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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지은 Jean Oct 29. 2024

당신이 기삿거리가 되나요?

기자가 협박받을 때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또한 기자라면 협박을 '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특종을 묻는 대신 뒷돈을 받는다 등의 사례들이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현실은, 정상적인 기자들(???) 사이에서는 비율로 따지면 기자는 협박을 '당하는' 쪽이 압도적으로 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기사가 광고 홍보도 아니고, 특정 대상을 적으로 돌릴 것이 뻔한 공격적인 기사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공적인 이유도 많지만 이것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할 수 없다.(이것도 눈치 보여서 여기에 못 씀) 그중에서도 읍소를 가장한 협박 아닌 협박이 제일 난감하다. 은근슬쩍 협박이랄까.


실제로 지인 기자들 중에는 소송을 당한 사람도 많다.  모두들 개인에회사를 대상으로소송을 건다. 하지만 이번엔 그것을 떠나 브런치인 만큼 나는 나에게 사소하게 벌어진 사적인 이야기들을 언급해볼까 한다.



최근 골 때리는 사례가 있었다.


가끔 직업을 의도치 않게 밝혀야 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최근 꼬리뼈 골절을 당했을 때 의사 선생님께 안 쉰다고 떼를 부리니 "대체 무슨 일을 하길래 계속 밖에 나가야 한다는 거예요?"라고 화내셔서 어쩔 수 없이 "기잔데 어떻게 해요 흑흑ㅠㅠ"이라고 답하는 경우랄까.


이외에 기자라는 것을 먼저 잘 밝히지 않는 이유는 기자란 것을 알았을 때 긍정보다 부정적인 반응이 많아서다. 여러 말들을 들어봤는데 칭찬조차도 오묘하게 멕이는 말 같아서 최대한 숨긴다. 심한 경우에는 도덕성이 운운되거나 말 한 번 편하게 할 수 없는 자리가 생기기도 한다.  



어쨌든 최근에 발생한 일은 허위 매물로 인한 중개사님과의 실랑이 중 당한 협박이었다. 키도 쪼그마한 손님인 나를 말랑하게 보고 야바위꾼처럼 다가오는 중개사님은 이전에도 봤어도 이번 사람은 정도를 넘었다.


자취 인생 13년 동안 이런 매물은 정말 처음 봤다. 물론 내 잘못도 있다. 최근 휴직으로 인해 부산에 있기도 했고 그 와중에 몸이 아파 병원 치료로 인해 시간도, 여유도 없어 매물 사진 보고 통화만 몇 번 한 채로 선금을 박았다. 하지만 중개사의 말이 뭔가 수상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영업일 기준 다음날 최대한 빠르게 KTX를 타고 서울에 올라가 방을 드디어 본 순간 나는 경악했다. 깔끔한 매물 사진, 설명과 달리 실제 방 자체는 거의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나 보던 쓰레기방이었다. 더러움을 넘어선 어나더 레벨.


짐인지 쓰레기인지 알 수 없는 것들로 인해 방을 보려고 해도 뚫고 들어갈,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창틀 크기를 재려고 해도 창문들 앞에 벽처럼 짐들이 천장까지 쌓여 있어서 손을 뻗었는데 창에 잘 닿지도 않았다.


화장실 거울은 녹슬어가고 곰팡이가 곳곳에 스며든 타일 실리콘들은 보수 작업만이 살 길처럼 보였다. 방이 깨끗하고 좋다는 중개사의 통화 속 말은 기망 행위였다.


그래서 결국 이 정도 반전(???) 방이면 선금을 환불해 주는 것이 맞다고 판단해 이전까지 내가 중개사와 나눈 대화 등을 언급하며 환불을 요구했다. 그의 거짓말(집이 깨끗하다 ) 대해 강조했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불쾌해했다. 왜 이런 증거를 으냐는 것이었다. 여러 면에서 나에 대해 따져 묻길래 내가 기자고 직업병이 있어 중요한 일들은 캡처를 따놓거나(최근 악플 고소 사례 때문에 더 예민해짐) 최대한 증거를 남겨놓는 버릇이 있는데 무례하고 유별나다고 생각한다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그는 태도를 확 바꾸며 말했다. "기자라고 지금 저 협박하세요?"


순간 "갑자기 대화 흐름에도 안 맞게 무슨 소리지?" 싶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들어보니 내가 기자라고 밝혔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협박당해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는 요지였다. 마동석 같이 덩치 큰 아저씨가 치와와일 뿐인 내게 말이다.


너무 웃긴 건 겁박당한다고 말하는 사람의 톤이 격앙되거나 두려운 톤이 아니라 비아냥거리며 '너 잘 걸렸다'는 식의 말꼬리를 잡는 톤이었다는 점이다. 순간 이 상황이 상대방에게는 나를 물고 늘어질 약점이 되겠단 생각에 '아차' 싶었다.


하물며 나아가 그는 내게 "어디 기자세요?"라고 회사에 전화라도 할 것처럼 물었다. 그건 선을 넘은 질문이었기에 나는 그제야 대꾸했다. "협박은 그쪽에서 하시네요. 어디 회사인지 알면 찾아와서 해코지라도 하시게요?"라고.


대화가 길어지자 솔직히 좀 악감정이 쌓이는 만큼 그 아저씨가 무서워지기도 했고 최대한 원만하게 끝내기 위해 내가 먼저 사과를 했다. 그제야 실랑이는 끝났다.



사례를 언급하며 나는 이제 그에게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은 것생겼다.


보통 기사라 함은,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큰 이슈들을 다루는 글이다. 그런데 기자 개인이 환불 하나 못 받았다고 보복성 기사를 낸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애초에 기사 속에서는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특정한 상호명 언급도 못하는데 말이다.


내가 매체 사장인가? 데스크인가? 아마 여느 매체든 간에 팀 내 기자 한 명이 몇 억짜리 전세 사기를 당했다고 해도 그 개인적인 일을 기사화시키지 않을 것이다. 뭐 빌라왕 관련 피해자 수백 명의 이야기가 담긴 스케일 정도라면 모를까.


정 모 씨, 허위 매물 선금 환불 원했지만... 돌아온 건 중개사 '모르쇠' (헤드라인부터 재미없음)



한편으론 다른 관점에서 어이없는 포인트는 "기자라고 협박하세요?"라는 말에 깔려 있는 그의 단한 자신감이다. 어쩌면 그가 사건이 엄청난 이슈 거리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다음날 뉴스에 나올 만큼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야 나올 수 있는 질문이지 않을까.


그런데 데스크 통해서 글을 보내는 고작 찐따 평기자인 나한테 "기사라도 쓰시게요?  사업 망하게 하려고 협박하세요?"라고 물어보는 것은 내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다 못해 복장이 터지는 일이다.



이 일 이후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이 기자만은 아니라는 특정 직군을 가진 주변인들의 증언을 듣게 됐다.


직업 군인인 친구는 교통사고 피해를 당해 가해자와 실랑이를 하고 있을 때 차량에 붙어있는 군용 차량 스티커를 본 가해자가 "군인이 이래도 돼?"라고 협박당한 썰을 이야기 해줬다.


공무원인 친구는 싸워야 할 일이 생길 때 구청으로 민원을 넣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말했다. 경찰인 친구는... 아, 그냥 이 사례는 너무 심해서 언급하지 못하겠다.


물론, 오히려 이렇게 직업이 약점이 될 것을 알기에 공격하는 용도로 이런 질문을 '모르쇠'로 던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한두 번 당한 게 아니기에 이젠 나를 '역협박'하는 이들에게 모질게 이야기할 것이라 다짐해 본다.


"선생님. 저는 직업으로 인해 협박을 '받은 적'이 더 많아요. 제발 제 직업 핑계 삼아 '협박 피해자 코스프레' 그만두세요.


그리고 자신을 돌아보세요. 애초에 이 일이, 그리고 당신이 기삿거리가 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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