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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smos Dec 15. 2022

[37주 임신일기] 태동이 줄었다.

태동이 급격히 줄어 응급으로 분만실 방문한 이야기

36주, 막달 검사, 머리가 큰 써니, 엄마는 자연 분만할 수 있을까?

37주, 태동이 갑자기 줄어서 응급으로 병원에 방문했다. 써니는 괜찮을까?



12월 12일 월요일 (37주 1일)

오늘도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남편은 당일 출장으로 지방에 KTX를 타고 내려갔고, 나는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밥을 챙겨 먹고, 써니의 초음파 사진 정리를 조금 하다가, 밀린 임신일기도 썼다. 7시쯤 늦은 저녁을 챙겨 먹으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오늘 써니가 조금 잠잠한 것 같다.


내가 느끼는 아기의 태동은 저녁시간에 유독 활발했다. 항상 애용하는 안락의자에 앉아있으면 꼬물꼬물 수준이 아니라 우당탕탕 자신의 존재감을 뿜어내던 아기다. 그런데 오늘은 다른 것 같았다. 아기를 움직이게 해 보려고 달달한 귤을 하나 까먹은 다음 침대에 누워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다 조금 꾸물거리는 듯한 아기. 그런데 태동이 너무 확연하게 줄었다. 마음이 조금 불안해졌다.

그대로 계속 누워있는데 9시쯤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방으로 들어와 내 옆에 앉았고 내가 태동이 너무 줄었다고 하니 남편도 손을 대어 태동이 느껴지는지 같이 집중해보았다. 남편도 이 시간에는 항상 활발했던 태동이 느껴지지 않아 당황하는 것 같았다. 지난주 외래에서 양수가 터지거나, 피가 많이 나거나, 배가 심하게 아프거나, 태동이 확 줄은 것 같으면 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했던 주치의 선생님의 말이 기억났다. 

내가 휴대폰으로 태동이 안 느껴지는 것의 기준 따위를 열심히 찾고 있을 때 남편이 '이러다가 우리 밤새 잠 못 잔다'며 병원에 그냥 가보자고 했다. 그래, 남편 말이 맞다. 불안하면 병원에 가서 확인하는 것이 맞다. 


병원에 일단 전화를 먼저 해봤다. 분만실로 연결되는 전화. 나는 태동이 너무 줄었다고 말했고, 수축이 있는지 물어왔다. 약간의 생리통 같은 통증이 있으면서 아랫배가 평소보다 딱딱하게 뭉쳤다. 수축이 있는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수축이 있으면 태동이 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불안하면 내원해 확인해도 된다고도 했다. 우리는 다 싸지도 못한 출산 가방을 들고, 모자를 대충 눌러쓰고 병원으로 향했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병원으로 가는 차 안, 조수석 시트를 조금 젖혀 태동이 잘 느껴졌던 각도로 맞춰 두 손을 배에 대고 태동을 느껴보려고 했다. 계속 자궁이 불규칙적으로 수축하며 이게 아기가 미는 건지, 자궁이 수축하는 건지 구분이 안 갔다. 한 가지 확실한 건 평소 같은 태동은 안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병원에 도착해 분만실로 갔다. 보호자는 입구에서 대기해야 해 나 혼자 들어갔는데, 데스크에 있는 간호사 선생님들께 내 증상을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병실 안으로 들어가 태동 검사 장치를 부착했다.


태동 검사 (태아 안녕 검사)

임신 후기 진통이 있기 전 태아의 심장박동 변화 양상을 분석해 태아의 안녕을 확인하는 것이다. 산모의 배에 자궁 수축을 감지하는 장치와 아기의 심장박동을 감시하는 장치를 각각 부착하고 약 20분간 검사를 진행한다. 산모는 태동이 느껴질 때마다 손에 든 버튼을 누른다. 감시 장치는 기계를 거쳐 그래프로 그려져 나온다.

그래프상으로 정상적인 태아 심장 박동수보다 상승하는 현상이 20분 동안 15회 이상, 15초 이상 지속하는지 살펴보게 되고, 이런 현상이 2회 이상 있다면 건강하다고 평가한다. 만약 40분 이상 충분한 태아 심장박동의 증가가 없다면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고 평가한다.


태동검사 장치 중 아기 심박을 감지하는 장치를 배에 부착하자마자 써니의 심박으로 추정되는 소리가 들렸다. 아, 일단 아기는 건강한가 보다 안심이 되었다. 배에 고무줄 두 개로 두 가지의 장치를 부착하고는 손에 펜 같이 생긴 버튼을 쥐어주시며 태동이 느껴질 때 누르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혈압을 쟀는데, 긴장해서 그런지 혈압을 여러 번 쟀다. 그동안 간호사 선생님께서 내 배를 여기저기 만져보더니 자궁 수축이 있다며 내진을 해보겠다고 했다. 넉넉한(?) 1cm, 이 워딩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자궁문이 1cm가량 열려있다고 했다. 이러다 분만하게 되는 거 아냐?

태동 검사는 저렇게 배에 두 가지 장치를 부착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간호사 선생님이 나가고 나는 순간 어리둥절했다. 지금 태동검사를 하고 있다는 건가? 태동이 느끼면 버튼을 누르면 되는 건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남편에게 현재 상황을 전달해주고 싶은데, 휴대폰은 이미 저 멀리 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태동검사를 할 때 아기 심장박동 소리를 처음엔 들려주다가 꺼서 내가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20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나는 태동을 거의 느끼지 못했고, 그래서 버튼을 한 번도 누르지 못했다. 그동안 병실에 있는 시계를 바라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3분 동안 주기적으로 배가 뭉쳤다. 배를 고무줄로 묶어놓으니 수축이 더 잘 느껴졌고, 심지어는 육안으로 배가 뭉쳐 솟아오르는 게 보이기까지 했다. 3분 간격이라니, 진짜 이러다가 아기 낳는 건 아닌지 갑자기 겁이 나기 시작했다.

출산 가방도 제대로 싸지 않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머리 감고 샤워도 좀 하고 올 걸, 분만에 대한 두려움을 회피해보겠다고 호흡법 동영상도 안 보고 공부도 안 했는데, 진작 해둘걸, 난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너무 겁이 났다.


태동 검사가 끝나고 간호사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는 그래프를 확인했다. 아기 태동은 수치 상으로 계속 있다고 했다. 오늘의 당직의 선생님께 진료를 받기 위해 진료실로 이동했다. 당직의 선생님은 "원래 막달이 되면 태동이 줄기는 하지만 엄마가 느끼기에 너무 줄었다면 확인을 해봐야겠지요?" 라며 등장하셨다. 초음파로 여기저기를 확인해보시고는 아기는 건강하다고 하셨다. 태동검사 그래프를 보면서는 이것보다 조금 더 활발했으면 하는데, 간호사 선생님께 아기를 깨워보았냐고 물었다. 한 번 더 태동검사를 해보기로 하고 일단은 안심하는 마음으로 병실로 이동.


다시 태동검사 장치를 부착하고는 간호사 선생님이 아기를 깨우는 기계(?)를 들고 오셨다. 진동 발생기 같은 건데, 배에다 대고 부르르 진동을 일으켜 아기를 깨웠다. 배 여기저기에 대고 부르르 부르르 하다 보니 써니가 조금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도 내 배에 손을 대고, "엇? 조금 움직이는 것 같은데요? 안 느껴지세요?"라고 물었다. 이내 한 번의 큰 움직임이 있었고, 나는 "몇 시간 동안 이렇게 안 움직였어요 ㅠㅠ"라고 울상이 되어 말했다. 중간중간 아기를 부르르 몇 번 더 깨우니 이전만큼은 아니더라도 아기가 조금 더 움직이기 시작했고, 태동검사를 몇 분 더 지속하다가 아까 뵀던 당직의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아기를 깨워보니 아기가 아까보다 잘 놀아요?", "네..(ㅠㅠ)"


불규칙적이고 약한 자궁수축, 그러니까 가진통이라고 부르는 수축이 있는 상태고, 이 상태에서는 분만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하셨다. 수치 상으로 아기의 심박이 훅 떨어지거나 아무 반응 없이 쭉 이어지면 수술을 해서 꺼내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태가 아니라고. 

태동검사, 초음파 상 소견으로는 아기에게 문제없으니 집으로 돌아가고, 마침 내일 외래가 있으니 태동이 잘 느껴지는 지를 계속 엄마가 주시하고 있다가 외래 진료를 받아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가진통이 있다가 내일이든 이번 주 안이든 진진통으로 이어지면 분만하는 것이고, 이런 가진통이 하루 이틀 이어지든, 일주일 동안 이어지든 모두 정상이라고 하셨다. 그 말인즉슨 언제까지 이런 가진통이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진통' 출처: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옷을 갈아입으며 가장 먼저 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병원에 도착한 지 한 시간 정도 지났는데, 그동안 남편은 안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하나도 파악하지 못하고 마음 졸이고 있을게 분명했다. 다급히 '아기 괜찮대, 지금 나가'라고 카톡을 보낸 뒤 수납을 하고 펭귄 걸음을 걸으며 분만실을 나왔다. 


남편은 그 새 1년은 늙어 보였다. 얼마나 걱정을 했을까. 나는 들어가자마자 태동검사를 하면서 아기 심장박동은 바로 들어서 1차 안심을 할 수 있었지만 남편은 아기가 괜찮은지, 나는 괜찮은지 알 수가 없으니 말이다. 

우리가 도착하고 몇 쌍의 부부가 더 왔는데, 다른 남편들이 간호사 선생님의 부름에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나는 도대체 언제 부르는 거야...' 라며 애태웠다고 한다. 누구보다 마음고생 많았을 남편, 또 이렇게 병원 가는 일이 분만 말고는 없길 바라며 휴대폰을 더 가까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집에 오니 12시가 넘었다. 분만이 임박했다니, 우리 둘 다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일단 배고프니 바나나를 주워 먹다가 이번 주말에 계획한 친구들과의 마지막 여행이 생각났다. 취소를 해야겠구나... 이제 꼼짝없이 써니의 '저 이제 나가요!!' 부름에 5분 대기조가 되겠구나...

아니 준비 안됐어... 아직이야...


12월 13일 화요일 (37주 2일)

우리 둘 다 어제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평소보다 늦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담당 주치의 선생님께서 병가로 진료가 어려운데, 진료를 금요일로 미루거나 오늘 비슷한 시각에 다른 선생님께서 봐주시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오늘 외래 진료를 봐야 하고, 다른 선생님이라도 괜찮다고 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예진을 하고, 오늘도 소변검사를 하기 위해 병원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데 갈색 분비물이 묻어 나왔다. 어라? 이게 이슬이라는 건가? 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슬(Show)

분만에 대비하여 자궁 경관이 변화하기 시작하면서 자궁 경부를 막고 있던 점액질이 약간의 피와 함께 배출되는 것을 말한다. 갈색이나 검붉은 색을 띠며 이는 분만이 임박했음을 시사하는 징후이다.



오늘따라 대기가 길었다. 아마도 의사 선생님 한 분의 부재로 예약이 많아 그런 거겠지 생각하며 차분히 기다렸다. 처음 뵙는 의사 선생님께서는 차트를 보셨는지 오늘은 태동이 어떤지부터 물으셨다. '어제보다는 나아졌어요!'


막달인 36주부터는 매주 진료를 보게 되는데, 저번 주와 비교하여 아기 머리가 하나도 크지 않았다. 선생님께 "지난주까지는 아기 머리가 3~4주가량 크다고 했었거든요"라고 했더니, "지금 초음파 상으로는 그렇게 크진 않아요."라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아기의 체중도 늘지 않고 거의 그대로였다. 체중이 늘지 않은 것 때문에 괜찮냐고 물었더니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하셨고, 머리가 크지 않아 머리 직경(BPD)이 그대로 9.5cm 정도였는데, 이 사이즈면 자연분만이 아직은 가능한 거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하셨다.


이어서 자궁경부 상태를 질초음파로 확인했는데, 1cm 정도 열려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방금 갈색 분비물을 확인했다고 하니 양수가 새지는 않는지 검사도 같이 했다. 

자궁경부는 보통 이 주수에는 안 열려있는데, 이 정도 열려있고 방금 확인한 분비물도 이슬인 것 같다며 분만이 임박했을 수 있으니 진통이 오면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역시나 동일하게, 일주일 안에 진통이 와도 정상, 안 와도 정상이라고... 아기의 시계는 도대체 어디쯤을 가리키고 있는 걸까...


아기 머리 크기 때문에 수술을 고려하고 있었다고 하니, 오늘 확인한 것으로는 머리가 3~4주씩 크지는 않으니, 수술로 아예 마음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면 다음 주 외래진료에서 다시 평가해보고 담당 주치의와 분만 방법에 대해 상의해보라고 하셨다. 그래! 이번 주 안에 진통이 온다면 일단 자연분만을 도전해본다!


집으로 돌아와서 우리 부부는 다시 출산 가방을 단디 싸고, 자연분만을 위한 호흡법과 남편의 마사지법을 열심히 공부했다. 짐볼 운동도 더 열심히 하고, 이제부터는 내가 먹고 싶은 것만 먹자며 남편은 메뉴 선정권을 나에게 다 넘겼다. (ㅋㅋ)


불쑥불쑥 겁이 나고 두려움이 나를 엄습할 때가 있지만, 그래도 나는 해낼 것이다. 그것이 자연분만이든 제왕절개든, 나는 해내고야 말 것이다. 나는 써니 엄마니까! 할 수 있다!!!!!!


그래 놓고, 자기 전에 무서워져서는 남편에게 '내가 죽으면,,, 우리 써니 잘 키워줘...' 이러고 있다... 모든 엄마들은 목숨 걸고 출산한다. 그러니 분만 방법이든 출산 과정이든 산모 본인 외엔 제발 참견하지 말자, 충고나 조언이 언제나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 좋은 마음으로 하는 말이라도 그냥 하지 않는 편이 좋다. 특히 '자연분만이 산모나 아이한테 좋아'라는 말을 아이 아빠가 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자연분만도 산모나 아이에게 안 좋은 경우 많다. 그리고 그걸 당신이 할 말은 아니다. 당신 아내도 자연분만으로 낳다가 죽도록 힘들었을걸? 후, 갑자기 이렇게 글을 마무리하게 되다니, 참을 인.. 忍忍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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