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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편지 Aug 06. 2021

어차피 시험에 합격할 텐데 뭐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 도전기


 1교시 수업 시작은 9시. 집에서 8시 30분에는 버스를 타야 했다. 나는 8시 50분에 기상한다. 빠르면 8시 40분이다. 대충 씻고 택시를 타고 도착하면 9시 5분이다. 살포시 강의실에 뒷문을 열고 앉는다. 수업은 4시간. 1시에 끝나면 집으로 바로 간다. 어깨를 짓누르는 책을 던져 놓고 점심을 먹고 잔다. 이 짓을 여름 때까지 했다. 여름이면 10시간씩 공부를 해야 하는 피크 타임이었는데 말이다. 


 몇 달이 지나도록 감을 못 잡는 나를 위해 아버지는 개인 과외 선생님을 붙여줬다. 선생님들은 모두 아버지와 함께 공부하던 분들이었다. 사무소를 열어서 현업에 있거나 공인중개사 자격증 학원 강사로 근무했었다. 시험과목 6개 중에 6개 전부를 과외 받았다. 친한 형의 딸이라는 이유로 수업료도 받지 않고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가르쳤다. 매일 지각에 교과서도 이해 못하는 내가 과외로 알아 듣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과외는 열심히 들었다. 공부 못 하는 건 둘째치고 행실이 안 좋은 것은 아버지의 얼굴에 똥칠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시험 한 달을 앞두고 이상한 자신감이 샘솟았다. 모의고사 점수는 들쭉날쭉 했지만 높은 점수만 내 실력이라고 믿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근거는 없지만 왠지 합격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때 나는 1차 과목 부동산 학개론과 부동산 민법 중에서 민법에 자신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지금 민법이 자신 있는 건 공부를 덜 한 건데.” 라고 했다. 돌이켜보니 아버지 말이 정확했다. 하지만 나는 ‘어리니까 1년 만에 1, 2차 합격할거야.’ 라는 말을 머리에 각인시켰다. 그 말은 반 정도만 맞았다. 한두번 보면 내용이 기억났고 그 감으로 시험을 쳤다. 하지만 그 감은 반쪽짜리였다. 아니, 1/3쪽짜리였다. 시험 당일에 1번 문제부터 손이 멈췄다. 풀지 못하고 2번 문제로 넘어갔다. 모르겠다. 3번, 4번...마지막 문제까지 확신을 갖고 푼 문제가 거의 없었다. ‘망했다.’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애써 침착한 척 하며 2차 시험까지 끝냈다.


 시험장을 나올 때부터 처참한 마음이었다. 같이 공부했던 사람들과 식당에 가서 가채점을 했고 불합격은 나 혼자였다. 그래도 1년 가까이 공부했는데 나만 불합격이라니. 눈물이 나오는 것을 꾹 참고 밥을 먹었다. 그 자리에 과외 선생님이었던 아버지의 친한 친구 분도 있었다. 묵묵히 밥을 먹는 나를 보고 “너희 아빠도 떨어졌을 때 한 번을 안 울더라. 합격하고 울었지. 아버지 성정을 닮았네.” 라고 했다. 옆에 있던 내 또래 남자애는 “울어라.” 라고 했지만 말이다.  


 나는 울 자격이 없다. 공부만 할 수 있게 학원비, 생활비를 죄다 지원 받으면서도 공부에 집중하지 않았다.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은 내가 제일 잘 아는데 무슨 면목으로 부모님을 뵐까. 합격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살던 나에게 딱 맞는 결과였다. 집에 도착해서 가족들에게 불합격을 얘기하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 눈물은 무슨 의미였을까. 억울하거나 미련이 남은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께 죄송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제일 큰 이유는 나에 대한 실망이었다. 처음부터 열심히 하지 않은 나 자신, 정신 못 차리고 헛된 꿈이나 꾼 나 자신이 미웠다. 이제서야 내 수준이 보였다. 불합격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정신머리가 글러먹었다. 


 시험이 끝나고 하나둘씩 학원이 개강했다. 11월에 다시 학원을 끊었다. 나는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 재수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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