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 비평 ㅣ씨네21 기고
※ 스포일러 있습니다.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송혜교)이 학교 폭력의 복수를 결심한 가해자는 다섯명이다. 생사 여부로 복수를 결산해보자. 두명의 남자 가해자는 모두 목숨을 잃은 반면, 세명의 여자 가해자는 살아남았다. 왜 그들은 죽지 않았을까?
문동은이 박연진(임지연)에게 주려고 한 것은 ‘사회적 죽음’이다. ‘너의 아주 오래된 소문’이 되는 방식으로. 오늘부터 모든 날이 흉흉할 거라는 체육관에서의 경고는 연진이 ‘자랑스러운 동문상’을 수상할 만큼 대중적인 인물이기에 더 효과적이다. 특히 젊고 아름다운 기상 캐스터일수록, 흉흉한 소문으로 인한 추락의 낙차가 크다. 전재준(박성훈)은 공사 중인 건물에서 추락해 목숨을 잃지만, 연진은 사회적 지위, 명예, 영광(glory)으로부터 추락한다. 그건 ‘여성’이 대상일 때 보다 효과적인 복수다. 손명오(김건우)와 최혜정(차주영)은 가해자 집단 안에서 무시받는 처지라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처벌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가진 게 목숨뿐인 명오는 가장 일찍 죽는다. 반면 혜정은 목에 연필이 꽂혀 피를 토하고도 끝내 산다. 죽은 건 ‘혜정’이 아니라 이른바 ‘스튜어디스 혜정이’다. 극 중 ‘스튜어디스’란 타이틀은 혜정의 계급 상승을 위한 핵심 도구로 그려진다. 혜정은 목소리를 잃고, 신분 상승의 꿈도 잃는다. 혜정에게 직업을 뺏는 것은 명오에게 목숨을 뺏는 것만큼 효과적인 복수일 수 있다.
일반인 여성은 이같은 복수를 피해 갈 수 있을까? 방송국 게시판에 학폭 폭로가 올라올까 봐 연진이 전전긍긍할 때도 이사라(김히어라)는 무심하다. “학폭은 너나 위험하지 우리 같은 일반인이 뭐 타격 있어?”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일반인 여성도 사회적 죽임을 당할 수 있다. 섹스 비디오의 주인공이 된다면 말이다. 사라는 실시간으로 자위 영상이 찍히고, 대중에게 알려진다. 학폭을 저지른 기상 캐스터보다 유명해지는 건 한순간이다. 난잡한 소문에 휘말린 일반인 여성의 신상이 블라인드 앱이나 카톡 지라시로 떠도는 일은 현실에서도 빈번하다. 유명세는 중요하지 않다. 소문만으로 여성을 무너트릴 수 있다.
<더 글로리>가 여성 가해자를 옭아매는 방식은 그들을 포르노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이다. 손명오의 장례식에서 만난 세 여성 가해자의 대화는 상징적이다. 자신의 학폭 동영상을 유포한 이사라를 박연진이 불러내자, 사라는 말한다. “왜, 니 영상 내 걸로 덮게?” 과거의 포르노는 새로운 포르노로 덮인다. 여성의 몸과 사생활은 계속해서 소환되고 전시된다. “대단한 척들 하더니 한 년은 친구 영상이나 까고, 한 년은 그거 덮자고 죽은 애 임신이나 까고.” 정작 이 말을 한 혜정도 사라의 오럴 섹스 영상을 협박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내 몸을 지키기 위해 다른 여자의 몸을 볼모로 삼는다.
드라마 속 여자들은 자주 찍힌다. 촬영된 여성들의 영상·음성·사진은 이야기 전개에 필수적인 장치다. 연진의 학폭 영상, 시에스타에서의 녹취본, 사라의 섹스 비디오, 분실된 혜정의 핸드폰 속 사진, 추 선생 카메라 속 예솔이까지…. 몰래 찍히고 거래되는 여성의 몸은 관음 혹은 협박의 대상이다. 이로 인해 <더 글로리> 속 여성들은 몸에 대한 통제권을 쉽게 잃는다. 반면 남성 가해자는 찍는 주체다. 무리에서 무시당하던 명오는 사라의 오럴 섹스 영상을 찍고 처음으로 사라의 우위에 선다. 가해자들 사이에서도 젠더라는 위계가 존재한다.
<더 글로리>는 한국 사회를 지독하게 잘 재현한 것뿐일까? 여자의 불행을 전시하고 즐기는 드라마 속 세계는 분명 현실을 닮았다. 그러나 이는 절반의 현실이다. 다시 손명오의 장례식장으로 돌아가보자. 혜정은 사라에게 “니 년은 결국 영상 때문에 망하는구나”라며 은연중 찍힌 사람을 힐난하고, 사라는 혜정이 ‘남의 아픔을 기뻐하는 사탄’이라며 사적 심판을 가한다. 여성 가해자들이 서로의 약점을 뒤흔들며 자멸할 때, 정작 영상을 찍고 즐기고 소비하는 다수의 책임은 흐릿해진다.
학폭 가해자의 불법 촬영물은 퍼져도 될까? 동은은 카톡방에 수백명의 교인을 초대하고, 사라를 설계된 판으로 불러들인다. 지하 예배당의 깜짝 공연이 알려지자마자 교인들은 대번 구경꾼으로 변모한다. 심신 미약 여성의 성행위 영상은 실시간으로 촬영되고 유통된다. 사라를 향한 동은의 복수 방식은 ‘n번방 사건’ 등 디지털 성범죄와 닮아 있다. ‘리벤지 포르노’ 등 성착취 범죄가 만연한 시대에, 사라의 영상을 동은의 복수(revenge)를 위한 포르노로 활용하는 전개는 어딘가 찝찝함을 남긴다.
복수의 형평성을 생각해본다. 동은이 연진과 사라의 복수를 정교하게 준비한 것과 대조적으로, 재준을 향한 복수는 마지막화에 이르러 급전개된다. 복수의 칼자루도 혜정에게 넘어가 있다. 시청자가 느끼는 복수의 쾌감 측면에서도 남녀 캐릭터간 격차가 크다. 시멘트 속에 처박힌 재준보다 감옥에서 수치스럽게 날씨를 예보하는 연진에게서 더 쾌감을 느끼는 이유는 연진의 서사를 더 정교하게 쌓아올렸기 때문이다. <더 글로리>는 여성 캐릭터의 추락을 더 자세하고 끈질기게 조명함으로써 시청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드라마 속 여성 가해자들은 왜 죽지 않았을까? 여자를 죽이지 않고도 오롯이 복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는 동안을 지옥으로 만들면 된다. <더 글로리>는 그걸 너무 잘 알고 있다. 그게 이 드라마의 저력이자 한계일지 모른다.
하루 종일 정치 뉴스를 보는 시사 PD. 매거진 <큐시트 밖 정치>에서는 큐시트에 미처 담지 못한 정치와 사회를 콘텐츠를 경유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2화는 씨네21에 기고한 드라마 <더 글로리> 비평으로 갈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