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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라 와인 Apr 07. 2021

대표님,  왜 와인 수입사를 만드셨어요?

안녕하세요 1인 와인 수입사 알로라 와인입니다.

대표님, 어떻게 와인 수입사를 만들 생각을 하셨어요?

그러게요,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요?


이 질문을 받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와인업계에 있던 사람이 아니라는 배경에서 나오는 질문일 것이다. 나는 주류업계와는 멀리 떨어진 의류 회사에서 상품기획자로 7년을 일했다. 그리고 와인 수입사를 시작할 때에는 식품회사에서 마케팅을 하고 있었다. 선적회사 담당자와의 첫 미팅으로 이런 나의 배경은 아이스 브레이킹 용으로 딱 좋은 질문이었을 것이다.


그러게 말이다, 나는 왜 와인 수입사를 만들었을까?

이것은 뻔한 로맨스 이기도 하고, 코로나 시대에 대한 반항 이기도 하다.


나는 2017년 LF를 퇴사하고 무작정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었다. 얼마나 아무것도 모르고 갔으면, 남들 다 가는 로마 푸미치노 공항이 아니라 볼로냐의 이름도 기억 안나는 공항이 나의 첫 도착지였다. 그때는 볼로네제 라구를 먹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나의 두 번째 여행 도시는 로마였고, 나는 그곳에서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변곡점을 갖게 되었다.


로마의 에어비엔비 앞에는 와인 가게가 하나 있었다. 나는 밤 산책을 하고 그 가게를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여기가 로컬 맛집이에요?"

"네, 맞아요, 앉으세요. 와인 좋아해요?"

"잘 모르지만 좋아해요, 레드와인 주세요."

빛나는 유리잔에 와인을 따라주는 주인은 보라색이 감도는 회색빛의 치노 팬츠와 새하얀 옥스포트 코튼 셔츠를 입고 있었다. 어디로 휴가를 다녀왔는지 구릿빛으로 그을려진 피부 덕분에 커다란 눈이 더욱 빛나 보였다. "끼안띠와 끼안띠 클라시코는 뭐가 다른 건가요?"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와인가게에 들어가 이것저것 물어봤고, 와인 가게 주인은 짧은 영어로 이탈리아 와인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의 이름은 마시모였다.

그날 밤, 마시모는 나에게 돈을 받지 않았다. 카드 리더기가 없는 가게에 카드밖에 안 가지고 있던 내 잘못이기도 하지만, 그 날 이후로 마시모는 한 번도 나의 와인 값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우리는 계속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우리의 와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3개월의 여행에서 돌아와 나는 이 관계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결정이다 싶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다. 어학공부 비자를 준비해서 이탈리아에서 1년 3개월을 더 보낼 수 있었고, 그 기간에 이탈리아 최고 요리학교 ALMA에서 이탈리아 요리와 와인을 배울 수 있었다.

장기 체류로 이탈리아에 도착하고 나서 나는 마시모와 함께 수많은 시음회를 다니며 수많은 생산자들의 와인을 맛볼 수 있었다. 마시모는 나에게 와인에 대한 맛과 표현, 생산자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게 해 줬고, ALMA의 교수님은 와인이 가지고 있는 커뮤니케이션과 철학적인 시각을 보여줬다.

이탈리아어가 점점 늘어나면서, 나는 생산자들의 이야기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내가 와인을 맛보며 느끼는 감정과 맛의 감각을 이탈리아어와 이탈리아의 몸짓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와인은 예술이고, 철학이며, 땅이고, 물이고 바람이었다.

3년 넘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내가 이탈리아에서 요리 공부와 이탈리아어 공부를 했던 1년 3개월과 여행하던 3개월을 제외한 시간에서 계속 왔다 갔다 로마와 서울을 오가며 롱디 커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터져버렸다.

코로나 바이러스.


나는 더 이상 이렇게 혼자 멀리서 이탈리아와 마시모를 그리워하며 영상통화에 매달려 사는 것에 질려버렸고,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상황에 화가 났으며, 멍청한 짓만 하는 회사에 있다가는 지나간 시간을 후회만 하는 사람이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커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지쳐 사랑하는 사람을 놓칠 것 같았다.

나는 결정해야 했다. 여기서 그만 할까? 더 멀리 가 볼까?


우리를 위한 결정을 하자, 우리가 같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함께 자유롭게 있을 수 있는 방법,

와인 수입사를 만들자.


나에게 마시모는 이탈리아 그 자체이다. 그리고 와인은 나에게 이탈리아의 조각이며, 마시모의 조각이다. 나는 마시모와 항상 함께 있을 수 없고, 이탈리아를 자가격리 없이 오고 갈 수 없지만 이탈리아의 와인은 온전한 이탈리아의 한 부분이다. 이탈리아 와인은 이탈리아의 정신과 철학, 농업과 사람, 바람과 눈과 바다와 땅을 보여주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상업활동을 담고 있다.


수입 관련 서류들과 많은 고민들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나는 항상 마시모가 그립다. 함께 하는 사람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과 와인에 대한 이야기가 매일매일 쌓인다. 마시모는 로마에 그리고 나는 서울에, 떨어져 있는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모든 것을 함께 이야기하고 수많은 와인 생산자들과 이야기한다. 그렇게 따로 있으면서도 함께 있는 마시모와 나만의 작은 세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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