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감기에 걸린 지 삼 일째, 미열이 조금 있다. 웬만하면 입맛을 잃지 않는 나답게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부터 뭘 먹을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참고로 어제는 따뜻한 죽을 왕창 끓여서 다 먹었다. 이러니 몸이 축나지 않지.
거실로 나와 보니 어글리 어스(내 돈 내산)에서 보낸 택배 박스가 놓여 있었다. 출근하는 가족 중 누군가가 들여놓은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못난이 채소들이 온다. 이번 주에는 왕 토마토 2개, 양파 3개, 주키니 호박 1개, 오이 1개, 포기 상추 1포기 등등이 들어 있었다. 못생겼지만 싱싱하고 양이 적어서 모두 먹는 편이고, 남으면 찜을 한다. 덕분에 채소를 사야 할 일이 거의 없다.
오이 하나를 채 썰어서 미역과 식초를 넣고 상큼한 냉국을 만들었다.
언젠가 남편이 "니가 만든 음식이 그렇게 맛있냐?"고 물은 적이 있다.
대답은 Yes!
머리가 조금 띵하다. 감기약은 생략하고 비타민 C를 먹었다. 감기약을 먹으면 졸리고, 푹 쉬겠다고 낮잠을 자면 밤새 깨어 있어야 한다.
지나가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머리를 감아야 하는데 귀찮다, 고 생각하다가 새 샴푸바가 떠올랐다. 지난번에 남은 핑크 샴푸바의 부스러기를 모두 썼기 때문에 새로운 샴푸바를 개봉했다. 색깔은 무려 아쿠아 블루.
머리를 감고 나오니 오전 내내 시끄럽게 오르내리던 이삿짐 사다리가 자취를 감췄다. 열어둔 창으로 더운 공기가 들어온다. 수국과 나리꽃, 루드베키아가 피고 풀이 무성하게 자라는 유월이 끝나가고 있다.
다음 주는 7월, 일기예보는 비의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