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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선샤인 Feb 21. 2022

코스터- 엄마를 지켜줘

커피잔을 받친 코스터를 바라보며



일요일 오전, 첫째와 도서관에서 우드 코스터(컵받침) 만들기 체험을 했다. 나무로 잘라진 오각형 모양 컵받침을 하나 골랐다. 사포로 거친 면을 사근사근 갈았다. 면이 부드럽게 드러났다. 아이는 서툴지만 기분 좋은 얼굴로 사포를 만지작거렸다. 나무 면이 부드러워질 때마다 하얀 가루가 바닥에 떨어졌다. 버닝 펜이라는 도구로 나무에 글씨를 새겼다. 뜨거운 필라멘트 같은 것이 뾰족하게 나와 있는 펜이었다. 나무에 대면 타는 냄새가 나면서 갈색 글씨가 새겨졌다. 아이 이름 세 글자를 새기고 하트를 그렸다. 색색 깔의 펜들이 놓여있는 테이블로 옮겨 앉았다. 아이는 그림에 빠져 한동안 이색 저색을 바꿔가며 하트와 꽃을 그렸다. 아이는 가장 좋아하는 하트를 여러 번 그렸다. 좋아하는 분홍색으로 하트 안을 살포시 채웠다.  

   

엄마 어때? 이거 예쁘지?”     


끊임없는 재잘거림에 나도 웃음이 났다. 알록달록하게 장식된 컵받침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나중에 여기에 컵 올려놓고 소꿉놀이하면 재밌겠다. 그렇지?”


응. 너무 맘에 들어. 우리 이거 집에 가져가는 거지?”     


그냥 이렇게 함께 시간을 채우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기뻐하는구나. 이 작지만 소중한 시간이 무한하게 느껴졌다. 5년 만에 시작하는 복직을 앞두고 몽글거리는 마음을 이 시간에 기대 달래 보았다.      


‘괜찮을 거야. 잘 이겨낼 거야. 잘 적응할 거야. 아이와 나는 강하다’






아침 6시 내 얼굴을 더듬는 둘째의 목소리에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엄마 머리 옆에 있는 안경을 찾아내 내 얼굴에 씌운다. 안경이 있어야 일어난다는 것을 28개월에 벌써 알아채다니.      


“아직 밤이야. 조금 더 자”     


하는 내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밥, 밥 ’ 외치며 배를 문지른다. 눈치가 이렇게 빠르다. 또래에 비해 마르고 작아서 늘 밥 먹이기에 신경 쓰고 걱정이 많은 나를 너무 잘 안다. 내 머리 꼭대기 위에서 나를 조종하다니. 밥이라는 소리에 몸을 부스스 일으킨다. 알았어. 밥해줄게. 조금만 기다려.     



오늘 아침에는 뭘 해주지. 냉장고에서 야채와 계란을 꺼낸다. 가스 불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기름을 한 방울 떨어뜨린다. 야채와 계란을 볶아 밥 위에 올리고 참기름 한 스푼, 간장 한 스푼을 올려 섞는다. 간장계란밥 완성. 몇 수저 받아먹더니 이내 소매를 이끈다. 아직 열 개 남짓한 단어밖에 못하는 둘째. ‘빠방 빠방’ 말하며 장난감 갖고 놀자고 채근한다. 이 녀석, 밥이라는 말은 역시 엄마를 깨우려는 수작이었군.      




몽롱한 정신을 깨우는 데는 커피가 제일이다. 흐리멍덩한 머리를 부여잡고 커피머신 버튼을 누른다. 머그컵에 우유를 담고 전자레인지에 1분 동안 돌린다. 우유 거품을 만들고 에스프레소 위에 올린다. 우드 코스터 위에 커피 잔을 내려놓는다. 보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커피. 내 힐링제, 치료제이자 아침을 여는 일등공신. 그 커피를 담아낸 우드 코스터를 한참 바라본다. 그냥 커피 잔을 내려놓을 때보다 코스터 위에 올리면 뭔가 더 안정감이 든다. 찬기와 열기로부터 테이블도 보호하고 내 마음도 보호해주는 기분이다. 내가 나를 위해 만든 커피지만, 누군가 나를 위해 제대로 대접해주는 기분이 든다.      


커피숍에서 커피를 건네받을 때마다 함께 딸려 나오는 코스터를 좋아한다. 각 커피 집마다 다른 코스터들. 우드, 실리콘, 코튼 다양한 소재와 모양의 코스터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코스터 위의 커피를 마주하면, 제대로 커피 한잔을 대접받는 기분이 든다. 잘 차려진 커피 한상을 바라보는 일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다.      





나를 위해 아침마다 커피를 내려 라테를 만든다. 잠이 덜 깬 정신을 불러내고 아침을 시작하는 나만의 의식이다. 우드 코스터 받침을 찾아 받친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를 위해. 대충 커피 잔만 올려놓고 먹을 수도 있지만, 사소한 것 하나라도 나를 위해 정성을 들이고 싶었다. 아이들 챙기느라 밥은커녕 커피 한잔이 유일한 식사지만, 코스터에 얹은 소소한 자기 존중감이 그날 하루를 밝힐 수 있도록.     



아이들 식사를 차려주고 커피를 마시고 나니 출근할 시간이 다가온다. 어느새 3월 정식 출근이 며칠 남지 않았다. 오늘은 새 학기 준비 차 일주일에 한두 번씩 나가는 출근일이다. 정식 출근이 다가올수록 아이들 걱정에, 또 내 걱정에 숨이 턱턱 막힌다. 출근하는 날이라고 몇 번을 일러두었는데도, 첫째는 오늘도 가지 말라고 눈물을 뿌린다.      


“일찍 와야 해. 늦게 오면 안 돼. 내가 전화하면 받아야 해. 꼭이야. 약속해..”     


몇 번이나 주문 외우듯 소리친다.      


“응. 알았어. 엄마가 다 알아들었어. 그렇게 할게. 그만 말해도 돼.”     


몇 번을 대답해도 아이는 불안한 눈빛으로 내 얼굴을 살핀다. 아무것도 모르는 둘째는 장난감 자동차를 굴리며 돌아다닌다. 요즘 두 아이를 볼 때마다 부쩍 눈시울이 붉어진다. 어쩜 아이들보다 내가 더 불안해하는지도 모른다. 출발선 위에 웅크리고 앉아 경주가 시작되는 총소리를 기다리는 달리기 선수가 된 듯 심장이 터질 듯 쿵쿵거린다.      






이번 겨울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와 색다른 시간을 보내려고 시도했다. 도자기 공방을 찾아 함께 핸드페인팅 수업도 하고, 도서관에서 목공체험도 했다. 토요일에는 발레수업도 다녔다. 이제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다는 미안함에, 하원 후 놀이터를 가지 못한다는 생각에 벌써 짠한 마음이 들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았다. 미안함을 그렇게 함께 보내는 시간으로 보상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엄마의 빈자리가 아이에게 슬픔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먹먹한 마음을 어떻게든 채우고 싶었다.      




커피 잔을 받친 코스터를 만지작거린다. 아이가 슬프고 외로울 때마다 그 아래에서 든든히 받쳐주고 보호해주는 이 코스터처럼, 나도 아이들에게 든든한 받침대가 되어줘야겠다고 다짐한다. 찬기와 열기로부터 아이들의 마음을 잔잔하게 위로하고 사랑으로 덮어줄 수 있는 엄마가 되리라. 워킹 맘이 되어도 나는 여전히 아이들을 사랑하는 엄마니까.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나를 다독인다. 엄마는 강하다. 주문을 외워본다. 나는 잘 해낼 수 있다.     



5년 만의 긴 어둠을 깨고 땅 위로 올라간다. 7년 동안 땅속에서 애벌레로 살다가 한 여름 며칠을 왱왱 크게 울어대는 매미처럼. 땅 속 밖 세상이 낯설고 두렵지만, 물러서지 않고 두려움 떨치고 내 목소리를 뻗어 내리라. 내 열정을 뿜어내리라. 컵받침 위에 남은 커피를 원샷하고 가방을 들고 차키를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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