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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외맛식혜 Apr 14. 2024

티켓을 또 사버렸습니다.

뻔한 것을 알면서도 취미가 여행인 나는,

나의 여행은 참 계획이 없으면서 부지런한 편이다. 나의 전 직장 동료 중 한 명은 일 년치 여행 계획을 미리 세우고 때에 맞춰 착실히 실천한다고 하는데, 나는 여행을 굉장히 즐기는 편인데도 하루살이의 마음으로 당장 코 앞의 미래만을 살아간다, 그래서 내가 여행을 결정하는 과정은 대략 이렇다. “어, 연차가 좀 많이 남았네. 다음 달에 4일 정도 써야지.” 혹은 “뉴캐슬에 아는 사람이 있는데 다음 달에 만나러 갈까?” 그리고 또 “너 여름에 베를린 간다고? 대박 나도 갈래. “


그렇게 앞으로의 계획이 없으면서도 ‘여행을 간다’라는 결정은 쉽게 내리는 편이어서 작년부터 올해까지 참으로 많은 여행을 갔고, 갈 예정이다. 간단히 추려보면;


작년 5월 엄마와 프랑스 파리

작년 8월 일본에서 친구가 온대서 영국 런던

작년 10월 전 직장 동료들을 만나러 미국 뉴헤이븐, 보스턴, 그리고 뉴욕

작년 11월 친구들이랑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해 1월 엄마의 친구를 만나러 뉴캐슬

올해 2월 애인이랑 노르웨이 오슬로, 스웨덴 스톡홀름, 핀란드 헬싱키

올해 3월 독일 한 달 살러 오는 친구랑 베를린


이렇게 적고 보니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인싸 같지만 사실과는 전혀 다르다. 누구누구를 만나러 가는 여행이 대부분이지만 사실은 혼자 그 여행지에 가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실컷 하다가 심심해질 때쯤 지인을 만나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는, 그런 여행이 가장 좋다. 특히 현지에 사는 친구가 있으면 마치 상경했던 자식이 고향에 돌아오는 마냥 푸근해지는 느낌이 있다. 낯선 환경에 설레면서도 한껏 곤두섰던 신경이 지인을 만나는 순간 싹 풀려버린다. 내가 있는 장소가 더 이상 새로운 곳이 아니라 마치 아주 잘 알고 있는 고향의 어느 공간 같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아는 얼굴과 함께 오랜만에 실컷 수다를 떨고 맛있는 것만큼 힘이 되는 것이 있을까.


혼자 가는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이 주는 어떤 비장함과 책임감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 짐을 가방에 차곡차곡 쌀 때,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공항으로 향할 때 나는 생각한다. “이제부터는 나 혼자다. 정신 바짝 차리고 다니자.” 그리고 그때 이어폰을 통해 나의 다짐을 더 공고히 해주는 빠른 비트는 팝송이 흘러나온다. 나는 혼자 여행을 다닐 때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매번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다. 예를 들면, 여행 다닐 때를 한정 나는 지도를 진짜 잘 본다. 배가 고플 때, 잠시 쉬어야 할 때 구글맵을 통해 내 주변 맛집을 귀신같이 찾아낸다. 촘촘한 계획보다 우연이 가져다주는 발견을 선호한다. 웬만한 곳은 다 걸어 다니면서도 사진도 다 찍으면서도 효율적으로 시간을 쓴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발견; 20대 후반이 되면서 숙박비에 쓰는 돈이 아깝지 않게 되었다. 스무 살 12인실 도미토리를 전전하던 시절의 여행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어제 헬싱키에서 맨체스터로 돌아오는 비행기가 착륙할 때 나는 생각했다. “이제 한 달 뒤면 베를린 가네!” 나는 여행지에서도 다음 여행에 설레는, 그런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또 항공권과 기차표를 살 것이다. 막상 여행 하루 전에는 만사 귀찮아 버릴 것을 알아도, 여행 당일 아침 비장한 마음을 다시 한번 느끼기 위해. 그리고 그곳이 어디이건 몰랐던 나의 모습을 새로이 발견하기 위해. 영국까지 워홀 왔는데 여행 안 다니면 아깝잖아.


어느 직장 동료가 말했다. “너는 웬만한 영국인보다 영국 더 많이 다녔을 거야!”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영국 뿐만이 아닐텐데...'

여행의 끝에 다른 여행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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