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 Apr 14. 2021

선상에서의 해피할로윈!

크루즈승무원의 할로윈 파티

5대양 6대주를 항해하는 17척의 프린세스 크루즈 선박들 중 약 3,8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 프린세스는 당시 아시아를 기항하는 마제스틱 프린세스와 같은 아시아 크루즈의 범주에 속해있었다. 하지만 일본을 주로 기항하는 크루즈의 특성 탓인지 실제로 선상 위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게 비친다.


일본을 중심으로 한 크루즈 선이라고 하니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는 일본인 승무원들만 근무하는 걸까? 모르는 말씀. 전 세계 각국 출신의 크루 멤버들이 이곳에서 각 부서를 담당하고 있다.



승선한지도 어언 보름이 흐른 시점. 동양인다운 수수한 외모에 적당한 영어 구사력, 업무에 큰 지장 없는 중국어 회화능력, 그리고 입맛에 맞는 음식, 아시아계 승객들이 발산하는 익숙한 기류, 단조로운 스케줄 등. 이 모든 것들의 조화가 완벽하게 공존할 때쯤 한 가지 즐거운 이벤트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크루즈에서 할로윈!?


그렇다. 크루즈승무원으로 근무를 하며 여태껏 말로만 들었던 할로윈 파티. 영화나 책 속에서나 봤을 법한 할로윈을 드디어 크루즈에서 즐기는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스타 크루즈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는 10월 31일 할로윈의 '할'자도 모른 채 홍콩에서 오버나잇(overnight; 한 도시에 정박하여 1박을 하는 경우)을 했고, 홀랜드 아메리카 라인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는 아쉽게도 할로윈을 2주 앞두고 귀국을 했으며, 프린세스 크루즈 라인의 마제스틱 프린세스호에서는 할로윈 시즌이 포함되지 않는 컨트랙을 진행했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n년차 크루즈승무원임에도 불구하고 선상에서 맞이하는 할로윈은 처음인 셈이었다.



크루즈 선들은 할로윈이 시작되기 하루 이틀 전부터 선내 곳곳에서 자그마한 변화를 주기 시작한다. 할로윈스러운 풍선과 각종 아트, 거미줄, 호박, 귀신, 해골 그리고 유령 등의 모형이 보는 이들의 재미를 더해준다. 그 분위기는 대체로 으스스한 편이지만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꾸며지기도 한다.


파도를 가르고 항해하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이지만 할로윈이라는 프레임이기 씌워졌기 때문일까, 근무를 위해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시간이 즐겁고 기나긴 근무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가는 느낌에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온다. 흥겨운 분위기에 매일이 오늘만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며 그에 따른 따뜻한 미소가 자연스럽게 우러나온다.


크루즈를 좀 타봤다 하시는 승객분들은 크리스마스, 새해, 추수감사절 등 일부러 이런 이벤트가 있는 날을 골라 크루즈를 예약한다. 특별한 날을 기대하며 승객들 스스로 그에 걸맞은 준비를 한다. 그러니 그들에게 있어 할로윈같은 큰 기념일에는 코스튬 준비는 물론 파티 시작 전 메이크업도 직접 한다. 본격적으로 놀 준비가 되었다는 거지.


이번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서는 카지노 매니저의 지침에 따라 코스튬이 아닌 유니폼을 입고 평범하게 맡은 바를 수행했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선사 불문 근무 시간에 단체로 메이크업과 코스튬을 장착한 채 승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더라.

'다음 할로윈이 무척이나 기대되는 걸?'




근무가 끝난 크루들은 대게 크루바에서 할로윈 파티를 즐긴다

그렇다면 할로윈에 크루 멤버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크루바는 어떨까? 크루바 역시 크루즈 선내 못지않은 휘황찬란한 컨셉을 자랑한다. 크루즈 생활을 오래 한 크루 멤버들 역시 본인의 컨트랙에 할로윈이 포함되어 있을 시 그 날을 대비해 할로윈 코스튬을 미리 챙겨가는 편이다.


실제로 내가 봐왔던 할로윈 코스튬은 기대 그 이상이었다. 파티가 한창일 때 주위를 둘러보면 '얘가 얜가..?'싶을 정도의 분장을 한 친구들이 가득하다. 그들은 단순히 옷을 입는다라는 개념이 아니라 그 캐릭터에 완벽히 빙의되다시피 해 그 밤을 불태운다. 마치 오늘을 위해 태어난 것 마냥. 몇 번 경험해봤으면 한 번쯤은 조용히 넘어갈 법도 한데 요리보고 조리 봐도 대부분의 크루 멤버들이 코스튬에 진심인 모습이다.


크루즈 선사 측에서도 이런 가뭄 속 단비 같은 이벤트에는 상당히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힘겨운 선상생활을 견딜 수 있게 해 주는 순간들이니 그럴 수밖에. 이날만큼은 크루 멤버들이 마음껏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사소한 것들을 구축해주는 편이다. 매일 색다른 이벤트가 진행되는 크루바이나 할로윈인만큼 모두의 흥을 돋우는 DJ의 선곡, 때때로 주어지는 1인 1잔의 혜택, 그리고 코스튬 상금 이벤트 등을 진행한다.



어쩌면 조금은 단조롭기만 한 선상 생활에서 한줄기 빛이 되어주는 할로윈 시즌. 이번에는 무난한 푸른 계열의 치파오를 착용했지만 언젠가 선상에서 할로윈 시즌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그때는 열심히 근무한 만큼 더 재밌게 즐겨보리라 다짐했다.






2019년 스타 프린세스호에서의 할로윈 시즌
매거진의 이전글 바다 위에서 즐기는 월드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