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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 그늘 Sep 25. 2020

새로운 것은 헌 것이 되어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이 영화는 한 유부녀의 외도 스토리입니다. 그러나 외도의 주인공 마고는 치정극에나 나올법한 표독스럽거나 경망한 여자가 절대 아닙니다. 그녀는 오히려 낙엽이 구르기만 해도 웃어댄다는 사춘기 소녀 같은 순수함과 사랑스러움으로 가득한 사람입니다.

    그녀의 사랑스러움은 풍부한 감수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녀는 외부의 자극을 남들보다 훨씬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항상 새로운 자극을 갈구합니다. 그리하여 꼼짝없이 공항에 갇혀 있어야 하는 비행기 환승시간을 두려워해, 다친 곳 하나 없는데도 환승장에서 휠체어를 타는 유난을 보일 정도입니다. 어찌 생각해보면 다소 피곤한 성격일 수 있으나, 이러한 성정에서 비롯된 생동감은 그녀를 빛나고 귀엽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한 그녀가 한결같고 우직하기 그지없는 남편 루와의 결혼 생활에 갑갑함을 느껴간 것은 당연한 것일지 모릅니다. 그리고 매일 똑같은 루와의 장난이 아무런 재미가 되지 않을 무렵, 그녀에게  다가온 이웃 남자 다니엘은 떨쳐내기 쉽지 않은 유혹이었을 것입니다. 남편에 대한 죄책감에 그를 밀어내려고 애써보지만 마음은 다니엘을 점점 향하게 되고, 결국 그녀는 다니엘을 택합니다.

 



    영화는 전남편을 떠나 다니엘을 택하기까지의 마고의 감정을 매우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순수한 모습과 루와 다니엘 사이에서 갈등하는 심리를 세심히 묘사함으로써 마고의 입장을 관객들이 어느 정도 공감하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영화가 그녀의 외도를 합리화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다니엘을 택했던 그녀의 선택이 어리석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영화는 상당히 교훈적이라 할 수 있지만 자칫 촌스럽게 전달될 수 있는 메시지를 몇몇 인물들의 입을 빌려 세련되게 전하고 있습니다.

    수영장 샤워실에서 마고와 함께 몸을 씻던 한 할머니는 "모든 새 것도 언젠가 헌 것이 된다."라고 그녀에게 말합니다. 이 대사가 나오는 장면에서 마고와 같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의 나체뿐만 아니라 할머니들의 나체도 그대로 보여주는데요.  은은한 햇살 아래 드러나는 쭈글쭈글한 할머니들의 몸은 애석하다는 느낌보단 오히려 긴 세월을 포용한 편안함이 묻어나옵니다.

    루와 헤어진 뒤 마고가 시누이였던 제럴딘을 우연히 만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기서 제럴딘은 마고를 다시 보게 됨에 반색하면서도 "삶에는 균열이 있게 마련이지만 그 균열을 다 메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따끔한 충고를 남깁니다.

    영화 속 대사처럼 모든 새 것은 오래된 것이 됩니다. 그리고 오래된 것은 때로는 권태로움이라는 균열을, 때로는 할머니들의 몸과 같은 편안함을 느끼게 합니다. 영화는 위의 두 대사를 통해 한때의 활기를 기대하며 권태를 메우려 하기보다 시간의 순리를 받아들이며 편안함을 음미하기를 조심스레 권하는 것 같습니다.

 


    마고의 새로운 사랑도 어느덧 헌 것이 되어 다니엘과 마고는 언제 불타는 사랑을 했냐는 듯 여느 부부처럼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영화는 마고가 루와 다니엘 사이에서 흔들리고 결국 다니엘을 택하는 데까지의 과정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과의 격렬한 사랑이 사그라지는 과정은 함축적이고 상징적으로 단 몇 분 안에 보여줍니다. 이 장면은 굉장히 관능적이면서도 아름답습니다. 맨 처음 둘은 제대로 된 살림도 갖춰지지 않은 장소에서 격정적인 섹스를 나눕니다. 그러다 차차 뜨거운 감정은 식어가고 마지막에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며 사랑한다는 말을 습관적으로 주고받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카메라는 이 둘을 빙빙 돌며 마고와 다니엘의 변화를 보여줍니다. 이 장면에서 Leonard Cohen의 ‘Take this Waltz’가 흐르는데요. ‘take this Waltz’를 반복하는 가사와 대조적으로 마고와 다니엘의 왈츠는 어느새 끝나버려 뜨겁던 그들의 사랑은 너무도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다니엘은 루만큼 마고에게 헌신적인 남자는 아닌 것 같습니다. 루와 달리 다니엘은 자신이 양치질하는 옆에서 마고가 소변을 보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그리고 루는 항상 그녀를 위해 요리를 준비했던 것에 반해 다니엘과의 동거에서는 마고가 직접 요리를 합니다. 착한 남자를 버리고 나쁜 남자를 택한 여자의 말로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러면 세련된 영화가 너무 유치해져 버리는 것 같고 또 마고를 마냥 불쌍한 여자로 만들고 싶지는 않아  이런 생각은 접기로 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혼자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마고의 모습이 보입니다. 한때는 다니엘과 함께 한껏 웃었던 공간이지만 이제는 혼자가 되어 기구에 몸을 싣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알 수 없는 표정을 짓습니다. 지난 선택을 후회하는 것일까요. 다시 마음을 잡아보려는  것일까요. 이렇게 영화는 쓸쓸한 여운 기며 막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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