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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온 Feb 24. 2022

잠 못 드는 밤

 


불룩 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기분 좋게 숙소로 돌아갔다. 카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2층으로 올라가 방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엑스트라 매트리스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발에 무언가 툭 하고 걸렸다. 


발 밑을 내려다보니 누렇다 못해 검어 보이기까지 하는 얇디얇은 ‘요’가 깔려있었다. 숨이 다 꺼지고 딱딱해진 요 안의 솜은 이곳저곳에 뭉쳐있어 마치 울룩불룩 엠보싱 휴지 같은 모양이었다. 그 누렇고 검은 물체는 심지어 화장실 입구 앞에 널브러져 있었다. 화장실은 방보다 높이가 높았는데 화장실 문턱에서 방바닥으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요’는 그 물을 조금씩 흡수하고 있었다. 

“뚝, 뚝, 뚝.” (물 떨어지는 소리)

“…….”


우리는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뚝뚝 떨어지는 물소리만 고요한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마치 정지화면 같았지만 머릿속은 그 어느 때보다 바빴다.

‘설마 이게……?’

‘음…….’

‘에이…… 설마, 아니겠지.’

‘진짜……?’


믿고 싶지 않았지만 아무리 돌아봐도 그 물체 외에 엑스트라로 매트리스로 추정할만한 것은 어떤 것도 없었다. 각자 머릿속에서 사건 파악을 마치자 적막을 깨며 그들의 입에서는 욕설이 나왔고 나의 입에서는 어이없는 헛웃음이 나왔다. 

“야이, 삐---------”

“아하하하하”

“야, 너 여기선 못 자. 이 더러운 데서 어떻게 자냐??”

“그럼 어떡해? 지금 나가서 환불해달라고 하면 해줄까?”


엑스트라 매트리스가 어떤 건지 확인하고 돈을 냈어야 했는데 불찰이었다. 배고프고 피곤하기도 했지만, 정말 미처 생각지도 못했다. 대단히 좋은 매트리스를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건 해도 해도 너무 했다. 그런 낡디 낡은 ‘요’를 엑스트라 매트리스라고 칭했을 줄이야. 이미 낸 돈을 돌려받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았고, 밥을 먹고 온 뒤라 환불을 받는다 해도 그 밤에 방을 다시 구하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무엇보다 10시간 넘는 이동에 지쳐 당장이라도 눕고 싶을 뿐이었다. 또다시 생각에 잠겼던 우리 셋의 눈은 일제히 방 가운데 놓여진 트윈베드로 향했다.

“…….”


“야 그냥 저기서 다 같이 자자. 우리 어차피 셋 다 침낭 안에서 잘 건데.”

“그래 그러자, 애를 어떻게 여기서 재우냐?”

둘 다 두 살 터울의 누나가 있어서인지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아……음……”

바닥의 요를 다시 내려다보니 나 역시 도저히 거기서는 잘 수 없다는 말에 동의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지만, 며칠 시간을 보내고 보니 그들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정말 한치의 의심도 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트윈베드에 각자의 침낭을 꺼내놓게 되었다. 

“추우니까 니가 가운데서 자라”

“그래 니가 쪼끄마니까 그게 낫겠다.”

“응. 알겠어.”          


자다가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하지 생각했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짐을 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나를 전혀 여자로 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화장실 밖에서 사람 몸이 보이지는 않지만 문도 닫지 않고 소변을 보는 그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 쫌!!!! 인간적으로 문은 닫고 눠라 쫌!!!!”


그렇게 티격태격하다 셋은 각자의 침낭 속에 미, 도, 미로 누웠다. 언뜻 보면 TV 방송 프로그램 ‘일박이일’에서 야외취침을 하는 모습 같았다. 그들은 버스에서와 마찬가지로 머리를 대자마자 이내 잠이 들었다. 10시간 넘게 이동하면서 한숨도 못 잔 나였지만 이상하게 자려고 하니 잠이 오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지만 나의 눈은 여전히 말똥말똥했다. 트윈베드의 가운데 나무 부분이 등에 배겼다. 그렇지만 등이 불편해서 잠이 오지 않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혹시나 내가 뒤척거리면 두 사람이 잠에서 깰까 천장만 멀뚱멀뚱 바라보다 새벽 늦게야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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