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울에 올라온 해는 2011년도이다.
대학을 합격한 기쁨도 잠시, 서울로 나 혼자 가야 한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20년을 대구에서 살았고 부모님도 친구도 모두 대구에 있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서울에 혼자 간다는 것이 20살의 나에게는 두려운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20살이라는 나이는 아이 같은 나이이다. 그때 혼자 서울에 올라온 내가 대견하다.
(지금은 다른 지역 가서 살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20년을 부모님과 같이 살다가 혼자 살려고 하면 부모님도 걱정하시지만 나도 내가 걱정이 된다.
혼자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대학교 1학년 때는 기숙사에 사는 사람들이 좀 있었다. 각 지역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에 사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슬프게도 나는 기숙사에 살 수 없었다. 우리 학교는 학교 기숙사도 없었고 대구 지역의 기숙사도 없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였다. 하숙을 하던가 자취를 하던가. 그리고 하나뿐인 딸이 매우 매우 걱정이 되었던 아빠는 학교 근처에 있는 여자 전용 하숙집을 얻어주었다.
첫 일 년을 학교 근처 하숙집에서 살았던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보증금 100에 월세 65만 원이었다.
하숙집 치고는 비싼 금액이었다. 그렇지만 눈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서울이라는데 그 금액을 내더라도 아빠는 나를 안전한 곳에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같은 고등학교 출신인 친구가 나와 같은 대학을 오게 되어서 이 하숙집을 그 친구에게 알려주었고, 같은 건물에 살게 되었다. 그것도 참 인연인 게, 고등학교 때에는 얼굴만 알고 지내던 친구였는데 대학생이 되어서 더 친해졌다.
하숙집 건물은 4층까지 있었고, 나는 3층에 살았다. 주인아주머니는 다른 곳에서 살았다.
아침과 저녁을 해주었고 4층에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나마 참치 주먹밥이 맛있었는데, 그게 나오는 날이면 같이 사는 언니들과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오늘 참치 주먹밥이야!!!’
그리고 참치 주먹밥을 몇 개 쟁여두었다. 배고플 때 먹으려고. 그때 나에게는 참 맛있었다.
우리 하숙집은 층마다 방이 있고, 작은 거실 그리고 화장실이 있는 구조였다.
화장실 안에 세탁기가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 화장실을 쓰면 빨래를 할 수도 없다.
옵션은 침대와 책상이다. 에어컨이 없어서 여름을 매우 덥게 보냈다.
내가 사는 3층의 방은 4개였다. 언니 둘과 나와 같은 나이인 친구도 있었다.
지하층에는 같은학번 친구들 4명이 있었다. 앞서 말한 고등학교 동기인 친구는 지하에 살았다.
나와 같은 층에 사는 친구는 지하에 자주 내려가서 수다를 떨었다.
같은 학번이고 나이도 같은 친구들이어서 통하는 것이 많아서 그랬다. 매일매일이 엠티인 기분이었다.
주말이면 간식을 사들고 수다를 떨었다. 어떤 날에는 작은 거실에서 불다 꺼놓고 영화를 보기도 했다.
새벽에 갑자기 마트로 산책가기도 했다.
어느 날에는 같은층 친구와 충무로로 구경을 갔다. 지금은 그곳이 인쇄소와 공장이 가득한 곳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리고 충무로에 볼 게 없다는 걸 깨달은 나와 친구는 충무로에서 동국대학교역까지 수다를 떨면서 걸어갔고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같이 집으로 돌아올 사람이 있다는 건 참 좋은 것이다. 어두운 밤길이 무섭지도 않았고 돌아오는 길 내내 수다 떨면서 올 수 있었다.
또 대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꼭 해봐야 하는 ‘내일로’를 같이 다녀왔다. 그때는 정말 어디서 자는 것, 무엇을 타는 것, 이런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찜질방에서 자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20살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내일로를 갔을 때 다른 에피소드도 있다. 내일로를 하던 중, 전화를 받게 되었는데 지하층에 물이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서울에 비가 엄청나게 많이 왔다. 우리는 3층이어서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지하에 사는 친구들은 물을 밖으로 퍼 나르느라고 고생을 했다고 한다. 슬프지만 웃긴 이야기를 들으며 여전히 우리는 그때 이야기를 하곤 한다.
서울로 막 올라온 20살 지방 애들은 서울의 모든 것이 새로웠다.
특히나 무한도전을 좋아했던 나에게 티비로만 보던 곳들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