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던 여행, 나중에 써니랑 다시 올게!
23주, 밤마다 종아리에 쥐가 난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갑자기 시작된 치질의 고통...
24주, 괌으로 떠난 태교여행, 우리의 2괌은 써니와 함께이길
우리 부부는 추석 연휴 마지막 날부터 3박 4일간 괌으로 여행을 떠났다. 신혼여행을 해외로 가지 못하기도 했고, 아기가 태어나면 당분간 해외여행은 어렵게 되므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비행기를 탔다.
임산부의 비행기 탑승 규정은 항공사마다 상이하지만 대부분 32주 미만인 경우 특별한 상황이 아닌 이상 무리 없이 탑승이 가능하다. 내가 탑승했던 제주항공의 경우 아래와 같은 임산부 탑승 규정이 있다.
아침 9시 10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추석 연휴에 대체휴일이라 그런지, 인천공항 톨게이트 요금이 무료였다(오예!). 그리고, 짧은 3박 4일간의 여행인 만큼, 인천공항 장기주차장 주차타워에 주차하고 출국장으로 나섰다.
이번 여행은 별 고민 없이 다녀오기 위해 여행사의 여행상품을 예약했다. 여행사 카운터를 방문해 E-ticket과 입국 관련 서류, 그리고 여행 관련 자료들을 수령하고 서둘러 항공사 체크인을 하러 이동했다. 마지막으로 인천공항에서 해외여행을 떠났던 건 2019년 유럽으로 갔던 2주간의 여행 때였는데, 지금은 그때의 북적거림을 보기 힘들다. 우리가 이용할 제주항공 카운터에 도착해, 괌/사이판으로 떠나는 승객들은 Covid-19 관련 CDC서약서(검역 관련 서류)를 사전에 작성하고, 키오스크를 이용해 체크인을 했다. 그리고 Bag drop을 위해 줄을 섰는데, 중간에서 백신접종증명서 확인을 했다. 백신접종증명서는 이곳에서만 보여줬고, 막상 괌 입국 시에는 필요가 없었다. 컬러로 2부씩 뽑아갔는데, 그렇게 애지중지 해야 할 서류는 아니었다. Bag drop도 키오스크로 하고 나서, 직원에게 임신부 패스트트랙을 어디서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직원이 있는 카운터로 이동해 패스트트랙을 요청했고, 임신 주수를 물었다. 여행에 어려움이 없는지 물었고, 항공권 뒷장에 교통약자 스티커를 붙여줬다.
가는 비행기는 한산했다. 화장실에 자주 갈 것을 대비해 복도 쪽 좌석을 선택했고, 한 시간에 한 번은 다리를 쭉 펴 스트레칭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사전에 기내식을 신청해 4시간의 비행을 굶주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도착하니 현지시각으로 2시가 넘었다. 우리 부부는 모두 SKT를 사용하는데, SKT에서는 현재 기준 괌/사이판 데이터로밍이 무료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데이터 용량을 그대로 현지에서 사용 가능하다. 도착하자마자 데이터로밍을 켜니, 한국처럼 마음껏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괌은 SKT가 다 먹어버렸(?)음을 알게 되는데...)
미국령에 방문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대학교 때,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한 학기 동안 다녀온 이후 두 번째 미국령 입국이다. 괌은 ESTA 없이 무비자로 입국이 가능한데, 비행기에서 입국 서류를 작성하다 보니 과거 미국 비자 발급 신청 이력이 있는지 묻는 란이 있었다. 추억의 J1 비자... 이제는 VOID 구멍이 뚫려있는 구 여권 J1비자가 떠올랐다. 혹시 몰라 사진을 찍어두었는데, 아주 잘한 일이었다. 웃기게도 누가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비자 신청 일자'를 적어야 했다. '발급일'도 아니고 '신청일'이라니... 나는 그냥 사진 찍어둔 예전 비자의 발급일을 적어서 제출했고, 별 이상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입국심사는 미국 본토보다는 까다롭지 않았다. ESTA 전용 줄은 없었고, 대기가 좀 길었는데, 가족끼리는 같이 심사를 받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어떤 가족에게 입국심사관은 어설픈 한국말로 "왜 왔어여!" 라고 큰소리로 물어보기도 했다. 괌에 방문하는 절반 가까이의 여행객이 한국사람이라더니, 이 사람들도 익숙한가 보다. 입국심사 시에는 여행 목적, 묵을 숙소, 여행 기간 등을 물어보고, 열 손가락의 지문을 채취하는 과정을 거치며(이게 좀 잘 안 찍힌다..) 도장을 쾅 받으면 모든 절차가 끝났다. 우리는 여행사 직원을 만나 공항을 빠져나와서 호텔로 바로 이동했다.
이번 여행에서 3박을 머물 호텔은 '두짓타니 리조트'이다. 괌에서 가장 좋은 숙소 중 하나이며, 우리는 당분간 다시없을 수도 있는 해외여행을 맘껏 즐기기 위해 이 숙소를 고민 없이 선택했다. 두짓타니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아래와 같다.
객실이 오션뷰, 테라스 有
자체 수영장 보유 (두짓타니, 그리고 맞은편 두짓비치의 수영장을 공유한다.)
투몬 비치를 걸어서 나갈 수 있음
노후되지 않은 룸 컨디션
주변에 걸어서 갈 수 있는 편의시설 및 식당이 있음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는데 직원이 우리에게 허니문이냐고 물었다. 우리에겐 허니문이나 다름없었으므로 그렇다고 했더니, 와인 한 병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객실도 가장 조용한 안쪽으로 배정해주었고, 객실 안에 수건으로 만든 하트 백조도 놓여있었다. 소소한 행복...
그리고 우리는 바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바다로 향했다. 남태평양의 뜨거운 햇살을 피하기 위해 워터프루프 선크림을 잔뜩 바르고 (남편은 아마도 선크림을 바른 게 아니라 얹은 것 같다... 허옇게 뜬 얼굴...) 한국에서 챙겨 온 스노클링 마스크와 튜브를 챙겨 나갔다. 바다는 너무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괌은 섬 전체를 자연 방파제인 산호초가 둘러싸고 있어서 해변까지 큰 파도가 치지 않는다. 그리고 꽤 멀리까지도 수심이 성인 허리 정도다. 그래서 아이들을 많이 데려오는 것 같기도 하고, 스노클링을 할 줄 몰라도 장비만 있으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오랜만에 바다에서 수영을 하니 나도 기분이 너무 좋았고, 써니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물에 둥둥 떠있는 이 기분, 써니야 너도 지금 엄마 뱃속에서 이렇게 떠있겠구나!
바다 수영을 마친 후엔 호텔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두짓타니에는 조식을 먹는 카페테리아 외에 3개의 식당이 더 있는데, 우리는 태국 음식점인 'Soi'를 선택했다. 내가 아직 먹는 양이 적기 때문에, 커리와 팟타이 두 가지 메뉴를 주문해 먹었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40분 가까이를 기다리는 바람에 조금 빈정이 상할 뻔했지만, 맛이 너무 훌륭해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나올 수 있었다.
괌은 대부분의 식당이 영수증에 음식 가격의 10% 'Service Charge'가 포함된 총금액을 표시하기 때문에, (6인 이상 Serve하는 경우 15% Service Charge) 따로 팁을 주지 않아도 된다. 물론 서비스가 정말 맘에 들면 영수증에 추가 작성해 팁을 더 줄 수 있지만, 우리는 음식을 40분이나 기다렸으므로 더 주지는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잠깐 호텔 근처로 걸어 나와 남편의 야식거리를 사러 갔다. ABC Store에 들러 이것저것 구경도 해보고, 괌 맥주가 맛있다고 해 찾아봤는데, 괌 맥주는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선택한 건 블루문... 그리고 괌의 유명 맛집인 'Beachin' Shrimp'에 들러서 코코넛쉬림프를 포장해왔다. 이곳은 SKT 멤버십을 보여주면 할인이 된다는데, 우리는 SKT 멤버십의 위력을 첫날에는 인지하지 못해 아쉽게도 사용하지 못했다.
써니와 함께하는 괌의 첫날밤, 즐거웠습니다!
여행 둘째 날, 유일하게 여행사 투어 일정이 있는 날이다. 괌의 중심지인 중부를 돌아보았다. 사랑의 절벽, 에메랄드 밸리, 아푸간 요새 전망대, 스페인 광장(아가나 대성당) 순으로 돌아보고, 자메이칸 그릴에서 점심식사를 하니 총 3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투어하는 동안 괌에 오랫동안 사신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것도 재미있었는데, 태풍의 원산지(?) 근처인 괌에 태풍이 불면 전봇대가 부러진다던가, 괌에 사는 한국인이 건축업에 가장 많이 종사하는데, 한국 사람이 공사를 하면 현지인보다 몇 배는 빨라서 만족도가 높다던가, 괌에는 기반 산업이 관광 외엔 없고 농사가 성공한 적이 없다는 등의 이야기... 투어 막바지에는 소나기가 내려서 걱정이 되었지만 변화무쌍한 괌의 날씨에 걸맞게 금세 맑게 개었다.
호텔로 돌아와서는 어제 못다 한 바다에서의 스노클링과 수영을 해보기로 했다. 스노클링 할 때는 살아있는 산호초 근처로 가면 작고 알록달록한 열대어들이 몰려있는 걸 구경할 수 있는데, 나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정말 재미있었다. 얼굴을 바다에 묻고 물에 둥둥 떠서 물고기들만 봐도 기분이 좋았다. 바다수영을 얼마간 하고는 두짓비치 수영장으로 넘어가 열심히 놀다 보니 어느새 오후 늦은 시간이 되었다. 열심히 운동을 한 덕에, 잠깐 낮잠을 자고, 해가 진 후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오늘의 저녁은 California Pizza Kitchen이다. 체인점이고, 한국에도 지점이 있는 것 같은데, 걸어서 갈 수 있고 어제 이곳을 지나가면서 사람이 꽤 많은 것을 봤었기 때문에 맛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방문했다. 피자 하나, 파스타 하나를 나눠먹으니 배가 불렀다. 이곳은 SKT 멤버십 바코드를 제시하면 전체 금액의 10%를 할인해준다.
그리고 조금 걸어서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신다는 바에 방문했다. 'Fusion tavern'이라는 곳인데, 'Mama'로 불리는 사장님이 아주 호탕하고 재밌으시다. 우리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럼 이 여행이 신혼여행인 것 아니냐며, 축배를 들어야 한다고 칵테일을 한잔 공짜로 주시기도 했고, 이름이 없었던 이 칵테일의 이름을 우리 써니의 이름으로 짓겠다고 하시기도 했다. 화려한 사장님의 언변에 우리는 사장님 전용 술이라는 제임슨 한 잔을 팁으로 선물하기도 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엔 밤바다를 걸어보았는데, 생각보다 무서웠다... 아무리 남편과 함께라도 타지에서는 밝은 곳으로 다니기...
괌은 날씨가 예측 불가능하다. 여행 전, 괌 날씨를 검색하면 상당히 실망할 수 있는데, 7~9월이 우기이기도 하고, 예보는 일주일 내내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로 되어있지만 막상 괌에 오면 국지성 호우가 마구 내리다가도 맑았다가, 흐렸다가 개었다 날씨가 계속 바뀐다. 셋째 날 아침도 비가 오길래 좀 이따 그치려나 했으나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전은 객실에서 조금 더 쉬다가 잠깐 수영장에 다녀왔는데, 비가 와서인지 수영장 물이 너무 차가웠다. 오래 놀지 못하고 다시 객실로 올라와 12시에 예약한 렌트카를 인수하러 갔다. 나는 '카모아'라는 렌트카 웹사이트를 통해 예약했는데, 예약 확정이 된 이후 호텔에서 어떻게 만나서 차를 인수할지 아무 안내가 없어서, 호텔 전화를 이용해 렌트카 업체에 직접 전화를 하기도 했다. 우리는 가장 저렴한 소형차를 예약했고, 오늘 궂은 날씨 때문에 완전 자차 보험을 추가(12$) 했다. 인수한 차량은 미쓰비시 소형차.
비가 그치지 않아서 일단은 실내로 피신하기로 했다. 괌에서 큰 쇼핑몰 중 하나인 괌 프리미어 아울렛(Guam Premier Outlet, GPO)으로 가서, 이것 저것 둘러보고, 혹시나 살 만한 게 있을까 했는데, 치솟는 환율에 우리 부부는 쇼핑은 포기했다. 그러나 괌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는 Ross 매장으로 가서 남편의 여행용 보스턴백과 양말을 득템 했다. 눈에 불을 켜고 찾다 보면 아주 저렴한 가격에 필요한 물건을 건질 수 있다! 비록 결제하는 데 15분 넘게 기다려야 했지만... 남편은 마음에 드는 여행용 가방을 12불에 산 것에 매우 만족해했다.
GPO 바로 앞에 있는 Longhorn Stakehouse에 들러 저녁식사 예약을 미리 해두고, 차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Chili's Grill & Bar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타코와 파히타를 먹었는데 아주아주 맛있었다. 여기도 역시 SKT 멤버십 혜택이 있는데, 지정된 몇 가지 메뉴에 한해 10% 할인을 해준다. 음식 양이 많아 타코 하나를 그대로 남겼는데, Box를 요청해서 자유롭게 남은 음식을 싸갈 수 있다. 가볍게 'Box Please'라고 요청하면 종이박스를 가져다준다.
렌트해서 남부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괌은 운전 방법이 한국과는 조금 다른데, 도로교통법은 캘리포니아 주법을 따른다고 하니, 캘리포니아에서 운전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바로 익숙하게 운전할 수 있다. 우리도 처음엔 어색했지만, 대부분의 로컬 운전자들이 안전운전을 하는 편이고, 조금 망설인다고 뒤에서 재촉(?) 하지 않아서,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해안 도로를 따라 괌을 한 바퀴 돌아 종착지는 괌 대학교(University of Guam). 차를 잠시 세워 산책을 조금 하다가 저녁식사를 예약한 Longhorn Stakehouse로 향했다.
우리가 주문한 메뉴는 가장 큰 스테이크인 Longhorn Porterhouse에 감자, 볶음밥이다. 샐러드를 곁들이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샐러드가 주문이 불가했다. 그리고 남편은 맛있는 고기에 빼놓을 수 없는 알코올! 칵테일을 한 잔 마셨다. 저녁식사도 역시나 SKT 멤버십 사용. 알코올을 제외한 모든 메뉴에 10% 할인이 적용된다. 이쯤 되면 SKT가 도대체 괌의 모든 식당들과 무슨 커넥션이 있는 것인가 의심이 된다... 남편이 술을 한 잔 한 덕에(?) 돌아오는 길은 내가 운전해야 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K-mart에 들러 선물할 물건들을 샀는데, 많이 산 것도 아니었는데 물가와 환율의 영향이었는지 총금액이 어마어마했다. 나름 자제하며 골랐다고 생각했는데, 자제 안 하고 골라댔으면 계산대에서 물건을 다 빼야 하는 상황이 올 뻔했다.
괌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두짓타니 리조트에서의 마지막 수영을 즐기려고 아침 식사 후 비치로 내려갔는데, 오늘따라 수심이 너무 깊었다. 모래가 쓸려내려 간 것 같기도 하고, 물 양이 많아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지 아침에 비치에서 노는 사람들이 이전보다 적어 보였다. 우리는 조금만 걸어 나가도 갑자기 가슴까지 차오르는 수심 때문에 스노클링은 포기하고, 호텔 수영장에서 마음껏 괌의 마지막 수영을 즐겼다.
나는 객실에 남아 체크아웃을 하고, 남편은 렌트카를 반납하러 갔다. 반납하고 돌아오는 길에 찾아두었던 햄버거 가게 'Hambros'에 드롭을 요청해 햄버거 두 개를 포장해왔다. 나는 와사비마요를 곁들인 아보카도 버거를 먹었는데, 아주 맛있었다. 이렇게 괌에서의 마지막 식사도 끝.
호텔에서 여행사 직원을 다시 만나 공항으로 향했다. 제주항공 카운터에서 체크인을 하는데, 우리 부부에게 Emergency Seat에 앉을 거냐고 물었다. 임신 중인데, 편한 좌석에는 앉고 싶고... 3초 정도 고민을 하다가 임신 중이라고 했더니 일반 창가 좌석을 배정해줬다. 남편과 동공 지진 상태로 아쉬움을 달래다가 복도 좌석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도 잊었다. 이게 바로 재앙의 시작이었다...
괌 공항 출국 절차는 생각보다 유쾌하지 않았는데, 짐을 부치고 나서, 별도의 출국심사는 없고 Body scan을 하게 되는데, 일부 국가에서 볼 수 있는 원통에 들어가 기계가 한 바퀴 돌아가는 바로 그 스캔 방식이다. 나는 임신 중이라고 말했으나, 아기에게 무해하다며 직원이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스캔을 완료했는데, 여자 직원 한 명이 나를 불러 세우더니 내 앞에서 갑자기 엄청 빠르게 말하기 시작했다. 듣기 평가(?)라고 하기엔 너무 속사포여서 거의 알아듣지 못했는데, 대충 '너의 하체를 구석구석 만져야 하는데, 여기서 하기 불편하면 Private room에 가서 할 수도 있다.' 뭐 이런 말이었다. 나는 여기서 해도 상관없다고 말하고 대자로 서있었는데, 나의 공항 인생 역대급 수치스러운 수색(?)을 당했다. 도대체 어디서 뭐가 검출됐는지 모르겠는데, 손바닥을 쓱쓱 훑어 Iron scanning까지 한 이후에야 날 보내줬다.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영어로 빨리 말하고 왜 내가 이런 수색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 아주 많이 당황을 했을 것이다. Private room에 가면 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를 텐데, 외국인에게 조금 무례한 상황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튼 어떻게든 통과해 Boarding을 기다리는데, 한국의 날씨 탓인지, 대만 근처에 있다는 태풍 때문인지 우리를 실어야 하는 비행기가 지연되었다. 30분 정도 늦어졌는데, 탑승이 완료된 이후에도 30분 정도 더 지연되었다. 그 이유는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영어 이름까지 같은 누군가가 항공사 직원의 실수로 잘못된 비행기를 타서(...) 그분을 내리게 하고, 그분의 짐도 하나하나 찾아 내려야 하는 상황 같았다. 그렇게 1시간 넘게 지연된 상태에서 비행기는 이륙했다. Emergency seat 기회를 솔직함으로 날려버린(...) 게 후회가 될 만큼 내 자리는 몹시 우울했는데, 내 뒷자리는 어린아이가 타고 있었고, 같은 라인엔 어린 남매가 타고 있었다. 내 뒷자리는 옆에 탄 부모에게 발차기를 자제시켜줄 것을 사전에 부탁했으나, 같은 라인에 있는 남매는 부모와 조부모가 함께인 일행이었는데, 이륙 시부터 난리난리...를 치는 아이들을 전혀 제지하지 않았다. 심각하게 시끄럽게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는데, 옆에 앉은 엄마 아빠는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원래도 비행기에서 잠을 잘 못 자는 편이다. 9~10시간씩 비행기를 타야 하는 노선에서는 너무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많아 아예 전날 밤을 꼴딱 새 버리거나, 술을 몽롱할 때까지 마셔 취해 잠드는 방법을 택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어느 방법도 취할 수 없는 상태이다. 고작 4시간 50분의 비행이었지만, 창가 좌석에서, 소리 지르는 아이들, 발로 차고 테이블을 쾅쾅 두드리는 안마의자 상태에서 가는 비행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결국 나는 한 숨도 자지 못하고 온 신경이 곤두선채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돌아오는 비행은 악몽 같았으나, 그래도 행복한 여행이었다. 당분간 마지막일 수도 있는 해외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남편과 이번 여행에선 단 한 번도 다투지 않았다고 서로를 칭찬했다. 그리고 좋았던 여행을 복기하면서, 다음에는 꼭 써니와 함께 다시 오자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