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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s Sep 16. 2022

[22주 임신일기] 고관절이 망가진 것 같아요.

아기가 클수록 더 심해지는 환도 통증


21주, 2차 정밀초음파, 그리고 직장 건강검진에서의 간 기능 의심

22주, 배가 점점 나오면서 더욱 심해지는 환도 통증



8월 29일 월요일 (22주 1일)

11주 차 임신 일기에 썼던 환도 통증이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환도는 한의학적인 명칭이라 정확히 내가 통증을 느끼는 부위를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엉덩이의 푹 패인 부분, 허벅지 뼈와 골반이 만나는 그 부위가 너무 아프다.

임신 전에도 고관절이 아주 정상은 아니었던지라, 가끔 골반이 어긋난 것처럼 불편해서 스트레칭을 하거나 걷는 등의 가벼운 운동으로 해결하곤 했는데, 임신 이후 그리고 점점 주수가 지날수록 고통의 정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상근 스트레칭을 아무리 해봐도 해결이 안 되고, 누운 상태에서 자세를 변경하려고 하거나 일어나려고 할 때 악 소리가 날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다. 그럴 때는 아주 천천히, 남편의 도움을 받아가며 자세를 바꿔야 할 정도다.

내가 자주 하는 이상근 스트레칭, 임신 중엔 누워서 하는 것보단 앉아서 하는 게 낫다는 필라테스 선생님의 의견.


11주 때 같은 통증을 처음 느끼고는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께 여쭈었을 땐, '딱히 방법이 없다. 아기가 커가면서 더 심해질 거다.'라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이렇게 심해질 줄이야. 필라테스 선생님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했더니 스트레칭을 해보고 해결이 안 되면 병원에 가봐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하셨다.

병원은 별 다른 방법이 없대요 ㅠㅠ 출산이 유일한 해결 방법...

통증을 어떻게든 줄여보겠다는 의지로 유튜브에서 임산부 고관절 스트레칭을 검색해 요가와 스트레칭 동작을 따라 해 보기로 했다. 여러 영상을 따라 해 봤는데, 가장 시원하고 몸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던 영상을 추천한다.

Youtube '요가테라스 Yogaterrace' 채널
실제 임신 중인 선생님의 동작을 따라 하다 보면 몸이 풀리는 느낌이 든다.

8월 31일 수요일 (22주 3일)

시아버님께서 마지막으로 출근하시는 날이다. 40년 동안 교직생활을 하시다가 오늘 부로 퇴직을 하시는데, 남편과 나는 휴가를 내어 아버님께는 비밀로 하고 학교에 깜짝 방문을 하기로 했다. 남편은 힘들면 굳이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요 며칠 컨디션이 좋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나는 시댁 식구들을 만나는 게 좋다. 결혼 전부터 예뻐해 주셨고, 나에게 주시는 애정이 내가 임신을 하면서 곱절로 늘어 일단 가면 손해는 아니다. 태어날 손주에 대한 사랑을 내가 미리 받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 애정에 비하면 임신 중이더라도 하루 몇 시간 투자해 지방에 내려가 아버님의 은퇴를 축하하는 것이 나에게는 전혀 부담되는 일이 아니었다.

학교에 주차를 하고, 남편과 차 안에서 몰래 기다리다가 아버님이 출근하신 걸 확인하고 계신 곳으로 찾아갔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며 놀람 반 기쁨 반,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동료 선생님들이 준비해주신 감사패와 꽃다발, 그리고 학생회장이 읽어주는 축시에 마음이 뭉클하기도 했다. 나는 이제 고작 6년 직장 생활하고도 '아이고 지겹다' 하는데, 어떻게 40년을 할 수 있는지, 분명 존경받을 일이다.


남편과 집으로 돌아오면서, 결혼식 때 하객 앞에서 읽었던 결혼 서약서의 한 문장이 생각났다.

신랑: 근검절약하지만 아내에게만은 아낌없이 주는 남편이 되겠습니다. 그 대신 아내가 오래오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
신부: 가장으로서의 부담감을 남편에게만 주지 않기 위해 정년까지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남편도 정년까지 열심히 다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왜 이런 서약을 그 많은 사람 앞에서 했지? 이렇게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9월 3일 토요일 (22주 6일)

나는 SSG랜더스의 오랜 팬이다. 처음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 임신 소식을 알릴 때도 SSG 경기를 보러 갔던 날이었는데, 그때 이후로 야구 직관을 간 적이 없었다. 이제 컨디션이 좀 나아진 겸 그 친구들과 함께 다시 야구장을 찾았다. 외야 잔디밭에서 야구를 관람하는 그린존을 예약했는데, 바닥에 오래 앉을 것을 대비해 푹신한 좌식의자도 미리 준비했다. 두어 달 만에 만난 친구들은 부쩍 나온 내 배를 보며 놀라기도 했다. 오늘의 야구장 메뉴는 치킨과 떡볶이. 임신 이후 커피가 싫어지기도 했고, 못 먹거나 피하는 게 좋은 음식들에 대한 갈망이 별로 없었는데, 그중에 딱 하나. 맥주만큼은 너무너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맥주가 주는 청량감은 어떠한 탄산음료로도 대체가 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친구들이 준비해준 제로콜라를 마시는데, 마시다가 조금 흘렸다. 근데 이제 무언가 흘리면 배에 묻는다. 세상에, 배에 묻다니. 나중엔 내 발끝이 잘 안 보이고 발톱을 못 자르게 되는 때엔 현타가 온다는데. 며칠 전 회사에서 양치를 하다가 실수로 흘린 치약이 배에 묻었던 기억이 났다. 이제 그만큼 배가 많이 커졌다.

언제나 좋은 문학 야구장.

야구는 지루하게 이어지다 9회 말 역전 찬스를 허무하게 날리고 졌다. 우리 승률이 얼만데, 하필 내가 왔을 때 진다고? 그래도 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였으니 그걸로 됐다. 그렇게 위로하며 22주의 임신생활도 이렇게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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