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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굿모닝선샤인 Mar 05. 2022

리스트의 <사랑의 꿈>

워킹맘으로 새롭게 시작하다

 


3월 2일 드디어 정식 복직일, 새로운 시작이 펼쳐졌다. 6시 반에 머리를 감고 가방을 챙겼다. 아이들 아침을 차리고 먹인 후 옷을 갈아입혔다. 이제 나는 워킹 맘으로서 살아가게 되었다. 벅찬 무게에 몸이 짓눌려왔다. 낯선 헤어짐에 아이들은 눈물을 뿜어냈다. 나도 마음이 먹먹했다. 남의 손에 돈을 주고 아이를 맡기게 되었다. 그 모든 변화가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지 마음이 자꾸 축축해졌다. 화장도 채 못한 얼굴을 겨우 훔치고 문을 나섰다.

 


아침 8시, 차 시동을 켰는데 생각보다 차가 더 막혔다. 넉넉히 잡아 30분 예상했는데, 40분은 걸렸다. 꽉 막히는 차는 지하차도에서 끈적이는 정체에 걸려들었다. 신호가 여러 번 바뀌어도 움직일 줄 모르는 답답함. 라디오 신호도 지지직거리며 끊기고 내 정신도 드문드문 끊기듯 아찔해졌다. 이러다 지각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른발로 액셀을 여러 번 눌렀다 떼었다. 운전 실력도 초보인데 매일 왕복 80분을 운전하게 되다니. 생각지 못한 사건의 전개였다. 조금만 운전해도 어깨가 빳빳하게 굳어오고 두통이 오는 예민한 나인데.. 이 난관을 어찌 이겨낼지. 숨이 막혀왔다.


 

숨이 가빠왔다. 숨을 쉬어야 했다. 유튜브에서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리스트의 <사랑의 꿈>을 플레이했다. 부드러운 피아노 소리가 차 안을 휘감았다. 긴 숨을 토해냈다. 조금씩 마음을 내려놓고 정신을 피아노 음률에 맡겨보았다.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이 가슴에 맺힌 눈물방울을 톡톡 터트려 주었다. 몽글몽글한 물방울들이 터지면서 마음을 괴롭히던 슬픔 조각들이 바닥에 내려앉았다. 잠시 괴로운 현실을 잊고 멜로디가 보여주는 세상 속에 머물렀다.


 

출근 전날, 오랜만에 피아노 레슨 실을 찾았다. 연주회가 끝나고 한동안 피아노가 꼴도 보기 싫었다. 매일 한 시간 이상 피아노 연습을 했고 그런 시간이 두 달 가까이 되니 지쳤다. 연주회에서 클라이맥스를 찍은 듯 피아노에 대한 열정이 극에 달했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너무 큰 에너지를 쏟아붓고 났더니 한동안 피아노를 쉬고 싶었다. 열심히 한 만큼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한 달 넘게 한 번을 안 쳤다. 복직이 다가오면서 이제 바빠지니 피아노는 더 멀어지겠구나 아쉬움이 생겨났다.


 

복직 전날, 피아노 레슨을 받았다. 무슨 곡을 연주하고 싶냐고 선생님이 물었다. 나는 연습할 곡을 찾아 유튜브 바다를 헤맸다. 추천해주신 몇 곡을 들어보는데, 들어보는 곡마다 너무 아름답고 황홀했다. 차이콥스키의 <어텀>, 쇼팽의 <에튀드>, 브람스의 <파가니니 변주곡>, 슈만의 <빠삐용> 등등 이것저것 듣다 보니 클래식이 이렇게 매력적이었구나. 다시 한번 느꼈다. 몇 시간을 밤이 깊어지도록 연주를 찾아들었다. 피아노 하나로 이렇게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구나 놀라웠다.


 

그중 리스트의 <사랑의 꿈>을 골랐다. 부드러운 도입부를 귀 기울여 듣는데 가슴이 찡해졌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두려움이 가득한 마음에 꽃잎 하나가 내려앉은 듯 마법처럼 마음을 위로해줬다. 아무리 힘들어도 잘 해낼 거라고, 어떤 힘든 일이 다가와도 그 안에는 즐거움과 행복이 있을 거라고 피아노 소리가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 위로에 마음을 기대고 싶었다. 레슨을 받으며 하나하나 음을 천천히 눌렀다. 그 마법의 주문을 배우게 되었다. 연습은 더뎠지만, 이곡을 완주하게 되면 내 일상에서의 어떤 어려움도 다 극복한 후가 될 것 같았다. 변화를 위한 매일의 노력. 피아노는 나에게 희망을 주고 따뜻한 온기를 전해줬다.


 

 막힌 도로에서 출근하는 직장인의 아침.  두려움이 만연한  안에서 <사랑의 > 연주를 틀었다.  이상 출근길이 고되지 않았다.  옛날 작곡가 리스트가 전하는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 세상엔 사랑이 있다고,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겨낸다고, 너는 잘할 거라는 응원을  170 내가 듣고 있다. 힘든 시간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되는 무언가는 언제나 주변에 있다. 피아노처럼, 클래식처럼. 누군가의 문자 메시지 하나로, 동료의 따뜻한  한마디로. 나는 오늘을 버틸 것이고 내일을 꿈꾸게  것이다. 그러므로  하루는  이상 어둡지 않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도 퇴근하는 차량으로 정체가 이어졌다. 차 안에서의 긴 시간, 나는 클래식을 듣고 영어 방송을 듣고 오디오북을 듣는다. 이제 이 시간들은 더 이상 낭비되고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충분히 즐기고 이용하고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다. 워킹 맘으로서의 삶이 무조건 힘들고 고되지만은 않다고 스스로를 토닥인다.


 

집에서만 있던 5년간의 시간. 잊고 있던 나 자신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가르치는 일을 정말 좋아했었지. 수업시간 후 학생들이 질문을 하러 나오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예쁘던지. 대답을 해주고 고맙다는 말을 전해줬다. 내 수업을 들어줘서 고마워,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줘서 고마워. 내 주변에 고마운 것들로 채워나간다. 매일 두통에 시달리고 벌써 목이 아파서 끙끙 앓지만, 올 한 해 워킹 맘으로서 나는 행복할 거야라고 주문을 외운다. 잃어버린 나를 찾고, 교사로서 자긍심과 자아존중감을 찾아보자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에는 더 좋은 엄마가 되어주자고 다짐해본다.


금요일 밤. Thanks God it is Friday가 절로 나온다. 휴일이 이렇게 달콤했구나. 5년 만에 느껴보는 휴일의 자유에 기쁨이 흘러넘친다. 그래 이거 봐. 좋은 일도 많잖아. 한주 고생하고 맞이하는 휴일은 정말 보람되고 감사한 거구나.


내 삶은 내가 만들어간다. 무엇으로 채울지는 내가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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