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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선샤인 Jan 17. 2022

내가 평생 운전 못할 줄 알았지?

혼자 고속도로를 타고 바다에  갔다


청명 IC를 지났다. 고속도로를 달린다. 엑셀을 힘껏 밟는다. 신나는 팝송을 튼다. 바다로 향한다. 3시간 남짓 달려 속초 해변에 도착한다. 처음으로 혼자 운전을 해서 바다에 닿았다. 넘실거리는 푸른 바닷물이 환하게 가슴에 들어온다. 벅찬 감정이 눈에 가득 차오른다. 오늘은 내 인생의 새 챕터가 시작되는 날이다.



20살에 면허를 땄다. 엄마의 권유로 시작했다. 운전 내내 긴장하고 집에 오면 어김없이 울었다. 겁이 많았다. 내가 운전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도로에는 위험이 가득했다.


'쌩쌩 달리는 차 사이를 내가 지나간다고? '


누가 갑자기 언제 끼어들지 불안했다. 속도도 제대로 내기 어려웠다. 선생님한테 자주 혼났다. 운전학원 내 도로에서 마지막 주차를 하다가 속도를 잘 못 줄여 앞 차를 박았다. 그 쿵 소리가 마음에 새겨졌다. 다시는 운전하지 않겠다고  도망쳤다.


면허는 땄지만, 이후 16년 동안 한 번도 운전대를 잡아본 적이 없었다. 제주도 여행 중 한번 운전했다가 차선 변경을 잘 못해서 박을 뻔했다. 꽥 소리 지르는 남편의 성화에 서러웠다.


두려움과 겁이 많은 나를 잘 아는 동생과 남편이 입을 모아 말했다.


'"미안한데, 언니는 평생 운전 못할 것 같아"

"너는 운전 못해, 절대로"


그 말이 사형선고처럼 내 인생에 종을 울렸다. 괜히 운전했다가 사고라도 날까 봐, 내 인생 목록에서  '운전' 두 글자를 지웠다. 위험에 맞서느니 피해서 안전을 택하겠노라고 다짐했다. 마음 한 구석에는 속상함이 피어올랐지만 애써 두 눈을 감고 외면했다.


첫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닐 때였다. 유모차를 밀고 10분은 걸어가야 했다. 맑은 날은 걸을 만했다. 문제는 비 오는 날이었다. 10분 동안 비가 세차게 퍼부었다. 레인커버를 뚫고 유모차에 비가 새어들었다. 어린이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이 바지가 다 젖어 있었다. 미안함이 몰려왔다. 내 무능력함에 분노가 솟아났다. 비가 자주 오는 장마철의 시작이었다.


더 이상 아이를 비에 젖게 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오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며 추위에 떨고 싶지 않았다. 교통이 불편한 신도시였다. 아이를 키울수록 운전은 필요했다.


다음날 바로 운전연수를 신청했다. 열흘 남짓 매일 연습을 시작했다. 다시 잡은 운전대를 마주하니 심장이 거친 소리로 둥둥거렸다. 그러나 나는 엄마가 되었다. 아이와 나를 위해 도전 앞에 고개를 들어야 했다.



연수 강사님이 옆에 있을 땐 어느 정도 할만했다. 주차가 난관이었다. 차 뒤에서 부딪힌다는 경고등이 삐비빅 날카로운 굉음을 외쳐댔다. 기다리는 차들이 빵빵거렸다. 중간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늪에 빠졌다. 주차가 두려워 시동을 켤 마음이 들지 않았다. 매일 끌려가는 소처럼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밤마다 아파트 주차장 빈 공간에서 주차 연습을 했다. 한 시간 이상, 될 때까지 했다. 검색을 하고 동영상을 보며 연습하고 또 했다. 조금 알 것 같다가도 금을 밟고 있는 바퀴를 보면 한숨이 났다.


평행주차는 또 다른 세계였다. 아무리 왔다 갔다 해도 차선에서 한참 떨어져 들어가질 못했다. 지하주차장도 만만치 않았다. 달팽이 관처럼 돌아서 내려가는 길에 반대쪽 차량이 나왔다. 당황해서 와이퍼를 켜버렸다. 겨우 겨우 안간힘을 쓰며 뒤로 빼다가 백미러를 부수었다. 울고 싶었다. 덜렁거린 채 매달린 백미러 한쪽을 붙잡고 비상등을 켜고 집에 돌아왔다. 거금을 들여 수리를 했다. 점점 자신감이 사라져 개미 다리만큼 남았다.  


한 번은 차선 변경을 못해서 오른쪽 길로 빠지질 못했다. 계속 직진을 했다. 풍경이 바뀌더니 이내 옆 도시 수원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서울까지 갈판이었다. 밤 운전이었다. 앞도 잘 안보였다.


'제발 제발 집에만 가게 해주세요...'


우는 목소리로 기도하며 돌아왔다. 10분 거리를 한 시간 걸려 왔다.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그 후로도 여러 번 고속도로에서 나가야 하는 길을 놓쳐서 서울로 모험을 다녀왔다. 지금 생각해도 창피한 경험들이다.


그런 모든 사건 사고들과 실수들로 3년이 흘렀다. 숱한 경험들이 쌓여 조금씩 운전을 즐기게 되었다.  아이를 태우고 소아과에 갔다. 정말 하고 싶던 일- 고속도로를 타고 친정인 대전에 내려갔다. 답답한 날 드라이브를 하며 근처 저수지 카페를 찾았다. 내가 포기하지 않고 쟁취한 자유였다.


정여울 작가는 <마흔에 관해서> 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도전하라’는 말에 피가 끓기보다는 ‘조심하라’는 말에 힘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던 모든 순간들이 몸서리치게 안타까웠다.


나이가 들수록 도전이 두려워진다. '너는 겁이 많아서 못할거야' 라는 말에 스스로를 가뒀다. 평생 못할 줄 알았던 내가 운전을 한다. 진작 하지 않았던 시간들이 못 견디게 후회된다. 진작 시작하고 부딪혔다면, 내 삶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겨울 제주도에 혼자 여행갔을때, 내내 걷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차를 타며 편안하고 따뜻하게 돌아다녔을텐데... 보따리를 가득 짊어지고 애를 안고 친정가는 기차에 오르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낑낑거리는 아이를 달래며 사람들의 따가운 눈치도 받지 않았을텐데...​


'진작 할걸!'

​​

나이가 들었다고, 사람들이 못한다고 말해서, 겁이 많아서 주저하던 날들이 아쉽다.

어려움을 마주했을때 거기서 멈추고 포기하면 실패로 끝이난다. 평행주차가 어려워 계속 피하니 지금도 못한다. 어려움을 겪어야 실력이 늘어난다. 계속 부딪히고 당황하고 시도해야 해낼 수 있다. 자꾸 피하면 아예 못하게 된다.

36살, 늦은 나이에 운전을 다시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두렵다고 피했던 많은 도전들을 건져올린다.

나이를 핑계삼아 도전을 멈추지 말라.

남들의 시선에 갇혀 포기하지 말라.

끊임없이 시도하고 쟁취할 용기로 무장하라. ​


차안에 쨍쨍한 댄스음악이 사정없이 울린다. 신나는 드라이브길이다. 바다가 보이는 길 끝에서 성취감이 손을 흔들고 있다. 나의 드라이브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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