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과집 Oct 22. 2023

그만 뭐라해요...

한병철 <서사의 위기> 


1. 한병철 <서사의 위기>를 읽었다. 요약하면 대충 우리는 [인스타 스토리로 하루가 도배됨, 어떠한 서사적 길이도 보이지 않음, 현실이 쪼개짐, 이야기가 부재, 성찰 사라짐, 텅 빈 채 흘러가는 시간을 살뿐임, 순간예 예속된 존재, 서사 없는 그저 첨가적인 삶]다. 읽고 든 생각은 …  <그만 뭐라해요>




2. “장례식장에서의 셀카는 죽음의 부재를 드러낸다. 관 옆에서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는다. 죽음마저도 ‘좋아요’를 유도한다” 이 부분을 읽고 나는 병철 아저씨가 자기 죽으면 ‘MZ 지인’이 와서 셀카 찍을까 하는 공포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장례식장에 온 조문객들이 셀카 찍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죽음보다 죽음을 목격한 나에게 도취된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게 어때서라는 생각도 들고, 그렇게라도 순간을 기록하거나 위로받고 싶은 노골적인 욕망이… 나쁜가?


3. 오히려 장례식장에서의 셀카는 현실의 제도적 관계와 온라인 관계/세계를 연결하는 실천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아빠의 장례식장에서도 느낀 감정도 그랬다. 이곳은 사이버 세상에서 맺어온 애착적 관계가 완전히 배제된 의례의 장소구나. 셀카만 안 올렸지 뭔가 업로드하고 싶은 욕구는 나도 있었다고. 병철씨야말로 장례식장에서 인스타를 켤 필요가 없는 단일한 세계/관계 속 서사를 쌓아온 건 아닌가 싶었다. 


4. 말하자면 한병철은 ‘산만한 서사’를 읽어낼 ADHD적인 문해력이 부족한, 클래식한 ‘서사 광공’이다. <서사의 위기>는 전체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그래서 지루하다. 파편화되고 산만하고 서사가 사라진 세상이 된 지 오래, 그걸 비판하는 건 쉽다. 내가 궁금한 건 산만함을 기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나름의 생존 방식이다. 


5. 최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스타 계정은 최영원 aka.콘토니다. 뒤집어지는 디바와 춤추는 전교일등(=‘전일이’) 모두 그의 부캐다. 수많은 피드 사이에 강한 관계성이나, 스토리의 서사적 합 같은 건 없다. 여기엔 순간만 있다. 그래도 ‘브왁 안 해도 비키니 삽가능!’이라는 콘토니의 뽐을 좋아하게 된다. 순간포착된 피드를 ‘대충’ 훑어보고 맥락을 느끼는 건 팔로워인 나다. 


6. 그는 ‘무물(무엇이든 물어보세요)’을 통해 페르소나를 쌓아가기도 한다. 무물은 일회성 상호작용이고 일방향 소통이며 어떤 면에선 과시적인 자기표현의 욕구지만, 그런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을 만들 수 있다. SNS 속 자아는 계속 업데이트되고 갱신되는 베타버전 앱이다. 어쩌면 이게 파편화된 사회에서 정체성이 형성되는 방식일지 모른다. 콘토니 프로필에 쓰인 것처럼, 이 계정은 “릴스보다 하이라이트가 찐입니다”


7. 소셜 미디어 속에서 자아는 유연하고 바뀌고, 어지럽게 중첩된다. 나를 표현하려면? 해시태그로 #그냥 #다 #때려박아 #보여주면 #됨. 여기에 어떤 서사도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텅 비어 보이는 건 아니다. 이토 마사아키의 <플레이밍 사회>에 적힌 것처럼, 본래 해시태그(#)는 소셜 미디어에 올라온 글을 범주화하기 위한 라벨로 사용됐지만 점차 '인덱스에서 프레임으로' 성격이 변해왔다. 해시태그는 자신의 정치적/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손쉬운 자기 연출의 도구이기도 하다. (#metoo, #blacklivesmatter) 


8. 서사의 장력은 모자이크 된 이미지로 대체된다. 오늘 공개된 에스파의 티저만 봐도... 피드 전체를 꽉 채워 하나의 이미지(닝닝)를 만들어내지만, 각각의 이미지는 대체로 쓸모없다. 며칠 전 공개된 태민 신규 미니앨범 <Guilty>의 티저처럼,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컨셉)은 행과 열에 맞춰 모자이크적으로 배치된다. 앨범 트랙리스트 서사보다 중요한 건 얼마나 감각적으로 피드를 채우느냐다. 여기엔 정말 서사가 전혀 없나? 아니, 서사가 꼭 필요한가? 




9. 3분기부터 재미있는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지식 커뮤니티 시에라 소사이어티에서 진행하는 베이스캠프 <미디어, 모자이크>가 바로 그것. 매주 1개 임팩트 있는 '링크가 있는 글'을 모으고, 한 달에 한번 모여 얘기한다.  [<미디어, 모자이크>는 기실, "링크가 있는 글"들을 대상으로 하는 모자이크-행위예술에 가깝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디지털의 방식으로 새롭게 써보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10. 내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모자이크, 또는 누더기처럼 덕지덕지 덧붙여져 만들어진다. <미디어, 모자이크> 모임에선 한달 간 모은 링크를 섣불리 연결해 억지 서사를 만들거나 회고하지 않는다. 대신 나의 관심사에 타인의 정보가 끼어들며 예상치못한 연결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정리하고 재구성하기보다, 발산하고 확산하는 시간. 


11. 어쩌면 서사는 환상이다. 일기는 하루의 서사인가? 강보원 시인은 민음사 블로그에 연재한 <에세이의 준비>에서 "일기란 '하루'라는 임의적인 단위 속에 잡다한 것들을 들여놓고 그것들을 연결시킬 수 있는 틀이다"고 말한다. 서로 연관성 없이 산만하게 흩어진 사건들을 24시간이라는 바구니 안에 긁어모았을 뿐이란 거다. 오히려 빨리 매끄러운 서사를 만들려는 욕망이 모두를 비슷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설명되지 않은 것들을 억지로 엮으려면 비약하거나, 남을 따라하게 된다. 


12. "말하자면 우리는 그 최초의 산만함을 보존하고,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우리에게 익숙한 의미적 인과관계로 엮어내려는 유혹에 저항해야 할 것이다.(강보원)" 디지털 네이티브의 문해력이란 이 최초의 산만함을 '말아주는 그대로' 독해하는 능력일지 모른다. 요즘은 다... 알아서 말아줍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