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속초에 놀러 갔다. 여행은 주로 가족끼리, 또는 남편과 둘이서만 다녔고, 친구부부들과 숙소를 얻어서 간 건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의 취향을 따라 하는 여행은 신선하고 즐거웠다. 꼭 바다전망이어야 한다는 친구의 뜻에 따라 택한 숙소에서 밤에는 수평선에 빛으로 바느질을 해놓은 것 같은 오징어잡이 배들을 보았고 새벽에는 구름 사이로 수줍게 올라오는 해돋이를 보았다. 근사한 식사를 했으며 울산바위가 보이는 카페와 바닷가의 카페를 찾았다. 그동안 모아둔 회비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밤에 바닷가를 걷고 돌아와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제안했다.
“우리 다 모인 김에 돌아가며 자신의 장점 다섯 가지씩 이야기해 보자.”
다들 눈동자가 위로 올라가며 생각을 더듬었고, 몇 명은 생각이 안 나서 못 하겠다고 말했다.
“무조건 해야 돼. 내가 먼저 하고 지목하는 사람이 다음 차례야.”
모두 20대 초반부터 알던 사이라 이런 막무가내가 통했다.
“내 장점은 첫째, 방향감각이 좋다. 둘째, 뭐든 재지 않고 하고 본다. 셋째, 꾸준하다. 넷째, 잘 먹는다. 다섯째, 혼자서도 잘 논다. 다음은 000.”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고, 다음 친구의 첫 번째 장점이 예쁘다는 것이어서 모두 싱긋 웃었다. 남자들은 대부분 성실, 근면, 정직이 들어갔다. 한때 총명한 모범생이었던 그들 덕분에 우리는 크게 잘 되지는 않았지만 고만고만하게 평탄한 삶을 살았다.
“이런 얘기하니까 옛 생각이 나네.”
누군가 말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의 우리 부모보다 더 나이가 든 나와 친구들은 아주 잠깐 젊은 시절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회복했고, 다음 날 찍은 사진 속에선 오롯이 현재의 제 모습을 되찾았다.
“자 이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장점 다섯 가지를 말할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