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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 Jan 04. 2023

1월 3일 : 짐 보내기, 샐러드, 글쓰기

가벼운 하루였어

과수가 캘거리를 떠났다. 어쩐지 나도 새벽에 눈이 떠졌다. 뒤척이며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서울에서 만나고 싶어서 일부러 나가지 않았다. 과수는 역시 과수였다. 핸드폰을 두고 올 뻔했다는 소식을 카톡으로 전한다. 본인 스스로가 레전드라는 것을 알아버린 너. 앞으로 더 전설이 될 일만 남았다. 밴쿠버에서 펼쳐질 그녀의 마지막 모험을 응원한다.





나는 전날 정리해둔 짐을 들고 10시쯤 캘거리 다운타운으로 나왔다. 한미포스트에 들르기 위해서였는데 분명 주소에 맞게 찾아갔는데 이상한 가게가 대신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아저씨가 중국어를 막 건넨다. 미안하다고, 영어로 말해달라고 하니까 주인이 이사 갔다고 한다. 아니 갑자기요? 혼란에 휩싸인 찰나, 감사하게도 번호를 넘겨받았다. 전화가 되는 유심이라 다행이지. 익숙한 한글로 이전된 주소를 전달받았다. 새로운 주소로 향했다.



귀찮아서 우버를 탈까 했는데 어디든 만능이던 삼성카드로 금액 충전이 되지 않는다. 이 카드가 안 되면 내가 가진 다른 카드도 다 될 턱이 없다. 다른 옵션은 페이팔이었다. 가입하려고 하는데 뭐 이리 귀찮고 복잡한지. 현재 내가 가진 번호로 가입해야 인증 번호를 받을 수 있었는데 주소지를 한국이 아닌 미국으로 입력해야 했다. 언젠가 바꾸겠다는 다짐으로 뉴욕에서 머물 호텔 주소를 입력해 뒀다. 한참 씨름한 끝에 가입과 등록 완료. 그걸 시도하는 과정에서 이미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블루라인을 타고 서쪽으로 오니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월마트가 있구나. 소문대로 엄청 크겠지. 얼빠진 채로 피자가게를 보며 맛있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111번 버스가 왔다. 분명 어플에서는 50분 지연이라고 했는데 그 전설의 녀석이 도착한 것이다. 허겁지겁 달려가서 탄 후 땡큐라는 말을 연신 외쳤다. 또 나만 서둘렀지. 차는 3분쯤 정차하다가 느긋히 출발했다.






주소를 찾아가 보니 타운하우스가 쭉 펼쳐졌다. 처음엔 짐을 들고 나온 게 괜찮았는데 시간이 지나니 점심때가 되면서 점점 지쳤다. 마침 한미포스트 담당자님과 5분과의 통화 끝에 제대로 된 주소를 찾을 수 있었다. 감격의 순간.


구글맵에 변경된 주소가 반영될 틈이 없었던 게, 건물주가 갑자기 말을 바꿔서 1월 2일에 갑자기 이사 나왔다고 한다. 오늘이 1월 3일이니, 어제 찾아갔으면 더욱 헛걸음했을 노릇이다. 나는 한 달 동안 여행을 하며 입지 않는 옷을 박스에 담았다. 그중 하나가 롱패딩... 추운 나라에서 오히려 짐이 될 줄 몰랐지. 그리고 부모님이 좋아하는 영양제도 6개 챙겼다. 들지 않는 백팩도 넣고, 이것저것 넣다 보니 크게 한 박스가 나왔다. 담당자님은 내가 고생했다고 가격도 조금 할인해 주셨다. 마침 달러가 부족했던 나 녀석... 머쓱해하니 한국 계좌를 알려주신다. 당장 입금을 하려고 했는데 전산 점검 시간... 시간이 좀 지나니 결제 확인 문자가 왔다. 캐나다 여행에서는 유난히 한국인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감사하고 귀한 일이다.


나는 여행이 12일쯤 더 남았으니, 택배가 나보다 먼저 도착할 예정이다. 많은 짐을 부치고 나니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마침 페이팔 등록도 성공하지 않았는가. 대중교통으로 가는 법을 찾아보니 1시간, 우버는 18분이 걸린단다. 이럴 때는 주저 없이 시간을 사는 쪽을 택한다.


우버 기사는 무척 친절한 사람이었다. 생각해보니 내 인생 첫 우버 이용이 아닌가. 나의 첫 번째 우버라고 하니까 그럼 한국에서는 뭘 탔냐고 물어본다. 택시가 저렴해서 택시를 많이 탔고, 우버는 많지 않다. 택시기사들은 우버를 싫어한다, 이렇게 말하니 그는 웃으며 우버는 이곳 택시기사도 싫어한다고 말한다. 부족한 영어이지만 이런저런 대화를 쉼 없이 나눴다. 내가 런던에도 가봤다고 하니까 그는 나보고 리치하다고 한다. 내가 리치야? 너무 기뻐!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캘거리 날씨에 대해서도 말했다. 이곳은 겨울에도 늘 맑아. 춥지만, 적어도 흐리지는 않아. 여름에도 그렇고. 그게 캘거리의 매력이야. 과연, 오늘도 푸른 하늘이었다.



점심을 차려먹을 기운이 없으니 집에서 가까운 kim's katsu로 향했다. 새로운 얼굴의 사장님이 눈에 띄었는데 그분이 Kim으로 추정. 하지만 부끄러워서 영어로 주문했다. 저번에 히레카츠가 맛있어서 오늘은 모둠 말고 히레카츠만 주문.





주문하고 음식을 갖고 나오는데 눈에 띈 야생동물. 죽었냐고 물어보니 죽었고, 얼었다고 했다. 눈빛이 텅 비어있었다. 급 시골 풍경 같았음.




히레인데 등심처럼 크고 넓은 모양이다. 아니 이곳 돼지의 안심은 이렇게 큰 건가...? 팁 포함 가격 21달러. 반찬이 다양해서 좋다. 미소도 따뜻하다. 저렇게 많은데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잘했지, 뭐.








과수야, 나는 잘 있어. 너도 잘 있길 바라. 괜히 빈자리가 느껴지고 애틋하네.






오늘 계획이 짐 보내고, 코인 세탁소에 다녀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집 근처에 도보로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택시를 타면 상관없지만 세탁을 4번 할 수 있는 돈이 나와서 배보다 배꼽이 크다. 그래서 나는 손세탁을 하기로 다짐. 세제도 가져와서 세탁은 어렵지 않은데 빨래를 말려둘 곳이 없어 걱정이었다. 집안을 뒤져보디 대걸레가 나온다. 걸레를 의자 위에 세워두고 닦아서 그 대에다가 옷을 널어뒀다. 집이 건조해서 금방 마를 것 같다.




우버 앱을 둘러보니 우버이츠가 나온다. 괜히 햄버거를 먹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요 며칠 건강한 음식을 먹지 못했다. 마침 장본 재료도 남았겠다 샐러드를 만들었다. 여기에 파스타만 추가하면 탄단지 완성인데 손세탁을 한 후로 면을 삶을 의욕이 없어서 (귀찮음) 그냥 칼로만 만드는 요리. 아보카도가 아주 잘 익었다. 과수가 남기고 간 요거트는 내가 잘 해치웠다. 이제 오렌지주스가 남았군.




지금 내가 글을 쓰는 풍경. 좋은 노래를 들으니 기분이 편안해지는군. 오늘은 글을 꽤 많이 썼다. 엄청은 아니고 3000자? 거기서 500글자를 덜어내니 더 담백한 글이 됐다. 내일은 구독자님들을 만나는 날이다. 매일이 기대되는 나날들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Usxuh5zod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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