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응켱 Apr 28. 2022

연애는 연애고, 친구는 친구지.


연애하면 친구는 다 부질없지...


과거의 내가 했던, 지금은 그 입 당장 다물라를 시전하고 싶은 발언 중 하나. 이건 자기 세계를 스스로 좁히는 무식하고 위험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저 생각에 매몰되어 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애인'이란 존재 만이 삶을 동반할 사람이라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뭐 그리 절박하고 동시에 올드하게 생각했던가 나는. 뭐 그렇게 스스로를 고립시켜야만 했던건가 나는. 지금의 나는 동의할 수 없는 대표적 자기발언 중 하나라면 아마 이것일듯... (결혼을 한다면 또 달라질까- 결혼을 해도 친구들과 자주 소통하며 지내고 싶은디..쩝. 아직은 내가 직접 겪어보지 못한 세계라서 결론은 미뤄두는 것으로.)



아무튼 그 이후 어떤 연애 공백기를 보내며, 자연스럽게 친구들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다시금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이즈음 되면 받아준 친구들 최소 성인군자가 아닐지. 과거의 내가 내린 매우 섣부른 단정들에 대해 꽤 많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고 뼈저린 반성을 해야만 했다. 친구들, 과거의 나부터 지금의 나까지. 내 작은 역사들을 지켜봐 준 이들의 소중함을 너무 쉽게 생각 했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그리고 확실히 또 깨달은 건, 애인 뿐만 아니라 내가 소속된 사회가 여럿일 때 적어도 내 삶이 균형감있게 유지되기도 하고, 여러모로 나자신한테도 건강하다는 것이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깊이 느낀 깨달음 중 하나이기도 하고.



이런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연애를 시작한 뒤 확실히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맹세코 연애한다고 유세 떤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어쩐지 친구들에겐 금토일은 나를 방생하는 날로 각인되어 있다. 그 와중에도 몇몇 친구들은 '뺏긴 것 같다'며 아쉬워하였다.(해주었다.) 그정도로 연애 공백기 동안 친구들과 거의 연애하듯이 살았던게 아니었나 반추해보기도…



나의 시간이란 한정적인데 반해, 꽤나 독점적 권한을 가진 핵심인물이 등장했으니 그건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흐름 아니겠는가. (네들 남친 생길 때도 어디한번 보자..) 아무튼 '뺏긴 것 같다'는 이 표현이 내게는 꽤 귀엽고 애정넘치는 발언으로 느껴져서, 다음에 내가 역으로 친구들 남친과 인사라도 할 자리가 생기면, 그 때 이 표현을 재응용하며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줘야겠노란 다짐을 하기도. '어디 아까운 내 친구를...기왕 데려가셨으니 많이 잘해주시라. 못해주시면 다시 환수하겠다...!' 실제로 내가 감동받은 친구의 대사.(너 이녀석.. 날 그렇게까지 생각했단 말이냐.)



연애 이전에 비하면 확실히.. 시도때도 없이 집에 다녀가거나, 퇴근 후 왔다가 다음날 아침 바로 출근하는 일을 예전만큼 자유롭게 할 수 없게 되면서, 아쉬운대로 볼 수 있는 서로의 막간을 노려야 한다. (프리랜서지만 어쩌다보니 나도 영업일은 빡쎄게 일하고 주말엔 셧터내리는 노동형태를 따르고 있어서 평일에 사람만나기가 쉽지가 않다.) 그렇게 애달플 일인가 싶을 정도로 만남에 진심이 되어 무조건 만나면 맛있는 걸 함께 먹고, 하도 나눠 새로울 것도 없는 그저그런 서로의 안부나 근황을 꾸준히 나눠간다. (물론 나는 친구들의 일상에 설레는 이벤트가 생기길 호시탐탐 바라지만…)



‘출근은 잘 했느니- 밥은 먹었느니- 퇴근은 했느니- 뭐 먹었느니- 오늘 운동은 했느니- 요즈음 이게 핫하다느니- 여기 맛있어보이지 않느냐느니- 저번의 그 썸남과 연락은 어떻다느니-…’ 몇가지의 주제를 빼면 사실 애인과 별반 다름이 없을 정도로 여전히 많은 것을 공유하기도 한다….

쌓인 믿음만큼 뭔 소리를 해도 서로가 서로를 판단하지 않게 된 사이, 이 험난한 세상살이 중 가능하다면 내가 상대에게 여러 지지대 중, 심적으로 기댈 지지대 하나 더.. 정도가 되어주는 것도 좋겠다 싶은 관계.

내게 친구는 그런 의미가 있다.





'연애하면 친구는 다 부질없다...'

‘연애는 연애고, 친구는 친구다…’ (정정)





늘 이렇다.


내가 어떤 시점 내렸던 결론들, 진리인냥 불변할 것을 기대하며 확언했던 믿음은 언제나 내 예상을 벗어난다. 의견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색을 바꾸어 쓴다. 영원할 것 같았던 그 때 그 믿음은 찰나를 계기로 뒤엎어진다. '전복되다'란 단어가 생각날만큼 꽤 역동적으로. 지나고보니, 서른 둘과 서른 셋의 나는 상당히 역동적으로 바뀌어 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모든 건 정말 변하는구나.

하물며 나도 과거의 나로부터 계속 변하는구나.

앞으로는 그럼 또 얼마나 변해갈 것인가.

지금의 나는 아마도 영원한 나일 순 없을 것이다.'



인생에 자기 깨달음이 많이 쌓여있지 않던 한 때의 일이지만, 일단 이 ‘나란 인간도 변하는구나’란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모 아니면 도인 듯 사고하던 나에겐 이마저도 굉장히 큰 깨달음이었던 것. 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 어쩜 그렇게 완강히 믿을 수 있었던 걸까. 그러다보니, 나만큼 애쓰지 않는 타인에게 함부로 판단의 잣대를 들이밀었다. 옳고 그르다느니. 훌륭하고 우습다느니. 맞고 틀렸다느니. 좋고 나쁘다느니…어디까지나 모든건 그냥 개인의 호불호, 개인의 취향일 뿐임을 알지만 그땐 몰랐다. 그렇게 지금까지의 내가 인생을 보던 방식들이란 한낱 뜨겁고 미숙하며 아집가득, 혈기왕성한 시선으로 한순간에 바뀌었다.



돌이켜보면 내 세계의 틀이 확장되는, 그 시작의 시점은 늘 그래왔던 듯 하다. 벽을 차고 싶게 만드는, 쥐구멍으로 숨고싶게 만드는 어떤 강렬한 부끄러움이 동반된다. 내가 믿었던 믿음들이 흔들리는 대혼란과 의심의 순간들은 그렇게 찾아온다. 사실 이건 매우 불안한 일이다. 심지어 내가 믿었던 것들, 나의 세계가 덧없이 산산조각 나는 기분이란 절망감이나 좌절감과도 비슷하다. 여기서 최악은, 그것을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무엇하나 확신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확신하자니 두렵거든.

확신이 없다면 제대로 나아갈 수 없다.



그렇게 깨져버린 나의 세계.

그 조각들을 수습하며 기준은 하나 생겼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이 하나 생겼다. 뭔가를 섣불리 단정하는 것, 또 그것을 외부에 드러내는 것만큼은 신중하자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는게 업인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생각에 도달해버린 것. 본능이나 기질에 기대어 펼치던 일들이 갑자기 어려워져버리긴 했다. (그렇게 기술이 필요한 시점을 맞이..) 지난 나의 확언과 단정들은 부끄러운 것들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도 그 나름 어쩔 수 없는 나의 과정인 것을. 나는 어쩔 수 없이 요란한 사람, 그것만큼은 변함이 없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일, 흘러가버린 일들을 부여잡고 있는 건 의미가 없다. 할 수 있는 건 앞으로 더 잘하는 일 밖에 없다.



나름의 결론-.

세상에 꺼내고자 한다면, 나는 그것이 편향적이질 않길 바랄 것. 부질없더라도 나는 영원히 그걸 바라며 애쓰고 노력할 것. 하지만 동시에 사실 모든 주관은 대부분 편향적일 수 밖에 없음을 함께 인정할 것. 편향된 의견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런 의견도 있으면 이런 밍숭맹숭한 의견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는 법. 그렇게 세상은 다양하게 채워져가는 거겠지. 스스로를 몰아세우지 않기 위해 결국 나는 '다양성'의 가치를 받아들였다. 내 마음이 가난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는 이 '다양성'의 가치로부터 신세를 지는 걸지도 모르겠다.



'다양성' 외에도 한가지가 더 있다. 깨졌던 나의 세계를 다시 견고히 이어붙일 수 있게한 내가 찾은 해답.

모든 건 변하는 존재지만, 그럼에도 나아가야 한다면-, 뭔가를 부여잡고 바라보며 나아가야 한다면-,

결국 '겸손'이란 게 되게 되게 중요한 거란 사실이었다.

내 세계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이었다.



'나의 결론이란 내가 머무는 세계에만 국한된다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것. 내가 내린 많은 맺음들과 경험들이 내 세계 밖에서도 적용될거라 기대하지 말것.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구는 것만큼은 경계할 것. 경계하는 만큼 동시에 적어도 '내 세계'라는 바운더리에서만큼은, 내가 겪은 경험들의 의미에 대해 스스로 애정하고 존중해줄 것. 그것들을 마음껏 믿을 것. 내가 선택한 그 믿음들이 온전히 내가 되어간다는 점을 인식할 것.'



내겐 한계란 게 있으니, 나는 '선'을 철저히 긋는다.

'내 세계인 것'과 '내 세계가 아닌 것'을 명확히 분리하고 구분을 짓는다.

그 선을 기준으로 나는 차별을 한다.

'내 세계'에 포함될 것들에 대해서 만큼은 깐깐하게 판단하고 신중하게 선택한다.

‘내 세계’에 포함된 이상 그것에 대해서 만큼은 가능한 무조건적인 믿음과 지지를 쏟고자 한다.


결국 내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수 없음을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들이었다. 전보다 '폐쇄성'이 높아진 나의 세계, '다양성'과 '겸손'은 그래서 필요하다. 폐쇄적인 건 괜찮지만 배타적인건 왠지 그렇거든. 이것만큼은 여전히 뭔가 불편하고 싫다.



젊은 나는 '개방성'에 대해 매우 큰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개방성이라는 미명 하에 차별과 편견을 싫어하기도 했고. (지금 돌이켜보면 ‘두려워했다’가 맞을지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차별과 편견의 순리에 대해 공감하는 일이 훨씬 더 많아졌다. 차별과 편견이란 어떻게 탄생했으며 어떤 역할로 이 사회에 나름의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지. 그것이 왜 필요할 수 밖에 없는지.



차별과 편견에 감정적인 대응을 하기보단 그 프레임을 그대로 입어 활용해내거나, 역으로 이용하길 선택하는 일이 더 많다. 프레임이란 편견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다수의 감각이기도 해서. 거기에 더해 세상만사란 게 뭐든 자기가 접근하는 방식에 따라 의미가 부여된다는 점에서도, 차별이나 편견이란 더이상 불쾌하거나 두려운 대상은 아닌게 되었다. (편견이 있는 지점은 사람들이 방심하기 쉬운 지점이기도 해서 조용히 때를 노리다가 뒤통수 한번이라도 날려줄 기회란 것이 될수도 있지 않겠는가.ㅎㅎ)



아무튼 분명한 건

분별없이 나의 세계에 무언가를 함부로 들였을 때, 그것이 지닌 파괴력 또는 반대급부적으로 더욱 견고해지는 울타리 등에 대해 이제는 깊이 깊이 이해하는 편. 그래서 나는 기꺼이 차별주의자이련다. 필요하다면 내가 세운 기준에 따라 차별할 것이다. 당연히 같을 수 없다. 차등적으로 마음을 쏟을 것이다.



이렇게 나는 변했다.

나의 이 소중한 세계를

더욱 견고히 더욱 살뜰히 지켜나가고자

내가 터득한, 내가 선택한 방식에 맞춰.



어찌 이렇게 변해갈수록

내가 싫다라고 느꼈던 감정은 부끄러운 것이 되기도 하고, 내가 싫어했던 대상은 미처 몰랐던 국면으로 이해가 되기도 한다.

관점의 변화란 게 좋은건지 안좋은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 큰 평안함과 단순함을 준다는 건 알겠다. 사실 그렇게 내 세계를 지지해내는 단단함 정도면 세상을 살기엔 충분하기도 한데. 요즈음은 매우 자주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작가의 이전글 카페에서 이러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