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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주언 Apr 07. 2023

호(號)를 만들다

소중하고 의미있는 말을 담다

매 학기 진행되는 광고홍보론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브랜드 정체성(brand identity)을 설명하기 위해 항상 내 이름을 예시로 설명한다.      


“학생 여러분, 제 이름은 전주언이며 한자로는 全柱彦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주’는 ‘기둥’을 뜻하고 ‘언’은 ‘선비’를 뜻하죠. 제 이름을 지어주신 아버지께서는 제가 ‘나라에 작게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학자’가 되길 원하셨다고 해요.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이 뜻이 담긴 이름을 만드는 방법을 잘 모르셔서 작명 전문가(네이미스트)의 도움을 받았다고 들었어요.”     


브랜드 정체성은 브랜드 고유의 철학이자 변하지 않는 정수(essence, 精髓)다. 나는 내 이름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연구와 강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2023년 1학기 개강 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전임 교수로 임용된 지 7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어렵고 가끔은 이해하기 어려운 공간이 대학교이자 교수 집단이다. 연구에 매진해 의미있는 논문을 출판하고 제자들을 위해 열심하 강의를 하는 것이 교수의 역할이라 믿고 있다. 하지만 연구 및 강의와 다른 별개의 일들로 인해 지난 한 달간은 심적으로 매우 지쳤었다. 여기 대학이라는 집단에서도 사내 정치라는 것이 작동하며, 그 사내 정치가 작동하는 순간 대학이라는 공간은 상아탑(象牙塔)의 의미를 잃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한 달이었다. 

     

심적으로 지쳐있었던 것을 눈치채셨나? 

개인적으로 친한 다른 학과 교수님께서 어느 날 연구실로 부르시더니 대뜸 내게 나를 위한 호(號)를 만들었다며 선물을 주셨다.      


‘호? 내가 호를 갖는다고? 호는 보통 연세가 지긋하신 노교수님들이나 만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 학교에서 크고 작은 일들로 지쳤을텐데 좋은 일만 가득하라며 우리나라 최고의 작명가에게 부탁했다는 말씀을 주셨다.  

    

‘무담(碔談)’      

‘옥돌’이라는 의미의 ‘무’와 ‘말씀’이라는 의미의 ‘담’으로 귀중한 말씀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무담이라는 발음은 어색했지만 그 의미를 본래 내 이름과 합쳐보니 의미가 괜찮게 느껴졌다.      

‘무담 전주언’ 

‘소중하고 의미있는 말을 담아 전달하는 학자’ 정도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여전히 어색하지만 본래 내 이름과 잘 어울리고 의미도 유창하게 연결이 잘 된다. 

마흔 조금 넘게 사는 동안 호에 대해서는 생각도 못 해봤었는데, 이번 기회에 좋은 호를 갖게 되었다. 남은 한 학기가 기대되는 지금이다.      

내 이름과 호와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취미. 하지만 가끔은 그 취미에 진심일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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