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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스텔라 Oct 15. 2018

#11 짝사랑은 아픈 거야.

첫사랑이자 짝사랑은 아린것이다. 오늘은 따뜻한 국수를 먹어야 할까 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말라. 미워하는 사람도 만나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나니. 불교신자도 아닌 내가 법구경에 나온다는 이 말을 자주 생각할 때가 있었다. 갓 사회복지사가 되어 장애인 시설인 애지람에서 일을 시작했던 초년생 때의 일이었다.    

  

  사회복지사는 합리적 이타성을 발휘해야 하는 직업이다. 사람이나 집단의 이해관계에 얽히면 이타심도 이기심의 한 행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담당 역할이지만 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전문가 답지 못한 서운한 감정이 생길 때가 있다. 

  이용인과 복지사는 너무 오랜 시간 함께 생활을 하면 그 복지사의 성향을 닮아간다. 따라서 1년씩 담당 복지사를 바꿔주는 것이 이용인의 다양한 삶에도 도움이 된다. 담당이 바뀌는 때가 오면 정들었던 이용인과 이별하는 듯한 서글픈 순간이 되기도 한다.      


  담당 복지사가 되어 처음으로 함께 생활했던 미옥 씨는 지적장애 2급이었다. 언어장애도 있었지만 몸짓으로 간단한 의사 표현은 할 수 있었다. 미옥 씨는 정이 많고 밝은 성격으로 잘 웃는 사람이었다. 간식이 생기면 누가 볼까 봐 살짝 내 가방에 넣어두고 빨리 먹으라는 손짓을 하기도 했다. 언제 어디를 가도 담당 복지사인 나를 오히려 동생처럼 챙기며 늘 살갑게 대했다. 그녀의 천진하고 밝은 성격에 나도 미옥 씨에게 고마운 마음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가족과도 친해질 수 있었다. 


  그녀의 가족은 언니 셋과 오빠가 있었다. 특히 미옥 씨는 오빠를 위한 마음이 각별했다. 오빠가 술을 마시고 오면 해장으로 잔치국수를 만들어 왔다고 한다. 육수 물도 작고 다진 김치도 많았지만 오빠는 그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칼칼한 잔치국수가 속을 확 풀어주고 따뜻한 국물을 다 먹고 나면 술이 깼다고 한다.      

  그녀가 잔치국수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에 순간 의아심이 일었다. 


  “미옥 씨가 잔치국수를 만들었다고요?”

  “육수도 내고 김치도 다져서 넣었어요. 물론 물도 적고 전체적으로 잘 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만들어 오면 맛있었어요.”

  “우와! 미옥 씨, 우리 명절 날 집에 가서 잔치국수 만들어 봐요!”

  미옥 씨도 오빠의 잔치국수 이야기에 특유의 미소를 띠었다.

  “그런데 이제는 잊어버렸더라고요.”

  오빠는 아쉬운 듯 이야기 하면서도 그때를 자랑스러워했다. 

         

  오빠의 자랑을 듣고 수줍어하면서 환하게 웃는 미옥 씨의 모습에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미옥 씨도 가족과 살 때는 서툴지만 살림을 하고 살았다. 평범한 여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시설에 살면서 아침, 점심, 저녁을 식당에서만 먹으니 잔치국수를 잊어버린 것이다. 오빠에게 드리던 잔치국수 만드는 법을 잊어버린 것이 이내 안타까움으로 다가섰다.      


  미옥 씨의 담당 복지사가 되어 1년이 흘렀다. 그동안 미옥 씨와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복지사의 열정으로 함께 했던 1년은 미옥 씨와 깊은 정이 들었는지 슬픈 감정이 일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꼭 껴안아 주었다. 내일부터 바뀌는 새 담당 복지사를 소개하자 미옥 씨도 내 마음처럼 아쉬웠는지 “아이고, 아이고”를 반복할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애지람 입구에서는 미옥 씨가 어김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처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인사를 마치고도 나를 따라 들어오지 않고 입구를 계속 서성거렸다. 무슨 일이지? 궁금증이 일어 뒤를 돌아보는 순간 상황을 알 수 있었다.


  헉! 바뀐 담당 복지사를 반갑게 맞이하며 함께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내가 아닌 바뀐 담당 복지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새 담당 복지사를 챙기는 미옥 씨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잠시 머리가 혼돈스러웠다. 내가 쏟은 사랑이 하루 만에 무너진 느낌이었다. 가슴에서 바람이 빠져나가는 듯한 허무한 기분이 느껴졌다. 지금 느껴지는 이 허탈하고 묘한 마음은 무엇이지? 지난 1년간 서로를 사랑했고 함께했던 그 시간들은 무엇이었지? 미옥 씨에 대한 섭섭함과 허해지는 느낌은 하루 종일 나를 멍하게 했다. 


  이런 내 마음을 눈치챈 선배 복지사가 말했다. 다들 애지람에 오래 생활하면서 1년마다 담당이 바뀌는 것에 익숙해진 것이니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선배의 경험을 듣고도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지만 현실 상황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미옥 씨도 나를 잊은 것이 아니라 새 담당 복지사에게 새로운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리라.


  이후 새로운 이용인과의 생활이 시작되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시간 속에 묻힌 미옥 씨에 대한 짝사랑의 아픈 마음도 자연스럽게 희미해져 갔다. 

  그녀는 그때의 내 아린 마음을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다. 가끔 마주치는 그녀를 보면 혼자 가슴 아파했던 짝사랑에 피식 웃음이 난다. 그래도 첫사랑이자 짝사랑은 아린 것이다. 오늘은 국수를 먹어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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