 많이 모아놓지 않으면 늘그막에 고생할 것이라는 공포. 실패하면서도 행복을 찾아가는 바둑과 그녀의 친구들을 통해서 우리를 둘러싼 공포의 실체가 어쩌면 허상일 수도 있지 않을까 돌아보게 됩니다.  

    주인공 이바둑. 그녀는 한때 바둑 신동으로 불렸지만 ‘신동’ 타이틀에 대한 압박으로 지금은 바둑을 놓고 기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아갑니다. 어느 날 룸메이트가 사기꾼들에 속아 전세 보증금 일부를 날리게 됩니다.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바둑은 어떤 이상한 남자가 기원에 붙이고 간 오목대회 포스터를 떠올리고, 오목대회 나가서 상금을 받아 까먹은 보증금을 채워 넣겠다고 호기롭게 말합니다.  

    한때 바둑 신동이었는데 그깟 오목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으로 나갔지만 바둑은 첫 판에서 패배하고 맙니다. 바둑 신동에서 밀려난 것도 모자라 우습게 보았던 오목대회 예선에서 떨어지는 치욕을 맞이한 바둑. 그런 그녀에게 오목대회 포스터를 붙이고 간 이상한 남자, 김안경이 다시 찾아와 300만 원 상금의 오목 대회에 나가볼 것을 권유합니다. 바둑은 당당히 1등을 하여 300만 원을 손에 거머쥘 그날을 위해 오목 트레이닝계의 신, 쌍삼(雙三)과의 하드 트레이닝에 돌입합니다.

    영화는 어딘가 엉성하고 모자라 보이는 구석이 많습니다. 먼저 바둑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은 조금씩 부족해 보입니다. 바둑과 함께 세를 얻어 사는 룸메이트. 한국의 지미 핸드릭스가 될 거라는 원대한 꿈과는 달리 무대에 올라가기만 하면 얼어붙어 제대로 연주도 못합니다. 기원에 매일 찾아와 바둑 훈수를 두는 맹랑한 초딩 조영남. 요새 초딩들은 학원 가고 공부하느라 바쁘다던데 영남은 매니저마냥 바둑을 쫓아다닙니다. 김안경도 겉으로는 깔끔한 외모와 출중한 오목 실력으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항상 이겨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패배의 앞둔 순간에서는 굉장히 찌질해집니다.

    두 번째로 어설픈 유머가 영화 곳곳에 놓여 있습니다. 대회장에 갑자기 나타나 뜬금없이 일렉기타를 치며 바둑을 응원하는 룸메이트. 오목에서 진 바둑이 ‘오’짜에 치를 떨며 ‘오’다리를 주문하는 ‘오’대리를 기원에서 쫓아내는 장면. 세련된 유머가 아닌 친구끼리 얘기하다 아무렇게나 나올법한 날것의 느낌입니다.

    마지막으로 유명 영화들을 아주 엉성하게 패러디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김안경의 왼손은 일본 영화 <기생수 파트 1>과 <파트 2>의 오른손이를 연상케 하지만, 화려한 CG로 만들어진 기생수의 '오른손이'와 달리 손바닥에 칼라점토와 인형 눈알을 붙인 조악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예상하다시피, 대회에서 바둑이 우승하지 못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8강전에 온 힘을 쏟아버린 바둑은 4강에서 어이없이 패하고 맙니다. 하지만 패배를 받아들이는 그녀의 태도는 지는 게 두려워 승부를 제대로 마치지 못하던 어린 시절과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승패를 다투는 압박스러운 상황에 마주하지만 끝까지 침착하게 수를 놓습니다. 결국 패해버린 오목대회를 쿨하게 회상할 줄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성장 스토리는 찌질한 인물들, 어설픈 유머, 그리고 조악한 패러디들과 조화를 이루며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이 메시지를 향해 달려갑니다.


    ‘경쟁사회이기에 지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러니한 말입니다. 이기기 위해 몸부림치는 게 경쟁사회인데 지는 게 중요하다니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기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던 만큼 ‘어떻게 질 것인가’에 대한 성찰은 간과하고 살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경쟁에서 항상 이길 수 없기에 때로 패배의 순간도 맞이하게 되는데요. 그럴 때마다 패배감에 휩싸여 스스로를 자괴로 내몬다면 앞으로 맞이할 수많은 날들을 불행으로 살아가야 할지 모릅니다. 영화는 이 점을 꼰대스럽지 않으면서도 거침없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잘 지는’ 경험이야말로 끊임없는 경쟁 안에서도 행복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힘이 되어 준다는 사실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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