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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스텔라 Aug 13. 2018

#2 그때 언니도 함께 왔으면 좋겠다.

어머니에게 생애 처음 요리해서 식사를 차려 드렸습니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경련 후 의식을 잃고 한참을 누워 있는 다희 씨의 식은땀을 조심스레 닦아주었다. 하얀 피부와 곱상한 얼굴을 내려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다희 씨의 모습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송다희 씨(가명, 지적장애 2급)는 32세로 뇌전증(간질) 장애가 있다. 꾸준히 약을 먹고 과로나 스트레스 등이 뇌전증 후유증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다희 씨의 활동을 돕고 있다.

  다희 씨는 경련이 찾아오면 한순간에 쓰러지기 때문에 주변 물체에 머리나 급소를 다칠 수 있다. 따라서 다희 씨 주변에는 날카로운 물체가 없도록 미리 정리정돈을 잘 해놔야 한다.


  어머니 이야기에 따르면 초등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 다희 씨는 똑똑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유를 알 수 없는 정신적 충격으로 뇌전증 장애가 왔다고 했다.  

  셋째 딸로 태어난 다희 씨에게는 두 명의 언니가 있다. 다희 씨는 특히 둘째 언니를 좋아하는데, 둘째 언니의 해산 소식을 듣고는 조카를 위해 퍼즐을 맞추기도 했다. 500피스 퍼즐을 일주일 동안 맞춰 조카에게 선물한 것이다.


  하루는 태백에 사는 다희 씨 어머니께서 강릉 병원에 오셨다. 얼마 전 수술한 다리의 검진을 위해 애지람 근처 병원에 오신 것이다. 출근한 다희 씨를 대신해 찾아가 인사드렸다.

  “어머니, 안녕하셨어요? 먼 길 오신다고 힘드셨지요. 오늘 딸 집에서 주무시고 가세요.”

  “안녕하시우. 우리 다희는 언제 온 가요?”

  강원도 사투리로 다희 씨를 걱정하듯 느리게 발음하셔서 나도 왠지 천천히 대답해야 할 것 같았다.

  “직장에서 아홉 시 넘어서 올 거예요.”


  딸이 살고 있는 시내 아파트로 어머니를 모셨다. 몇 달 전 다희 씨가 시설에서 자립홈인 아파트로 옮긴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걱정이 많았다. 애지람에서는 아무 탈 없이 잘 지냈는데 아파트에서는 돌봐 줄 사람이 없을까 봐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다희 씨를 기다리는 중에 방 안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욕실 문을 열어 보고 거실과 주방의 이곳저곳도 살핀다. 밥은 굶지 않는지, 잠은 잘 자는지, 불편한 건 없는지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졌다.

  “어머니, 다희 씨 먹고 싶은 음식도 스스로 만들어 먹고 있어요. 특히 떡볶이 요리하는 거 좋아해요.”

  “우리 애가 떡볶이를요?”

  어머니의 큰 눈이 더 커졌다.

  “네, 즉석 떡볶이긴 한데 어묵도 넣고 양파도 넣어서 꽤 맛있어요. 평소 방에서 편안하게 쉬고 외출도 자유롭게 하고 있어요. 주일에는 근처 성당에도 다녀오는걸요.”

  “근데 퇴근하고 집에 올 때 나쁜 사내들이 쫓아올까 봐 걱정돼요.”

  “아, 다희 씨 스스로 잘하고 있어요. 싫으면 싫다고 단호하게 말해요. 그리고 휴대폰으로 주변에 긴급 도움도 요청할 줄 알아요.”

  “네, 우리 다희 좀 잘 부탁해요. 선생님만 믿을게요.”


  현관문의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고 다희 씨가 들어왔다.

  “다희 왔어? 엄마 왔다.”

  “어.”   

  무뚝뚝한 다희 씨의 말투였다. 자식들은 왜 엄마에게는 속마음과 다르게 무뚝뚝하게 대하는 걸까.

  “애지람에서 십 년 넘게 잘 살았는데 왜 아파트에서 산다고 그래?”   

  어머니는 다희 씨가 밤늦게 퇴근하는 게 걱정이 되었던 모양이다.  

  “나는 아파트가 더 좋아.”

  다희 씨는 아직도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어머니가 서운해서인지 여전히 무뚝뚝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렇지만 어머니를 만나는 반가움은 얼굴 표정에서 느낄 수 있었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선 다희 씨 방에 이불을 펴고 모처럼 두 모녀가 다정히 누웠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평온한 잠이었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에는 딸이 만들어 준 북엇국을 드셨다고 했다. 나는 딸과 하룻밤을 지낸 어머니의 느낌이 궁금했다.


  “어머니 편안히 주무셨어요?”

  “딸도 나도 잘 잤어요.”

  “아침 북엇국 맛 어땠어요?”

  “아주 맛있게 잘 먹었어요.”

  조용히 웃으시는 어머니 미소 뒤로 무표정하게 다물어진 다희 씨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다희 씨는 그동안 북엇국의 요리 방법을 수첩에 적어가며 여러 번 북엇국을 끓였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음식을 요리해 드렸다고 했다.


  “다희 씨, 어머니께 음식을 요리해 드리니 기분이 어때요?”

  “처음에는 망칠까 봐 걱정했는데 엄마가 맛있다며 잘 먹드래요! 그래서 기분이 좋아요.”  

  특유의 강원도 사투리를 쓰며 다희 씨는 수줍게 대답했다.

  태백으로 돌아가려는 어머니에게 다희 씨가 작별 인사를 드린다.

  “엄마, 또 놀러 와. 그때 언니도 같이 왔으면 좋겠다.”

  “언니도 오면 좋겠냐?”

  “어.”

  언니를 생각해 주는 딸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셨다. 나도 인사를 드렸다.


  “어머니, 여름 되면 강릉에 사는 셋째 딸 집에 오세요. 딸이 쪄주는 옥시기 같이 먹드래요.”

  요즘 다희 씨는 요리를 익히는데 여념이 없다. 때로는 어머니에게 전화로 요리를 배우기도 한다. 어머니가 오시면 어머니를 위한 밥상을 차려서 딸 노릇을 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비록 가족과 떨어져 살지만 다희 씨와 어머니의 마음도 여느 모녀와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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