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 3번에 염증 있고요. 5번도 적어주세요. 그리고 위쪽 1번, 2번 그리고 3번까지.”
“전체 잇몸 중에 35%에 염증이 있고 건드렸을 때 피가 납니다. 간호사, 지난 번은 몇 퍼센트였죠?” “39퍼센트요.”
“네, 지난번 39퍼센트보다는 조금 좋아졌지만 관리 안 하시면 나아지는 건 없습니다.”
어제 치과에 다녀왔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 흔한 충치 한 번 없었던 건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딱히 단 것을 안 먹거나 양치질을 꼬박꼬박 잘한 것은 아니다. 그냥 남들 사는 것처럼 지냈는데 운이 좋았던 것이겠지. 고등학교 때 수학 과외를 해주셨던 선생님은 치아 문제로 많은 고생을 하셨는데, 어쩌다 나온 건강 이야기에 선생님은 “치아 건강이 평생을 좌우한다”며 나에게 중요성을 설파하셨다. 그럼에도 나는 어린 마음에 ‘치아 하나는 건강하게 타고 자랐지’라며 스스로 우쭐대곤 했다.
그러다가 20대 중반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몇 년 전부터 양치질을 할 때 유독 한쪽 잇몸에서 자꾸 피가 나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면 멈추겠지’하는 안일한 생각은 상황을 호전시키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주변에 추천받은 치과에 방문해 스케일링을 받으면서 나의 잇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스케일링을 해주셨던 치과 선생님은 여기저기 피가 터져 새 빨개진 나의 상태를 보시며 그 당시 유행하던 미국 칫솔 브랜드인 GUM을 소개해주셨다. “피가 나서 아프더라도 칫솔질 잘해야 해요. 처음 며칠을 피가 나도 그다음에는 염증이 가라앉아 괜찮아지는 거예요.” 피로 물들어 새 빨개진 입을 헹구며 충격에 빠진 나는 그다음부터 엄격한 칫솔질을 시작했다…라고 하면 이 글이 여기서 끝나겠지만, 나는 나의 노력을 쏟는 대신 정기적으로 스케일링을 받는 방법을 택해버렸다.
영국에 오기 직전 해야 할 수많은 일들’ 중 치과 가기’를 빼놓지 않았다. 왜 다들 해외 장기 체류하기 전에 병원 순방을 한다고 하지 않던가. 먼 타지에서 혹여나 건강 문제라도 생기면 골치 아파질 것이 뻔했기에 나도 부지런히 병원을 다니며 내 몸 이곳저곳이 괜찮은 지 살폈다.
나의 집(현재는 부모님의 집) 근처에는 몇 년 전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그에 따라 병원, 식당, 편의점 등 우리 아파트 근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각종 편의시설이 생겨났다. 그 단지 안 치과를 선택한 이유도 도보 5분 거리의 새로 생긴 의원이며 네이버 지도 리뷰가 좋았기 때문이다. (리뷰의 신뢰성 등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깨끗한 흰색 벽지에 나지막이 흐르는 클래식. 여는 치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점 하나. 처음 방문한 나에게 ‘입 안 박테리아 검사’를 제안해 주셨다. 그것은 여느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많이 했을 법한, 입 안을 면봉으로 휙 문지르고 유리판 위에 올린 후 현미경으로 살펴보는 검사였다. “한 번 직접 보세요.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아실 수 있게 이런 검사를 제공해드리고 있답니다.” 현미경 너머에는 흑백의 배경에 무엇이 작은 것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치료를 받은 지 일 년 넘게 영국에서는 치과에 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NHS라는 공공 의료 기관이 있어서 무료로 할 수도 있지만, 엄청난 수고로움과 대기를 감내할 만큼의 인내심은 없었다. 그러다가 올해 여름부터 칫솔질을 할 때 다시 피가 나기 시작하고 특정 잇몸이 평소에도 아파 고생하게 되었다. 더 이상 내 몸이 보내는 항의를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내가 다니는 회사에는 건강보험이 따로 되어 있어서 전화 한 번으로 간편하게 진료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주변 회사 사람들에게 왜 이제 것 안 했냐고 핀잔을 들을 만했다. 약간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첫 30분은 엑스레이를 찍고 치과의사와 나의 상태를 확인했고 나머지 30분은 스케일링을 받았다. ‘얼마나 자주 칫솔질을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나는 고개를 뻣뻣하게 들고 대답하기가 민망했다. 이제 와서 부끄러워하는 건 의미가 없다. 나의 잇몸은 이미 고통받고 있었다.
“생각보다 플라그가 많네요. 오늘 안으로는 다 못할 것 같은데요.” 의자에 누워 입을 벌리자 선생님이 가장 처음 한 말이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스케일링을 받을 때 아무도 나한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는데! 너무 솔직하신 것 아닌가? 내 상태가 그렇게 안 좋나?’ 누워서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가장 먼저 얼마나 많은 부위에 염증이 있는지 확인하신 선생님은 그 이후로 지체 없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배경으로는 신나는 음악의 라디오가 흘러나오고 의사와 간호사가 편하게 대화하는 와중에도 뾰족한 것이 나를 찌르고, 피가 나고, 침이 고이는 이 상황이 굉장히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잠시의 고통으로 내 상태가 나아질 수 있다면, 견딜 수 있다.
꼭 치실을 사용해 치아를 관리하라던 선생님의 당부에, 나는 집으로 가는 길 가글과 두 종류의 치실을 구매했다. 더구나 3개월 뒤 다시 스케일링 예약을 잡았기 때문에 마치 숙제 검사를 당하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제는 치실 잘 사용하자’는 나의 다짐에 따라 처음 며칠 밤 치실과의 전쟁을 벌였다. 비위가 정말 약한 나에게 거울 앞에서 치실을 치아 사이에 넣고 피가 나는 나의 잇몸을 보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그렇게 다짐은 또다시 오래가지 못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두 번째 스케일링 약속을 두 번이나 미룬 나에게 더 이상의 양심은 없었다. 그동안 치실도 잘 쓰지 않아 혼날 것이 뻔했지만 오늘 한번 쓴다고 나아질 잇몸도 아니었다. 조금은 비장한 마음으로 다시 치과를 찾았고, 그동안 어떻게 관리했다는 선생님의 질문에 고개를 다시 푹 수겼다. 나의 잇몸 중 35%에 염증이 있어서 피가 난다는 말. 그리고 관리 안 하면 나아지는 건 없다는 말에 스스로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오늘도 열심히 나의 치아를 스케일링해 주신 선생님은 3개월 후에 다시 보자며 웃으며 나를 보내주셨고 나는 다시 숙제를 받들고 집으로 왔다.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귀찮다는 사실에 나를 관리하는 일에 소홀해지고만 나이다. 남들이 나의 건강을 위해 해주는 말이 이제 듣기 싫은 나이도 지났다. 오히려 이제는 내가 스스로 체감하며 남들에게 잇몸이 아플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력이 없을 때 뭘 먹으면 좋은 지 물어보는 나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행동력이 부족한 체 ‘염증 많은 삶’을 살고 있다. 잇몸의 35%가 염증으로 고통받는 것은 물론, 피로로 눈가도 칙칙하고 어깨도 항상 아프며 피부도 점점 건조해져 이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제 어린 나의 치기 어린 ‘무턱대고 괜찮겠지’가 통하지 않게 되었다.
“남들이 여러 번 얘기해야 비로소 행동으로 옮기는 편인 것 같아요.” 나의 상담 선생님이 언젠가 말씀하셨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에는 거침없이 도전하는데, 정작 필요하거나 나를 돌보는 일에는 소홀한 것 같다고. 스스로 인지하는 게 첫걸을 이라는 자기 위로적 메시지를 기억하며 더는 미루지 말자고 다짐한다. 이 다짐이 향후 3개월 동안 이어져야 치과에서 그만 혼날 텐데. 염증 없는 삶이 머지않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