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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s Sep 23. 2022

[23주 임신일기] 밤마다 찾아오는 쥐

자다 갑자기 다리에 쥐가! 그리고 또 다른 불청객이 찾아오는데...

22주, 배가 점점 나오면서 더욱 심해지는 환도 통증

23주, 밤마다 종아리에 쥐가 난다. 심지어는 발바닥에도 쥐가...



9월 6일 화요일 (23주 2일)

9월 5일에서 6일로 넘어가는 때, 태풍 힌남노가 한반도 남부를 강타했다. 밤부터 새벽까지 엄청난 비바람이 불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5일, 월요일 근무를 마치고 내일의 출근을 생각하니, 지난번 수도권 물폭탄 때가 생각났다. 그날도 전날 심각한 날씨에 긴급으로 연차를 사용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결국 팀장님께 재택근무를 허락받고 짐을 바리바리 챙겨 퇴근했다. 수도권에 물폭탄이 떨어지던 날에도 나는 집을 혼자 지켰는데, 이번에도 우리 집의 수호자는 나 홀로다. 남편은 전 국민이 긴장하고 있는 이때에, 태풍의 영향권에 가장 가까운 곳 중 하나라는 경남 김해로 출장을 떠났다. 남편 회사의 본사(원래 근무지) 직원들은 전체 재택근무라는데, 왜 남편만 출장이야...


간밤 내내 매서운 바람이 불어댔다. 이제 이 집에 산 지 2년이 넘었는데, 이 집에 살면서 들어본 적 없는 바람소리였다. 때때로는 비를 동반한 바람이 창문을 때리기도 하고, 현관 밖 복도에서 들리는 바람소리가 집안에 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창문에 유격이 생기지 않도록 꼭 잠그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며 잠들었다가, 다음날 일어났다. 언제 태풍이 지나갔었냐는 듯 아침이 되니 해가 나기 시작하면서 맑은 하늘이 보였다. 어라? 출근했어도 됐겠는데? 뉴스를 틀어보니 전혀 괜찮지 않았던 일부 지역도 있었다. 남편이 있었던 곳은 무탈히 지나갔지만, 태풍은 일부 지역을 심하게 할퀴고 지나갔다. 이번해는 기후위기의 위협을 더 피부로 느끼게 되는 일들이 많은 것 같다.

쥐 제발 멈춰...

또 간밤에 나를 무섭게 했던 게 하나 더 있었다. 요즘 밤잠을 자주 설치는데, 잠깐 잠에서 깨서 요의를 느껴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자는 자세가 불편해 요리조리 뒤척이곤 한다. 밤에 자다 깨는 것도 짜증 나는 데, 또 다른 불청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다리에 쥐가 나는 것이다. 잠에서 깨서 다리의 느낌이 이상해 조금 움직이면 종아리에 쥐가 나는데, 너무 고통스럽다. 심지어 오늘 새벽엔 발바닥에도 쥐가 났다. 세상에, 발바닥에 쥐가 난 건 생전 처음이다. 매일 쥐가 나다 보니 종아리 근육이 빡센 운동을 한 다음날처럼 항상 뭉쳐있다. 임신 중 쥐가 나는 이유는 점점 커지는 자궁이 다리 쪽 신경을 눌러 다리 근육에 피로도를 높이고, 다리 혈관의 혈액순환이 잘 안 돼서라는데, 딱히 해결 방법은 없다. 후기에 갈수록 심해질 수 있다는데, 임신은 정말 매주 새로운 증상들을 경험하게 한다.  


9월 9일 금요일 (23주 5일)

추석을 맞아 시댁으로 내려가는 길, 이번 추석 일정은 추석 전날 시댁 식구들을 뵙고, 추석 당일에는 결혼식 이후 한 번도 뵙지 못한 우리 외가 식구들을 뵈러 가기로. 요즘 계속 새벽에 깨는 바람에 오늘도 3시 반에 잠에서 깼다. 이전에도 새벽에 깼다 다시 잠드는 일은 흔했지만, 요즘은 유독 다시 잠들기가 힘들다. 한참 잠들지 못하다가, T맵을 확인 해봤다. 충청도 시댁까지 평소 1시간 반이면 가는데, 이미 2시간 반이 걸린다. 지금 새벽 3시 반인데? 결국 4시쯤에 일어나 먼저 씻고, 남편을 깨웠다. 다시 확인해보니 소요시간 3시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우리는 4시 반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평소에 시댁에 방문할 땐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한다. 그런데 오늘은 주변 도로를 이용해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이다. 그래도 결국 서평택 분기점에서 다시 합류해 서해대교를 건너야만 한다. 서해대교를 건너기까지 2시간 이상이 걸렸다. 결국 도착한 건 7시 반이 넘은 시간. 3시간이 넘게 걸렸다. 도착하자마자 아침만 먹고 바로 남편과 쓰러져 잠들었다.

서해대교 옆에 다리 하나 더 놓아야 하는 거 아닌지...

이번 추석에는 써니가 주인공이다. 남편의 가족분들과 친구들에게 써니가 쓸 물건을 물려받기로 했다. 가족분들께 인사하러 간 김에, 신생아 카시트와 휴대용 유모차를 전달받고, 남편의 친구 부부에게 아기 침대, 쏘서, 수유쿠션, 모빌, 아기 체육관, 바운서, 아기 옷 등을 물려받았다. 둘째가 생긴다면 이 물건들이 그들에게 다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써니를 향한 고마운 마음들 덕에 내 마음이 행복으로 가득 찬 기분이다. 내 주변에는 아기 있는 친구가 없어 가끔 외롭기도 한데, 이 사람들이 나에겐 큰 위로다.


이 와중에 갑자기 찾아온 또 다른 불청객이 있다. 임신부가 많이들 겪는다는 말 못 할 고통, 치질이다. 철분제를 먹기 시작한 이후 극심한 변비에 시달리고(물론 지금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변기에 오래 앉아있는 일이 잦기는 했다. 게다가 며칠 사이엔 변을 보고 난 후 무언가 찝찝한 느낌이 자꾸 들었는데, 갑자기 오늘 아침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나의 소중한 Don't go가 너무 아프기 시작했다. 특히 앉았을 때 너무 아팠다. 엄마는 나를 낳고 치질에 걸렸다고 했는데, 이것도 유전인 건가? 범상치 않은 돈고의 통증에 불안해졌다. 


9월 10일 토요일, 추석 (23주 6일)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나의 외갓집이 있는 전라도로 내려가는 길. 예상한 것보다 막히지 않아서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남편은 충청도 사람이고, 나는 부모님이 모두 전라도 사람인 전라도의 후예인데, 항상 남편과 전라도를 내려갈 때면, 넓은 평야에 끊임없이 펼쳐진 논을 보며 남편은 가도 가도 어떻게 논밭일 수 있냐며 신기해한다.

외갓집 식구들은 코로나 이후 처음 모인다. 내가 코로나 시국에 결혼식을 치른지라, 결혼식 때 먼 길 와주셔서 잠깐 뵐 수 있었지만, 인사만 잠깐 하고 다들 댁으로 돌아가셔야 했었다. 남편은 많은 외갓집 식구들의 얼굴을 기억할래야 기억할 수도 없었고, 마스크를 쓰고 있기도 했어서 거의 처음 만나는 거나 다름없었다. 어렸을 때 방학이 되면 자주 놀러 왔던 이 집 터, 집은 새로 지었고, 주변 도로는 깔끔하게 정돈되었지만 그때의 골목길과 대문은 그대로다. 그때는 넓고 크게 보였던 대문이 이렇게 작았다니. 


이건 아니야...

짧은 시간이지만,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동하려고 했는데, 귀경길이 걱정됐다. 근처에서 시간을 좀 보내다가 교통상황을 보다가 출발하자고 했는데, 갑자기 T맵 시간이 3시간 이내로 떨어졌다. 우리는 재빠르게 출발해버렸지만 알고 보니 T맵의 오류였다.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한 서해안 고속도로 상황은 분명 4시간 이상 소요되는데, T맵은 계속 최단시간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결국 중간 지점인 시댁으로 돌아가서 다음날 새벽에 돌아가기로 했다. 의도치 않게 미라클 모닝을 계속 실천하고 있는 나는 또 새벽 3시쯤에 깨어 4시에 남편을 깨워 출발했고, 차는 꽤 많았지만 다들 안 막힐 때 빨리 가고 싶은 마음들이었는지 역대 최단시간을 기록하고 한 시간여 만에 집에 도착했다. 

2022년의 한가위도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내년 설에는 써니가 너무 어려 장거리 외출은 어렵겠지만 2023년의 한가위는 써니가 가족들을 만나는 첫 명절이 될 듯하다. 우리 부부 둘이서 보내는 마지막 명절도 이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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