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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스텔라 Oct 22. 2018

#12 에이스 미용실

가능성에 더 많은 꿈을! 

  10년 전 기록한 꿈 노트를 봤다. 놀라운 건 노트에 적힌 소소한 꿈들이 현재 이루어졌거나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이다. “꿈이 있으면 행복해지고 ‘꿈 너머 꿈’이 있으면 위대해진다.”는 고도원 작가의 말처럼 미정 씨에게도 취업이라는 새로운 꿈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가능성에 더 많은 꿈을 꾸고 있다.


  성격이 밝은 미정 씨(가명, 지적장애 1급)는 누구와도 잘 어울린다. 나이는 30대 후반이지만 다들 20대로 본다. 잘 웃는 얼굴과 긍정적인 성격으로 주변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반짝이는 눈으로 직장에 다니고 싶단 말을 종종 했다. 

  일을 해 본 경험이 없고 직업능력 평가 점수도 낮게 나와 장애인 보호 작업장이 아닌 일반 사업장에 취업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분명 취업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일자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우연히 단골 미용실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밝고 명랑한 미정 씨를  본 미용실 사장님은 마음에 들어했고 면접 결과는 합격이었다. 드디어 취업을 한 미정 씨는 기쁨에 겨워 얼굴이 더 밝고 환해졌다. 환하게 웃는 그녀를 보면 어둠 속에서도 얼굴이 빛나고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큰다는 이해인 수녀의 시 <황홀한 고백>이 떠올랐다.

  나는 며칠 동안 미용실에 나가 미정 씨의 실습을 돕기로 했다. 하나둘 배워 나가고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흐뭇하기는 했지만, 좀 전에 배웠던 것도 금세 잊어버리니 자세한 설명이 필요했다. 다음 날이면 잊어버리는 미정 씨를 위해 날마다 계속해서 설명해 줘야만 했다.


  미정 씨는 빗자루를 쓸 때 강도 조절을 힘들어했다. 먼지가 많이 나기에 천천히 쓸어 담아야 한다고 설명해 줘도 여전히 서툴기만 했다. 그래도 의기소침해하지 않고 씩씩한 모습으로 일을 배워나갔다.

  “이제 뭐 해요?” 

  “세탁기 돌리는 거 배워볼래요?” 

  “네!”

  사장님에게는 미정 씨에 대해 설명해드렸다. 잘 잊어버려서 익숙해질 때까지 좀 더 기다려주고 지켜봐 달라는 부탁도 드렸다. 일하려는 의지가 충만한 미정 씨의 모습을 봐서인지 사장님은 걱정하지 말라며 오히려 나를 안심시켰다.

  한 달이 지나고, 미용실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미정 씨는 활기차고 당당한 모습으로 출근을 한다. 직장생활이 궁금해서 물어보면 일이 재미있다고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직장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 미정 씨가 예쁘고 자랑스럽다.


  어느 날이었다. 미용실에서 함께 근무하던 직원이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번에 여직원이 속상해하던 일이 떠올랐다. 자기 일도 해야 하는데 장애인까지 가르치는 게 힘들다고 토로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그래서 그만둔 걸까. 불안했다. 무엇보다 미리 그 직원의 마음을 헤아려 양해를 구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다. 미정 씨의 일자리도 걱정되었다. 그렇지만 사장님은 직원이 그만둔 상황에서도 미정 씨를 평소처럼 대해 준다고 했다.

  아무래도 사장님을 찾아봬야 할 것 같았다. 미용실을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직원이 그만두게 된 상황이었기에 걱정도 되고 무엇보다 죄송한 마음이 앞섰다.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시면 어떡하지…….’


  무거운 마음으로 미용실 문을 열었다. 마침 머리를 마친 손님이 미용실을 나가고 사장님 혼자 계셨다. 머뭇거리는 날 보더니 사장님께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만둔 직원은 너무 개의치 말라고.

  “미정 씨가 사람답게 사는 게 더 중요해요.”

  “아……. 사장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사장님은 5년 전 애지람에서 미용 봉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장애인을 채용하기로 마음먹으셨단다. 미정 씨를 보면 자식 같은 생각이 들고, 직장에 다니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도 하셨다. 미정 씨와 일하다 보면 자주 잊어버리고 느려서 답답할 때도 있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씀하셨다.

  “그 사람의 삶이 나아지면 나도 보람되고 서로에게 좋은 일이잖아요.”

  미용실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울림이 전해졌다.


  장애인은 취업하기도 힘들지만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기도 쉽지 않다. 좌충우돌 변수가 많고 일처리도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줘야 한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 미용실 사장님과 같은 분이 많아지면 제이 제삼의 미정 씨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자주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장애’라는 조건만 생각하면 그녀가 품을 수 있는 꿈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 그녀의 독특한 성향과 본질을 보면 빛나는 잠재력과 가능성이 보일 때가 많다. 앞으로도 그녀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꿈꾸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미정 씨, 그래도 가끔은 힘들지요? 우리 언제 차 마시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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