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에 일어나는 이유

엄마의 숨쉬기 방법

by 굿모닝선샤인

2월의 마지막 화요일 새벽 5시, 자기 전 맞춰둔 알람이 울렸다. 어제는 복직 전 심란한 마음으로 출근을 한 날이라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피곤한 데 잠이 오지 않는 고통. 새벽에도 몇 번이나 악몽을 꾼 듯 눈이 떠졌다. 불안감이 치밀어 오르면 잠을 못 자는 예민한 성격이 괴롭다. 그래도 새벽은 밝았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화장대에 앉았다.​​


나는 첫째와 안방에서 둘이 자고 둘째는 아빠와 작은방에서 잔다. 작은 소리에도 금방 깨는 예민함 때문에 둘을 데리고 자면 밤에 한숨도 못 잔다. 가뜩이나 뒤척임이 많은 4살, 6살 아이들이다. 남편이 출장이라도 가서 두 아이와 같이 자는 날은 고통스럽다. 밤새 아이들의 발 놀림에 치여 넓은 침대의 귀퉁이에 떨어질 듯 매달려 잔다. 입혀줘도 벗어재끼는 조끼를 몇 번이나 다시 입혀주고 이불을 계속해서 덮어준다. '엥~!!'하는 소리와 깨면 다시 팔베개를 하고 재운다. 둘이 번갈아 깨는 일이 잦아 이것저것 챙겨주다 보면 하얗게 밤이 지나간다. 결국 첫째만 데리고 자는 것이 그나마 해결책이었다.

안방 구석 화장대 위에 화장품은 몇 개 없다. 지난 5년간 육아휴직하며 화장을 한 날은 열 손가락에 꼽힌다. 나에게 화장은 사치이고 불필요했다. 그 대신 화장대 위에 책을 올려두었다. 두 아이 가정 보육으로 나만의 시간은 화장실 가는 5분 남짓이 전부였던 나날들이었다. 그 안에서 어떻게든 나로 살고자 새벽 5시에 불을 밝히고 화장대에서 책을 읽었다. 다른 방 책상에서 읽었던 날도 있는데, 내가 옆에 없는 것을 알고 첫째가 귀신같이 쫓아 달려 나왔다. ‘엄마~~!!’ 하고 찾아와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옆방의 둘째까지 깼다. 그 사단을 피하고자 안방 화장대에서 읽기 시작했다. 그래도 첫째는 자주 깨지만, 엄마가 같은 방에 있다는 것을 알면 다시 잠이 들었다.​


노란 조명 아래 미리 텀블러에 부어놓은 뜨거운 물을 티백에 붓는다. 요즘 한창 읽고 있는 <걷기의 인문학> 책을 펼친다. 하루에 30분에서 한 시간 남짓 새벽의 책 읽기는 특별한 시간이다. 현실이 가정 보육의 고통에 침잠할 때 나는 책으로 숨었다. 잠시 책 속의 세상을 마주하면 현실의 질척임은 잊고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때론 해리 포터의 마법 세계로, 때론 에세이 작가의 소소한 일상 속으로 들어갔다. 그들을 따라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고 나면 다시 돌아온 현실이 조금은 살만했다. 책 속 세상처럼,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상상력들이 내 삶에도 어딘가에 숨 쉬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생겨났다.​

새벽 5시에서 6시는 거센 물살처럼 빠르게 흐른다. 그 시간은 내가 세상에 깨어나는 시간이자 나만을 위한 위로의 속삭임이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컵에 받쳐 들고 책장을 하나씩 넘긴다. 활자들이 공중으로 떠올라 내 마음속으로 뛰어든다. 거친 파도가 일렁거리던 마음이 호수처럼 잔잔해 지는 평온이 찾아온다. 어떤 활자라도 일단 가슴에 들어오면 그 나름의 위로가 되어준다. 일상의 작은 행복을 다룬 에피소드 한줄기도, 거대한 역사 책의 서사 한 단락도 한줄기 빛으로 내려왔다.​


새벽 6시, 둘째가 퍽퍽퍽 걸음을 놀려 안방 문을 날카롭게 연다. 내 웅장한 새벽 시간은 막을 내린다. 아이 둘과 치다꺼리하며 긴 하루를 시작한다. 이틀 삼일 같은 긴 하루……. 그 시간을 버텨낼 수 있게 해주는 건, 새벽 작은 시간의 틈 속에서 책을 읽던 순간들이었다.​



“구멍이나 비탈길이 불행이 아닌 삶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면, 높은 파도도 두려움 없이 즐기겠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그 사람에게는 모든 ‘현재’가 선물처럼 기꺼이 다가올 겁니다. “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 중에서


어느 날은 아침에 읽은 한 문장이 하루 종일 가슴에 머무른다. 마음을 돌봐주는 책 속 문장 하나로 하루가 특별하게 채워진다. 내게 읽는다는 것은 마음의 연료를 채우는 일이자, 조잡한 마음의 엉킨 실타래를 빗으로 빗겨내는 치유의 몸부림이었다.


3월이 되면 정식 복직을 하고 바쁜 아침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하는 동시에 아이들 등원 가방을 챙기고 옷을 입히고 아침밥을 차려 먹여야 한다. 전쟁 같은 아침 풍경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 바쁘고 심란한 아침의 틈에 새벽 독서시간을 끼워 넣을 수 있을까 걱정이 든다. 그래도 더 바쁘고 정신이 없을수록 그 시간이 내게 에너지와 힘이 될 것을 알기에 꼭 챙기리라 마음먹는다. 잠시라도 나만 생각하고 내 마음을 살펴보는 새벽시간이 있어야 내가 하루를 버틸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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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새벽은 어김없이 다가와 나를 응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