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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 Han Apr 21. 2023

비 오는 주말의 브런치

Feb. 23, 2020

브런치에 익숙하지 않았던 내가 마이애미에서 처음 맛본 '에그 베네딕트'는 놀라움 자체였다. 빵 위에 베이컨과 수란을 얹고 소스 조금 뿌렸을 뿐인데 이렇게 환상적인 맛이 난다고? 문화적 충격이었다. 맨날 국밥에 찌개만 찾아 먹던 내 입은 진정할 방법을 잊은 듯 접시를 핥았다. 나를 데리고 간 친구의 만족스러운 표정과 진정하라는 아내의 눈빛이 테이블 위를 오갔다.

나는 브런치가 다 그런 줄 알았지. 홀린 듯 한동안 브런치를 찾았고, 가는 레스토랑마다 에그 베네딕트를 주문했다. 그런데, 맛의 편차가 별로 없겠지, 하는 기대는 주문할 때마다 처참히 깨졌다. 눈앞에 놓이는 음식의 생김새도 달랐고, 맛도 천차만별이었다. 크루아상 맛있는 빵집이 귀한 것과 같은 걸까? 심플해 보이는 메뉴지만, 잘하는 집이 이렇게 없나 싶었다.

오랜만에 예전 그 레스토랑을 들렀다. 당연히 에그 베네딕트를 주문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내게 브런치는 입으로 맛보는 음식이 아니고, 분위기로 느끼는 음식이구나.' 분명 내 앞에 놓인 접시 위 음식은 내게 황홀경을 전했던 그날의 기억과 똑같이 생겼는데, 몇 번을 입에 밀어 넣어도 감동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뒤로 에그 베네딕트를 찾지 않았다.



여우비가 후드득후드득 떨어지던 토요일, 간만에 브런치 먹자고 가볍게 차려입고 아내와 집 근처 가게를 찾았다. 사람들이 빗방울을 피해 대부분 실내에 자리 잡아 바깥 파라솔 테이블에 앉았다. 원래 이 동네에서 '비'라는 걸 만나면 거의 한국 여름비처럼 거세게 내리기 때문에, 우리는 외려 이런 가벼운 비가 반갑게 느껴졌다.

빗소리를 좋아하는 우리에게 '피아니시모'처럼 여리게 내리는 비의 템포는 느긋하게 식사하는 데 훌륭한 BGM이었다. 몇 번을 생각해도, 이 가게의 음식은 꽤나 형편없었고 커피도 쓴맛만 돌았지만, 웬만한 다른 브런치 때보다 만족한 시간이었다. 역시, 내게 브런치는 맛보다 분위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구나. 물론, 그 가게를 다시 찾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맑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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