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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Dec 15. 2022

12월 14일 : 처음 먹는 한식

Kimchi house

아침은 어제 사온 샐러드였다. 크루통, 와인 안주로 들어있던 햄, 치즈를 야무지게 뿌려서 과수가 차려줬다. 커피도 함께 내려줬다. 너란 여자, 감동을 주는 여자... 처음엔 네가 내 딸이면 좋겠다고 했는데 어떨 때는 엄마 같고, 어떨 땐 물건 잘 잃어버리는 사람 같고, 볼이 빨개졌을 땐 몽골 소녀 같고. 모습이 많은 친구다.



5만 원 주고 먹은 샐러드 볼보다 훨씬 맛있었다!






오늘은 과수와 함께 한식집을 가기로 했다. 며칠 전부터 노래를 불렀던 곳이다. 이름하여 Kimchi house. 벌써부터 근본 미가 느껴지는 상호명에 가슴이 웅장해졌다. 




오늘은 아침 일찍 재스퍼 국립공원까지 걷기로 했다. 곰을 만날 것 같아서 슬쩍 무서웠는데, 곰이 나오는 지역은 따로 있었다. 우리는 트윈 레이크까지 걸었다. 길이 이게 맞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사람이 걷는 길이 따로 있었다. 이곳도 눈이 많아 아이젠을 착용했다.





중간에 만난 이름 모를 호수. 


-저기 들어가도 되는 거 아니야? 발자국이 있어. 

-자세히 봐봐. 사람 발자국이 아니야.

-무서워...





나무는 이렇게 크고, 우리는 이렇게 작다. 그래도 야무지게 오늘 하루만 보 넘게 걸었다. 재스퍼에서 하루도 맑지 않은 날이 없었다. 다만 오늘은 발이 조금 시리더라. 다음 주부터 기온이 많이 떨어지니 그때는 발바닥 핫팩을 발바닥에 붙여보도록 하자. (이제껏 배에 붙였음)





수상한 우리, 겉모습은 이래도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호수가 나왔다. 오늘따라 유난히 멀리에 있는 산이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숙소에 가서 그림으로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음. 지금 안 그리고 있지만 말이다... 오늘따라 글이 잘 안 써진다. 아니, 오늘 따라라는 말 꽤 웃긴데? 언제는 잘 써졌다고요! 하여튼 붙잡는 것도 일이라 생각하고, 노트북을 붙잡고 있다. 그러다가 브런치 일기 영영 못 쓸 것 같아서 잠시 머리 식힐 겸 하루 일과를 남긴다. 






멀리 오두막도 있었다. 아마 관리해주는 센터 같은 것일 거다. 저런 곳에서 살면서 데이비드 소로처럼 살면 좋겠다. 오늘 저녁엔 월든이나 읽어야지.









둘 다 아무 말 없이 멀찍이 서서 호수를 바라보고, 사진을 남겼다. 과수와 여행 오길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 중 하나다. 서로 대화 나누지 않고, 각자의 시간 속에서 잘 존재할 수 있을 때. 아름다운 풍경 앞에서 우리는 말이 적어진다.





돌아오는 길에 세븐일레븐이 있어서 들렀다. 핫도그와 피자 등을 팔더라. 이곳엔 유난히 반가운 한식이 많이 있었다. 




튀김우동이다 익을 때까지만, 내 곁에 있어줘. 권나무의 튀김우동을 들으며 재스퍼에 왔는데 이곳에 튀김 우동이 있었다. 신라면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구매. 




국립공원 산책을 마치고 바로 김치 하우스로 향했다. 고급진 클래식과 멋들어진 유리 글라스에 놀라버린 우리. 와중에 한자 액자가 한국 식당 느낌을 줬다. 사장님은 한국분이셨고, 아주 멋진 모자를 쓰고 있었다. 재스퍼에 있는 윤식당이라고 누군가 그랬던가. 정말 그런 느낌이었다.





김치는 원래 따로 주문해야 주는데, 우리는 한국 동포라서 서비스로 챙겨주셨다. 반갑고 기쁜 마음. 이 두 개의 반찬과 밥만 먹어도 맛있었다. 본 메뉴가 기다려졌다.





곧이어 나온 제육볶음과 순두부찌개. 솔직히 한국에서 먹는 백반보다 맛있었다. 사장님과 길게 이야기를 나눴는데, 20년 전부터 캐나다에 오셨다고 한다. 아들 교육을 위해 기념품 가게 일을 하다가, 용기 내어 식당을 하게 되었다고. 원래 요식업을 했던 경력이 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집에서 하듯 똑같이 만들어서 팔았다고 한다. 사장님의 마디가 두꺼운 손가락을 보며 그간의 세월을 느꼈다. 나도 언젠가 연식당을 정말로 열 수도 있으려나. 이렇게 맛있는 제육볶음을 아직 만들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군만두, 김치 하우스의 숨은 히든 메뉴다. 정말 중국집보다도 더 맛있다. 어쩜 이렇게 모든 면이 고르게 잘 익었을까. 재스퍼 여행 후반에 오게 된 것이 아쉬울 정도로 좋은 기억이었다. 



배불리 먹은 과수는 이렇게 말했다. 아, 저녁 못 먹겠다. 나는 물었다. 우리 집에서 메이플 쿠키랑 우유 먹을 건데! 아, 맛있겠다.(?) 1초 만에 기억 상실 모먼트.


4% 우유는 신기루였다. 3.25% 우유였음을... 


2% 우유보다 더 고소하고 진한 맛이었다. 앞으로 우유는 이걸로 간다. 메이플 쿠키는 슈퍼에서 파는 것치고 몹시 고급스러운 맛이었다. 어릴 때 언니가 캐나다 여행 다녀와서 사줬던 기억이 남아서 사 먹었는데 정말 맛이 있다. 근데 기억 속 쿠키는 더 크고 포슬포슬한 맛이었는데, 그것도 신기루일까? 기억 속 메이플 쿠키를 찾는 여정은 끝나지 않는다.






과수는 저녁일을 하러 나갔고, 나는 오랜만에 집에서 쉬면서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나의 저녁은 튀김우동과 요거트. 근데 튀김우동에 튀김이 없었다는 슬픈 사실...





과수가 전리품으로 사 온 맥주. 뭔가 밖에서 사 먹는 수제 맥주 같은 맛이 났다. 자세히 보니 디자인도 너무 예쁘네. 팔로워분이 꼭 먹으라고 추천해줬다고 한다. 근사한 맛이었다.





어제 산 안주가 거의 새것처럼 남아있었다. 가성비가 넘치는 구성. 한국에도 이렇게 팔아주면 좋겠다. 그러면 연식당 운영이 훨씬 수월할 텐데... 


가운데 손가락이 아프다. 돌아가면 치료를 받아야겠다. 조금만 더 버텨줘, 내 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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