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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 Han Jan 23. 2024

권 여사님의 은혜

April 1, 2020

순천의 딸 권 여사님의 손맛이야 동네 사람들이 다 알지. 계량이 왜 필요해? 간도 안 보고 눈대중으로 대충 갖은 양념 넣으면, 김치부터 온갖 반찬, 국물요리까지 따라올 자가 없다. 중학생 손녀는 어릴 적부터 입맛이 없을 때 외할머니의 간재미무침을 찾았고, 식당에서 파는 도가니탕은 먹지 않는다. 어린 손녀가 이러니 사위들은 어떨까? 장모님이 차려주신 음식을 먹을 때마다 걸신들린 사람이 된다.

손도 크셔서 아들딸들에게 실어 나르는 음식은 냉장고에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다. "엄마, 제발 그만 좀 주세요", "너무 많아요"라고 상황을 설명해도, "먼저 보낸 음식은 못 먹겠으면 버려라.", 하고 대답하신다. 한 번은 김부각 만들어주신다기에 도와드리려 갔다가, 거실 한가득 풀 바른 김 켜켜이 쌓고 그 위에 깨를 뿌려댄 기억이 난다. 냉동실에 보관하고 먹고 싶을 때 꺼내 먹으라고.

"어머님, 냉동실에 자리가 없다니까요. 허허"

아내 먼저 마이애미에 보내고, 몇 주 뒤 내가 들어갈 때 트렁크 세 개를 챙겼다. 내 옷가지와 책들, 그리고 본가에서 챙겨주신 음식을 담았는데, 장모님은 너무 꽉 채우지 말고 들르라고 당부하셨다. 비행기 수하물 규정이 23kg이니, 3개에 나눠 추가 요금 내지 않게 맞추자고 준비하신 음식을 이리저리 나눠 넣으셨다. 옆에서 거들던 처제가 각각의 트렁크를 들고 저울에 올라가 자기 몸무게를 빼며 23kg을 맞췄다.

계량된 트렁크를 차에 싣는데 23kg이 이렇게나 무거운 줄 몰랐다. 아니면 내가 운동을 너무 게을리했나? 세 개의 트렁크를 차에 싣고 공항으로 향했다. 금방 먹어야 하는 음식들은 냉장실에 넣고, 오래 두어도 되는 음식들은 냉동실에 넣고 먹어라. 실온에 두어도 되는 음식도 있다. 주변 분들에게도 나눠드려라. 아내도 들었을 설명을 들으며 한국과 잠시 이별을 고한다.

23kg? 33kg!

처제가 빼기를 잘못했다. 내가 수속을 밟으며 올린 트렁크는 각각 33kg이었다. 쳐다보던 장모님과 처제가 까르르 웃는다. 나도 웃었다. 대체 우리 권 여사님은 음식을 얼마나 담아주신 걸까? 각각의 트렁크마다 추가 요금을 내고 비행기에 올랐다. 덕분에 우리 부부는 물론, 마이애미의 지인분들도 오랜만에 한국 반찬과 갖은 먹거리를 제대로 공급받았지.


냉장고에 가득한 음식들로 연명하던 어느 밤, 장모님이 단톡방에 사진 하나를 올리셨다. 마치 카펫 문양으로 착시를 일으키지만, 분명 버섯이었다.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시겠다고 버섯 10kg을 다듬고 계시단다. 저렇게 정성 가득 담아 다른 먹거리들과 함께 이역만리 딸과 사위에게 또 잔뜩 보내시겠지. "엄니,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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