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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라 와인 Sep 03. 2021

우리의 와인들을 위하여!

기후변화는 진짜로 와인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정말 미안한데, 지금 우리는 포도 수확을 하러 모두 밭에 나가 있어. 급하게 이번 주부터 수확을 시작하게 되었어. 어느 정도 정리되면, 요청한 서류를 보내줄게." 


다음 달이면 부산을 통해서 입항하는 와인들의 서류 준비를 위하여 와인 생산자에게 보낸 메일에 대한 답장에서는 그녀의 다급함이 느껴졌다. 얼마나 급하게 메일을 끄적이고 밭으로 나간 건지 인사말 하나 없이 이상하게 작은 폰트로 쓰인 메일이 딱 봐도 급하게 나간 모습이 보였다.  


"마시모, 오늘 이메일 봤어? 벌써 수확을 해? 아직 8월 이잖아."

"어, 확인했어. 지금 라치오 지역의 생산자들이 서둘러서 수확을 하고 있어. 여름이 너무 덥고 태양이 강해서 포도가 다 익은 것 같아. 포도들이 예상보다 빠르게 준비가 되었어." 


그렇다. 내가 생각한 그리고 생산자들이 의례 이야기하는 포도의 수확 시기는 9월이었다. 11월을 지나 12월과 1월 추운 겨울을 버티고 나면 포도나무에서 포도가 자라나고 4월이 되면 작은 알갱이 포도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7월 8월 여름이 되면 점점점 익어가는 포도가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9월이 되면 포도들을 수확하고 적정한 온도의 칸티나에서 발효되고 숙성되는 과정이 일어나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와인을 만들기 위한 포도의 생애였다. 

그러나 지금 이탈리아 중부의 많은 와인 생산자들이 수확시기를 짧게는 2주, 길게는 4주를 앞당겨서 진행하고 있다. 이탈리아 북쪽 지역의 중요한 와인 산지인 피에몬테 지역도 역시 포도 수확 시기를 앞당겨서 진행하려고 하고 있고, 지난해의 수확량도 그 전년도보다는 줄어든 지역이 있다.  


올해 4월 어느 날, 이탈리아의 날씨는 갑자기 1월 겨울처럼 추워졌다. 기온이 0도까지 내려가는 지역이 생겼었고, 몇몇 와이너리의 포도나무에는 냉해의 피해가 있기도 했다. 이것을 직접 매일매일 들여다보고 느끼는 와인 생산자들이 느끼는 기후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런 기후 변화는 비단 포도의 당도와 생선성뿐만 아니라 여러 병충해와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의 문제가 여러 개의 복잡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런 기후 변화로 인하여 추운 지역에서 자라는 포도들은 점점 더 추운 곳을 향하여 북쪽으로 향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북유럽의 국가들과 같이 새롭게 와인을 생산할 수 있는 지역이 생기기도 하고, 더 이상 와인을 생산하기 어려운 지역도 생기고 있다. 

지역적으로 전통적으로 토착품종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지역과 사회의 문화를 반영하는 와인산업은 아마도 기후변화라는 불편한 변화 속에서 조금씩 바뀔지도 모르겠다. 포도의 당도와 숙성을 쫒아서 더 추운 지역의 토양으로 이동한다 하여도, 그 포도나무에 적절한 토양을 찾고 포도의 성질뿐만 아니라 와인 양조의 철학을 반영하면서 모든 자연적 조건까지 함께 갖추어 와인을 양조하는 것은 지난날보다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또한 이탈리아 와인의 가장 큰 특징인 신선미를 얼마나 균형감 있게 만들어낼 수 있느냐 라는 부분에서 좀 더 복잡한 맛의 계산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서울에 있는 수많은 와인 가게들과 음식점들, 화려하게 보이는 SNS 속의 와인들을 넘어 그 한병의 와인이 만들어 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밤이 필요한지, 얼마나 많은 비와 햇빛 그리고 농부의 노동이 필요한지에 대한 생각을 시작하고 나면, 이것이 단순한 상품 그 이상의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 낸 창조물이라는 생각에 감동이 생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사람들이 말하는 컨벤셔널 와인, 내추럴 와인, 바이오 다이내믹 와인, 오가닉 와인을 규정짓는 많은 조항들이 있지만 그 조항을 충족하기 위해서 실질적으로 얼마나 많은 일들이 흙에서부터 아니, 다시 말해서 그 흙과 지형이 생기게 된 그 팡게아 시대 때의 일부터 거슬러 올라가서 이야기 하지면 오늘 나의 잔에 채워져 있는 와인을 우리의 규범으로 규정짓는 것이 또한 얼마나 작은 일인지에 대한 생각이 든다. 



추운 봄날과 뜨거운 여름날을 지나면서, 프랑스에서는 산불이 일어나고 독일에서는 홍수가 있는 이 지구적인 상황에서도 이탈리아의 와인 생산자들은 기후변화에 맞춰가면서 더 빠르고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다. 생산량이 전년보다는 줄어들지라도 계속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면서 자신들이 만들고자 하는 와인을 꾸준히 만들고 있다. 그렇게 나의 와인 생산자들은 오늘도 우리의 와인들을 위하여 새벽부터 포도밭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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