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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선샤인 Feb 16. 2022

첫 출근을 하며 기차 타는 상상을 했다

5년 만에 복직을 하다

5년 만에 첫 출근을 했다. 아침 7시 반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6살 첫째가 바짓가랑이를 잡고 오열을 했다. 심장이 튀어나올 듯 헐떡이며 눈물을 흩뿌렸다. 아이의 눈물을 보니 가슴이 장조림 고깃살처럼 한결 한결 찢겼다.       


“가지 마. 가지 마. 제발 가지 마.”

“안 돼. 가야 해. 엄마도 가기 싫은데 이제 매일 가야 해.”     


단호하게 아이의 손을 뿌리치고 나오는데 심장이 딱딱해졌다. 이제 아이의 마음을 받아줄 여유는 사라졌구나.  목구멍에서 물방울이 펑펑 터졌다.


학교로 가는 차 안에서 속이 울렁거렸다. ‘have butterflies in my stomach’란 영어 표현이 이렇게 딱 맞을 줄이야. 뱃속에 나비인지 벌레인지 우글거렸다. 토할 것 같았다. 차가운 교실과 낯선 교무실, 어디에도 마음 붙일 곳이 없다. 엄마 역할만 하다가 다시 선생님으로 돌아가려니 신분에 혼란이 느껴졌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나에게 또 다른 의무의 그늘이 드리워졌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두 삶-엄마의 삶과 교사의 삶- 을 헤쳐 나가야 하나 눈앞이 흐려졌다.      


파도에 출렁이는 작은 배를 탄 듯 휘청거렸다. 이대로 차를 몰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는 상상을 시작했다. infp 성향인 내가 곧잘 하는 일이다. 현실이 각박할 때 달콤한 상상으로 도피하기. 가장 좋아하는 상상은 기차를 타고 바다를 향하는 것이다.      


기차역 플랫폼에서 약속된 시간에 기차가 도착한다. 창가 자리에 앉는다. 갓 내린 커피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기차가 천천히 흔들거리며 출발하는 것을 느낀다. 기차의 덜컹거림이 온몸에 퍼진다. 내 몸과 마음도 그와 함께 가볍게 설렘을 뿜어낸다. 도시를 벗어난 기차가 선로 위를 미끄러지듯 따라간다. 창문에 산과 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파란 하늘과 초록 잎들이 눈에 들어오자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제 기차는 나를 싣고 도시의 어지러움을 벗어나 새로운 즐거움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기차에 행로를 맡기고 책장을 펼친다. 마음 돌보기에 관한 겉표지가 아기자기한 예쁜 책을 꺼내 든다.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낀다. 커피 한 모금, 책 한 구절, 음악 한 줄기, 창문 밖 풍경 지그시 바라보기를 마음 내키는 대로 반복한다. 기차가 바다에 도착하기까지 두 시간 남짓 평화로운 시간이 허락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자유가 넘실대는 바다에 도착하는 완벽한 여정. 내 공상의 화려한 끝에 닿는다.     


다시 눈을 뜨니 현실이다. 좁은 교무실에 열 명이 넘는 선생님들이 각자 큐비클에 앉아있다. 아직 노트북도 주지 않고 인터넷도 되지 않는데 하루 종일 근무를 하란다. 심지어 나는 아직 복직 전이라 월급도 주지 않는데 무일푼으로 일을 하란다. 내일은 신입생 OT라고 아이들을 맞이하란다.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너무 오랫동안 집에 있었다가 나왔나, 사회생활이 어색하고 생소하다. 어떤 표정을 짓고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표정을 숨길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아이를 키우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급하게 구한 등 하원 이모님이 갑자기 동거인이 확진되었다고 통보했다. 토할 듯 울어대는 아이들 얼굴이 아른거렸다. 아이들이 어려서 비담임 달라고 사정을 했는데 관리자는 매몰차게 1학년 담임을 맡겼다. 3월에는 늦게 까지 남아 상담을 하고 학부모 총회를 하란다. 보충수업도 해야 한단다. 나는 과연 집에는 제때 갈 수 있을까? 워킹 맘은 죄인이라는데, 벌써 양쪽에 죄스러움을 느껴 마음이 무겁게 침몰한다. 아이 얼굴을 볼 때마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학교에서 아기가 아프다고 가는 일이라도 생기면 미운털이 박힐지도 모른다. 올 한 해 무난하게 무탈하게 지날 수 있을까.     


길었던 겨울이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려 기지개를 켜며 움틀 거렸다. 찌뿌듯하게 굳은 어깨를 털어내느라 오늘 아침에는 제법 많은 눈을 털어냈다. 곧 3월, 봄의 시작이다. 5년 만에 맞이하는 대변혁의 봄 앞에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그동안 나를 뒤덮고 있던 불안과 긴장을 한껏 떨쳐내 보려 나도 큰 기지개를 켜본다. 우둑우둑 굳었던 근육들이 포효한다.      


3월 한 달을 어떻게든 버텨보고 마지막 주 주말에는 오랜만에 기차를 타봐야겠다. 아이를 데리고 가든, 혼자 가든, 내가 좋아하는 기차여행을 예약해본다. 느릿느릿 다가오는 봄을 불러내러 남도의 들녘에 가볼까. 여수나 순천도 좋을 것 같다. 아이와 넓은 바다에 달려가 방방 뛰어보고 소리도 맘껏 질러봐야지. 끼루룩 갈매기에게 새우깡도 던져주고 터져 나오는 봄꽃들에 반가운 인사도 건네야지. 그렇게 기분 좋은 상상 하나 숨겨두고 현실에 우뚝 맞서 보기로 한다.      


삶은 어떻게든 굴러갈 것이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내는지는 이제 내 선택에 달려있다. 어차피 부딪혀야 할 것이라면 피하지 말고 도망치지 말지어다. 처절하게 부서져 온 몸으로 맞이하리라. 아이들은 잘 적응할 것이고 나도 곧 감을 찾아낼 테니. 벌써부터 기죽지 말라고 시무룩해진 등을 토닥인다. 힘겨울 땐 언제든 기차표를 예약하자고 나를 꾀어본다. 어쨌든 기차는 매일 정시에 떠나고 바다는 항상 그곳에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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