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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집 Aug 11. 2023

'굳이'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1. ‘굳이’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2. 아즈마 히로키의 『느슨하게 철학하기』에서 위의 문장을 보고, 묵힌 속이 개운하게 내려갔다. 정확히 발췌하자면, 평론가이자 철학가・소설가인 아즈마 히로키는 “(굳이 하는) 평론은 쓸데없다”는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굳이-는 강인한 정신력을 필요로 합니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것이죠.” 이 주의 문장이었고, 섣부르지만 어쩌면, 내 올해를 결산할 수도 있는 문장이었다.


3. 굳이의 미학이랄까, 그런 것들이 칭송받는 시대다. ‘굳이’ 하는 어떤 윤리성, 정치적 태도. 이른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구태여’의 미학.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사실이 그러한데도 거리끼지 아니하는 태도다. 주어진 현실을 뛰어넘는 능동성이 필요하다. ‘구태여’란 일부러 애써 한다는 뜻이다. 애쓰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자연과 관성을 거스르는 것은 쉽지 않다. ‘굳이’ 뭔가 하는 건 박수받을 만하다.


4. 2023년을 시작하는 나의 포부가 그랬다. 회사에서 하고 싶은 게 생겼고, 기존에 하던 업무에 더해 ‘굳이’ 시키지 않은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리서치를 하고, 기획안을 구상하고, 퇴근은 늦어졌다. 꼭 만들고 싶은 다큐멘터리였기에 그 과정이 힘들지 않고 재밌었다. 봄날엔 회사 밖에서 5주간 다큐멘터리 워크숍을 듣고 3분 트레일러도 제작했다. 회사에 보여주기만 하면 일이 탄탄대로로 풀릴 것 같았다.


5. 어느 순간 모든 의욕이 멈췄다. 예고편 링크는 몇 달간 덩그러니 ‘나와의 카톡방’에만 덩그러니 존재했다. 여러 이유가 있다. 친구들과 업계 종사자에게 피드백을 받으며 스트레스를 받았고 (‘쟨 전혀 이해도 못하고 왜 저런 말을 하는 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그럴 거면 대체 왜 보여준 건지…), 그런 피드백을 다 반영한 완벽한 기획안을 작성해야 한다는 부담이 점점 커졌다. 회사에서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나와 팀의 운신의 폭이 좁아진 상태였고, 데스킹은 검열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회사 안팎 상황도 좋지 않았다. 이런 걸 하고 싶다, 얼핏 흘리면 회사는 앓는 소리부터 했다. “지금 정권이…”


6. 누구도 나의 작업을 환영하지 않는구나. 이는 오히려 현실을 외면하는데 유용했다. 나는 의지도, 능력도, 형편도 되는데! 이 기회를 회사가 놓치는구나. 팀장이, 국장이, 대통령실이 나를 막는구나! 윤석열 탓까지 나오다니. 시발 너무 거창했다. 그 정도 급 전혀 아닌데. ‘내가 하기 싫어서…’라는 이유로 회피하는 것보단 거창한 이유를 드는 게 마음이 편했다.


7. 사실은 ‘굳이’의 동력이 끝났던 것뿐이다. 나 혼자 불나방처럼 벌린 일이었다. 다시 말해 내가 멈추면 모든 게 끝난다는 말이다. 혼자만의 고군분투나 재능기부는 유통기한이 짧다. ‘굳이’ 혼자 벌린 일을 지속가능하게 만들려면, 부던한 설득과 교섭으로 볼륨을 키워 킥오프해야 한다. 그 단계까지 가면 어차피 혼자 때려치우고 싶어도 못 때려치운다. 나는 거기까지 못 가고 제풀에 지쳤다.


8. 그럼 어떡하지. 여기서 다시 아즈마 히로키 얘기를 해보자면…. 1971년생인 그는 20대에 자크 데리다를 연구한 『존재론적, 우편적』를 출간하며 주목받는 젊은 철학자로 부상했다. 그와 동년배인 1978년생 지바 마사야 역시 주목받는 신예 철학자로, 나는 그의 『현대 사상 입문』을 읽고 아즈마 히로키를 제대로 읽어볼 생각을 했다. 지바 마사야는 『너무 움직이지 마라』에서 질 들뢰즈와 생성변화의 철학을 다룬다. 생성변화란 영어로는 becoming이다. 들뢰즈에 따르면 모든 것은 도중이고, 진정한 시작이나 끝은 없다. 모든 사물은 '되는' 도중이고, 인간도 사물이다.


9. 지바 마사야는 일상에서도 이 '들뢰즈적 작업술'을 응용한다. '원고를 써야 할 때 '영차'하고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기합을 넣어 작업하는 것은 힘들기 때문에 일단 컴퓨터를 열고 트위터를 보고(...) 장벽이 낮은 것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면 뭔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고 할까, 프로세스가 시작됩니다. 그러다 내친김에….' 즉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란 규범의식을 버리고 '내친김에' 착수해서 "뭐 됐어"하고 끝낸다. 궁극의 완성이란 없기에 그걸 목표로 하지 않는다.


10. '내친김에→이 정도면 OK→뭐 됐어'의 프로세스. 남영동에서 다큐 워크숍을 들을 때, 멘토는 자기 안의 '복슬복슬한 그것'을 잘 쓰다듬으란 말을 했었다. 내 안엔 아직 '만들고 싶은 마음', 복슬복슬한 무언가가 있다. 그럼 약간의 비장함을 빼고, 일단 뭔가 해보면서, '내친김에→이 정도면 OK→뭐 됐어'의 흐름에 잔잔바리로 올라타보는 것... 그 정도는 다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잠깐 불타오르는 열정에 모든 걸 내맡기지 않고. '굳이'는 지속가능하지 않으니까.


11. 덧붙여 혼자 때려치우지 않으려면 타인을 연루시켜 이 작업을 혼탁하게 만들어야 한다. 복잡하고 끈적하게 엉키기 시작하면 내 의지에서 벗어나 일이 멋대로 가지만 그래서 더 멋져진다. 며칠 전엔 팀장한테 카톡을 보냈다. "혼자 못하겠어요 도와주세요...." 불순하게 엮이는 게 즐겁다. 솔직히 난 조직 생활이 잘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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