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복직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굿모닝선샤인 May 24. 2022

조직생활의 고됨과 혼밥 로망

혼자 일하고 혼자 밥먹고 싶다


조직생활의 피곤함

5년간 육아 독립군으로서 혼자서 집안일을 운영하고 육아를 해내다가 갑작스럽게 조직이라는 공간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세월은 흘러 그 조직의 시스템은 대거 변화하여 따라가기에 헉헉거렸다. 새로운 시스템이 생겨났고 기안 하나 올리는데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팬데믹으로 마스크 쓴 얼굴들은 따듯한 유대감이나 연대의식을 끈끈이 쌓아올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


워킹맘으로 아침 저녁 고군분투하는 나날들이 조직에 정을 붙이는 걸 힘들게 했을까. 조직에서도 가정에서도 죄인처럼 총받이가 되어 외로이 홀로 전쟁터에 나간 기분이 든다. 조직에서는 도망치듯 일찍 퇴근하는 내 모습이 불성실하고 무책임하게 보일까 봐 늘 전전긍긍하며 죄지은 사람처럼 마음이 무겁다. 집에서는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엄마가 되어 아이들의 서러운 눈물을 받아내야 했다.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랑 등 하원하고 싶어' 라는 아이의 울음에 조용히 뜨거운 울컥임을 삼켜야 했다. 두 직장에서 날아드는 쓰라린 총상으로 마음은 너덜너덜해져 갔다. 온전히 마음을 달랠 시간과 공간이 필요했다.


혼자 시간을 갖는 것에서 에너지를 얻는 인프피인 나는, 사무실에서 사람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는 일 자체가 피곤함과 스트레스다. 조용히 각자 할 일을 하면 얼마나 쾌적하고 좋으련만, 열 명 남짓한 공간에는 늘 자기 이야기를 크게 떠드는 사람이 존재한다. 개인적인 전화를 큰 소리로 말하고 자기가 하는 일을 혼잣말로 공기 중에 뿜어내는 사람들.


"아 이젠 이거 해야지. 아우 왜 이렇게 힘드나. 자기 그거 했어? 이거 좀 줘봐, 커피좀 마셔야겠다"


그런 사람들은 속으로 해도 되는 말들을 늘 거침없이 뿌려댄다. 하지 않아도 되는 어젯밤 티브이 본 얘기까지 쉴 새 없이 조잘댄다. 그런 말을 아무런 방어책 없이 어찌할 수 없이 피할 수 없이 듣고 있어야 하는 자체가 고역이다. 입을 고무찰흙으로 막을 수 있다면 얼마나 간편할까. 열명 남짓 작은 규모의 사무실이라 익명성에 묻힐 수도 없어서 어쩔 땐 맞장구치듯 대답을 억지로 해야 할 때도 있다. 해야 할 일은 산적해있는데 그런 일에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불필요한 낭비라니.


그럴 때 나는 그 공간을 피하려 화장실로 도망가기도 하고 빈 사무실에 숨어들어가기도 한다. 빈 공간에 혼자 책 하나에 의지한 채 앉으면 얼마나 마음이 가벼워지는지. 요즘은 책을 펼치기만 해도 마음에 잔잔한 평화가 찾아온다. 육아 스트레스에서 이겨내려 책을 들었던 것처럼 직장 스트레스에서 헤어 나오는 데에도 책은 늘 다정한 친구가 되어준다.


같이 밥 먹기도 일이다


집에서 육아할 때 가장 아쉬웠던 것은 남이 해주는 밥이었다. 직장에 복귀하고 가장 좋은 것은 급식이다. 남이 해주는 밥, 반찬도 다양하고 매일 바뀌는 밥. 나는 밥 먹으러 학교 가는 학생들 마음이 이해가 될 정도로 급식이 감사하고 설레었다. 그러나 누군가와 어깨를 마주하고 밥 먹는 시간 자체는 고역이다. 마음 맞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공간에 같이 일한다는 이유로 불편한 마음으로 같이 밥을 먹는 일은 생각보다 고되다. 아무 말 없이 먹고만 싶은데 주위에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리면 나도 잘 모르는 옆에 앉은 동료와 친한척하며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는 강박감이 생겨나 뱃속을 괴롭힌다. 천천히 여유 있게 즐기며 먹고 싶은데... 밥시간은 늘 나는 왜 말을 잘 못하고 사교성이 부족할까 하는 자괴감이 불러온 복통으로 소화불량이 된다. 억지로 부리나케 채운 배는 늘 탈이 난다. 조직생활은 피곤하다. 여러 사람들과 친교 하며 어울리는 자체가 에너지와 감정 소비인 나에게는 더더욱.


혼밥 로망


<혼자 점심 먹는 사람들의 위한 산문>에서 몇몇 작가가 조직에서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것의 불편함을 이야기하며 혼자 점심 식사를 즐기는 자유를 찬양했다. 나도 더없이 공감한다. 혼자서 아무 눈치도 안 보고 밥을 즐겁게 여유 있게 먹을 수 있다면 그보다 큰 행복이 어디 있을까. 팬데믹으로 외식은 관뒀고 이제 와 혼자 밥을 먹자니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하고 두렵다. 가장 마음 편한 건 음식을 테이크아웃해서 차 안에서 먹는 것이다. 집에는 늘 아이들이 우글거리니 밤에 불 꺼놓고 먹지 않는 한 불가능하고... 불편한 차의 좌석이지만 좋아하는 드라마 틀어놓고 포장해온 포케 샐러드를 먹는 일이 유일한 혼밥이자 내게 보내는 선물같은 위로다.


언젠가는 용기를 내어 근사한 식당에 가서 당당하게 스테이크와 파스타 샐러드를 즐기리라. 주위의 커플이나 친구와 같이 온 사람들이 저 사람은 왜 혼자 먹을까 하는 불쌍한 시선을 힐끔거려도 아무렇지 않아 하며 한 수저 한 수저 음미하는 밥상을 즐기고 싶다. 이제 어디에도 흔들리지 않는 불혹이 다가오는데 그까짓 것 못하겠나. 지나고 나면 남의 시선 따위는 가장 하찮은 일 중에 하나일 테니.. 당당하게 내 마음을 토닥이며 나에게 미소 띤 얼굴을 보여주리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