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리뷰
1960년대 대만, 14살 소년 ‘샤오쓰’는 국어 시험을 망친다. 그로 인해 야간부로 반을 옮기게 되고 불량 집단인 '소공원'파와 어울린다. 우연한 기회로 마주친 ‘밍’이라는 아름다운 소녀를 좋아하게 되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소공원파의 두목 ‘허니’의 전 애인이었다. 이후 샤오쓰는 경쟁조직인 217파와 얽히게 되고 점차 혼란으로 가득 찬 학교생활을 이어간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 에드워드 양)은 1959년 대만에서 실제로 발생한 미성년 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살인사건보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군사정권의 정치탄압과 더불어 중국 대륙에서 넘어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는 샤오쓰의 부모. 그 밑에서 혼란스럽고 불안한 청소년기를 보내는 이주민 2세대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감독인 에드워드 양이 그려낸 1960년대 대만의 모습은 조금은 충격적이고 뜬금없지만, 그로 인해 더욱 생생하다.
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갈등, 불안을 인물과 메타포를 통해 은은하면서 관조적으로 비춰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만 캐치할 수 있는 예술적 배경지식 따위 없어도 14살 샤오쓰의 시선과 감정을 쫓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움이 없었다. 흡사 <파리대왕>을 연상시키는 아이들의 폭력성과 집단행동 또한 논리적인 이유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어도, 어렴풋이 그들의 불안과 혼란을 읽을 수 있었다. 나 또한 불같은 청소년기를 보냈기 때문일까. 그야말로 미성숙과 불안이 합쳐진, 어떤 불완전함의 완전체로 보이는 샤오쓰와 아이들은 이성과 논리로 가득 찬 어른의 세계에 있는 나에게 신선하면서 익숙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샤오쓰가 밍의 연기를 칭찬하는 영화감독에게 “자연스럽다고? 진짜랑 가짜를 구분할 줄도 모르면서 영화를 찍는다고? 당신이 뭘 찍고 있는지 알기나 해?”라고 외치는 장면은 스스로에게 던진 자조적인 말은 아니었을까. 사실 샤오쓰는 밍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밍은 그저 아름다움을 생존의 수단으로 사용하며,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는 처절하게 불쌍한 소녀일 뿐이다. 밍이 만난 수많은 남자들 중 그녀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본인일 것이라는 순진한 착각. 그녀를 가질 수 없다는 답답함과 무력함, 분노는 마치 어린아이가 고장 난 인형을 의미 없이 두들기는 것처럼 미성숙한 소년이 폭발시킨 나약함 그 자체였다.
누구나 한 때 샤오쓰였다.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는 차치하고, 내가 세상에 중심에 있다고 믿는 순진한 착각의 시기는 누구에게나 있었다. 별 것 아닌 문제로 친구, 가족과 세상을 잃은 것처럼 고민하고 울부짖기도 했다. 충동적이고 비이성적인 영화 속 아이들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차는 꼰대(?!)스러운 자세보다, 튀어나오는 에너지와 충동을 삼키기 어려웠던 옛 시절을 떠올려야 한다. 그것이 샤오쓰의 세계다.
한 영화 평론가가 말하길, 기교가 없고 담백할수록 오래 지나도 명작으로 남는다고 한다. 30년도 더 된 이 영화가 세련되어 보이는 이유는 차분하고 관조적인 연출에 있다.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관망하는 시선처럼 느껴지는 롱쇼트와 편집 덕분에 격정적이고 혼란스러운 이야기를 보다 건조하게 집중할 수 있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중 유일한 중화 영화라고 한다. 한 나라, 어느 시대의 빛바랜 순간이 눈 앞에 펼쳐진다. 4시간 러닝타임의 압박만 이겨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