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일해서 번 돈으로 가장 먼저 샀던 물건, 기억나세요?
장애인과 함께 지내다 보면 그들의 행복이 궁금할 때가 있다. 물질적 ‧ 정신적 풍요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장애인은 무엇에서 행복을 느끼는 걸까.
사랑과 재채기는 타인에게 숨길 수 없듯이 주머니 속의 돈도 감출 수 없는 욕망이라고 했다. 돈이 생기면 마음이 든든해지고 평소 갖고 싶은 것이 떠오르기도 한다.
정순 씨에게도 오늘이 그런 날인가보다. 며칠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이 생겼다고 했다. 꼬박꼬박 모은 돈으로 무얼 살까 궁리하더니 앞치마를 사겠다고 했다. 왜 하필 앞치마일까. 순간 궁금증이 일었는데 자신이 일하는 식당에서 입을 앞치마라고 했다. 들뜬 정순 씨의 모습을 보니 빨리 앞치마를 사러 나가야겠다.
‘없는 것 빼고는 없는 것이 없다’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저렴한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다이소로 향했다. 반듯하게 진열된 상품들을 살피며 천천히 매장을 돌았다. 비록 백화점 같은 고급풍은 아니었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구경하는 즐거움은 백화점 쇼핑 못지않았다.
드디어 정순 씨가 찾는 앞치마 코너에서 발길을 멈췄다. 형형색색의 앞치마를 보니 평소 깔끔하면서 열정적인 정순 씨에게는 붉은색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정순 씨는 여러 개의 앞치마를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내 짐작대로 장미꽃 무늬가 그려진 앞치마를 골랐다.
“이거 어때유?”
“정순 씨가 이 앞치마 고를 줄 알았어요. 잘 어울려요!”
“그랬슈? 선생님도 이런 앞치마 좋아하는구나?”
“호호호.”
우리는 장미꽃 앞치마를 앞에 두고 대단한 선택을 한 것처럼 호탕하게 웃었다.
계산대 앞에 선 정순 씨는 가방에서 지갑을 꺼냈다. 그 지갑에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소중한 돈이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이거 얼마에유?”
“6,000원입니다.”
“여기 있슈, 육천 원 맞쥬?”
“네. 감사합니다.”
직원에게 앞치마 값을 지불하는 정순 씨의 얼굴에는 흐뭇함이 서려 있었다. 나의 눈에도 그녀가 당당하게 느껴졌다.
“내가 번 돈으로 사니까 기분 좋네유, 이게 얼마만이야!”
삶의 애환이 녹아있는 것 같은 정순 씨의 이 한마디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정순 씨를 바라보았나 보다. 나를 재촉한다.
“선생님, 안 가요?”
“아! 가야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정순 씨의 발걸음이 활기찼다. 굳게 쥔 그녀의 손에는 앞치마 쇼핑백이 살랑살랑 흔들거렸다. 그것을 바라보는 내 눈에도 행복이 살랑거렸다. 정순 씨와 나는 지금 같은 행복을 느끼는 걸까!
“정순 씨, 내일부터 이 앞치마 입겠네요?”
“이제 이거 하고 설거지해야지. 거기 있는 거 더러워서 혼났네.”
정순 씨의 너스레에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고 정순 씨가 가장 좋아하는 사이다를 나눠 마셨다.
며칠 뒤 정순 씨가 일하는 식당에 갔다. 정순 씨는 붉은 장미가 새겨진 앞치마를 자랑스레 입고 있었다.
“정순 씨 앞치마 잘 어울리네요!”
“나도 마음에 쏙 들어유.”
옆에 있던 사장님도 앞치마 칭찬을 하는데 느닷없는 정순 씨의 한마디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사실은 여기 앞치마가 워낙 더러웠어!”
“으…….”
나는 순간 멘붕. 사장님 또한 나를 보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먼지 하나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청소하는 정순 씨의 성격을 사장님은 잘 알고 있었다. 장애를 지닌 순수한 정순 씨의 솔직한 말투란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순간적인 어색함을 떨치고 우리는 다시 멋쩍게 웃을 수 있었다. 역시 정순 씨는 너무 톡톡 튀어서 사이다를 좋아하나 보다.
오늘 정순 씨의 앞치마가 유독 빛을 발했다. 자신이 번 돈으로 앞치마를 사서 기분이 좋다는 정순 씨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돈을 벌어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 행복했었나 보다. 앞으로도 의욕을 잃지 않고 저축하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누렸으면 좋겠다.
그래도 정순 씨, 사이다는 많이 마시지 말아요. 말투까지 너무 톡톡 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