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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스텔라 Aug 06. 2018

#0 그 아저씨가 나를 구했다고?

사회복지사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

    


     

  집에서 승용차로 5분만 가면 도시 사람들의 로망이라는 동해를 볼 수 있다. 강릉의 커피 명소인 안목항에는 전국의 관광객이 모여든다. 허리를 다정히 감싸 안고 걷는 커플들, 아이와 함께 모래 놀이하는 부모들, 깜찍한 포즈로 사진 찍는 청춘들을 바라보노라면 나도 어느 여행지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오늘도 안목 바다가 보이는 커피거리에 왔다. 커피의 향을 따라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를 찾았다. 전망이 좋아 사색하기에 안성맞춤인 소파에 앉아 라테 한 잔을 마신다. 창문 너머로는 시야를 가득 채운 수평선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한가로이 일렁이는 잔물결을 따라 기억이 찾아든다.


  ‘철수 아저씨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아버지는 출장 중이셨고 어머니는 이모네 집에서 종종 천에 예쁜 자수를 놓았다.

  늦은 밤, 우리 집에 불이 났다. 불은 2층까지 번졌고 불길이 다가오는 것도 모른 채 나는 잠이 들어 있었다. 눈을 떠 보니 도로변이었다. 기침하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애가 놀라서 오줌을 쌌네…….”

  옆에 있던 이모가 당황한 엄마에게 말했다. 다음 날에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하는 이야길 들었다.

  “합선으로 불이 났대. 철수 아니었으면 애 죽을 뻔했어.”


  친구들과 바보라 놀렸던 그 아저씨가 나를 구했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서 어린 마음에도 철수 아저씨에게 미안한 감정이 일었다. 나라면 과연 불길에 뛰어들 수 있었을까…….

  며칠이 지나 아버지께서 말씀해주셨다. 철수 아저씨는 2층에 애가 자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무작정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를 안아서 내려왔고. 나는 다행히 아무 데도 다치지 않았다. 아버지는 철수 아저씨 손을 잡으며 몇 번이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아버지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아버지는 나에게 은혜를 평생 잊지 말라고 하셨다.


  얼마 뒤 우리 집은 이사를 했고 그 후 철수 아저씨를 볼 수가 없었다. 불길 속에서 나를 구해 준 철수 아저씨는 내 기억 속에서 그렇게 희미해져 갔다. 성인이 돼서 찾고 싶었지만 그의 행방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내 가슴 한편엔 늘 순박했던 철수 아저씨가 자리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그때였던 것 같다.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철수 아저씨에게 받은 은혜를 갚고 싶었다. 회사생활을 하던 나는 20대에 진로를 바꿔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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