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영국 살이가 막을 내렸습니다. 결국 가장 그리운 건 푸르른 여름.
가장 즐겨 듣는 팟캐스트 중 하나인 ‘오지은 임이랑의 무슨 애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와이파이 안 되는 비행기 안이 가장 일하기 좋은 장소이다.” 두 명의 작가가 수많은 마감을 방해물이 없는 비행기 안에서 해치웠다는 그런 자조적인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해보고 싶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잠깐 다녀오는 여행이 아니라 진득하니 앉아 있어야 해서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나서도 할 게 없어서 결국 글을 쓰게 되는 그런 비행이어야 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맨체스터에서 아부다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아이패드를 꺼냈다.
이 글은 나의 영국 생활이 2년 하고도 1개월이 지나 마침내 막을 내렸다는, 조금은 슬프고 감상적인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한다. 그렇지만 나의 삶은 대부분 무언가에 쫓기며 바쁘게 지나가고, 하필 아침 9시 비행을 잡은 덕에 탑승구까지 뛰어갔다는, 그런 이야기를 먼저 하려 한다.
원래 내가 원하던 항공권은 터키 항공사의 저녁 비행이었다. 오후 5시에 출발해서 밤 시간에 이스탄불에 도착하고 그다음 날 오후 5시에 인천에 떨어지는 스케줄이었다. 영국에 왔을 때처럼 유스 항공권을 끊으려고 했는데 만 25세가 넘어서 불가능하다는 메일 답변을 받았다. 내가 이제 어리지 않다는 사실을 언제쯤 깨달을까? 2년이라는 시간이 진짜 훌쩍 가버렸다.
출국 일주일 전까지 비행기표를 사지 않아 내 마음은 점점 초조해졌고 고민만 깊어졌다. 낮에는 사람들을 만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다가 결국 새벽 1시에 항공권을 결제하기에 이르렸다. 참고로 정신이 몽롱한 새벽에는 아무것도 사면 안된다.
30kg의 수화물에 10kg를 추가하면 원래 비행 편과 가격이 같아지는 것을 확인하고 처음으로 중동 항공사인 에티하드를 선택했다. 아침 일찍 일어날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지만 서울에 점심때 도착해서 부모님과 일찍 만날 생각이었다. 여기서 문제는 내가 단 3만 원을 아끼자고 항공사 홈페이지가 아닌 여행사를 통해 예약했고 그로 인해 수화물 추가가 온라인으로 안된다는 것이었다. 새벽 1시 반은 홈페이지 에러를 고치기에 전혀 좋은 시간이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에티하드 고객 센터 채팅을 통해 문제 상황을 알렸고, 이들은 당연히 추가가 가능하다며 온라인 보다 무려 2배 비싼 140 파운드, 한화로 약 23만 원을 요구했다. 30분 동안 상담원과 씨름한 결과 온라인에서만 할인이 된다는 얘기만 반복되었고, 홈페이지 오류를 고쳐보겠다며 일단락되었다. 그렇지만 이후 아무도 나에게 연락을 주지 않았고 홈페이지는 끝까지 고쳐지지 않았다.
이미 40kg에 맞춰 싸놓은 짐을 다시 싸는 건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다.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넣는다 ‘에서 ‘필요한 것만 넣는다’로 대명제가 바뀌며 내가 가진 모든 물건을 종류별로 정리해서 우선순위를 매겼고, 많은 것들이 가차 없이 버려졌다. 진작에 했었어야 하는 일인데, 어쩌면 지금 인생의 큰 깨달음을 얻고 있는지도 모른다.
짐 싸기와 집 정리, 청소는 정말이지 끝나지 않았다. 고작 이틀 안에 될 거라고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2달은 잡았어야 했다. 영국에서의 마지막 날을 재밌게 보내고 싶었지만 하루 종일 버리고 청소하고 남은 음식을 먹었다. 그냥 버리기 아까운 것들은 사진을 찍어서 친구들에게 보냈고 한 명씩 다른 시간대에 집 앞에 찾아왔다. 보따리를 싸들고 아파트 앞에서 만나 짐을 전달하고 잠깐 얘기하고 다시 보자고 약속했다. 한 걸음에 달려와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 이렇게라도 마지막 날까지 친구들을 볼 수 있는 것이 정말 고마웠다.
큰 캐리어 30kg, 작은 캐리어 7.6kg, 백팩 9kg, 그리고 작은 쇼핑백 하나로 나의 모든 짐이 다 꾸려졌다. 내 선에 관리가 안 되는 짐들은 이미 3박스 정도 친구와 애인에게 보냈다. 4kg짜리 택배 박스 하나만 부치면 끝이었다. 2년 동안의 생활이 차근차근 정리되는 모습에 괜히 아쉬웠다. 그래도 다음 생에는 미니멀리스트로 살 수 있을까 싶은 자조 섞인 웃음도 나왔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정리하느라 어제도 새벽 1시에 잤다. 4시간 잘 알람을 맞추는 건 정말이지 슬픈 일이다. 차라리 안 자고 잠깐 눕는다고 생각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더 이로운 것 같다. 애인과 마지막으로 속닥속닥 떠들다가 어느새 잠들었다.
오늘 아침은 정말이지 혼돈 그 자제였다. 알람을 듣고 잘 일어나서 준비한 것까진 좋았는데, 가기 전에 차를 마시겠다며 시간이 지체되었고, 택배로 보내야 할 박스의 송장도 구매하지 못했다. 예상은 했지만 나의 짐은 정말이지 너무 무거웠고 새벽에 사람이 적었는데도 걸음은 지체되었다. 공항 가는 기차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에게 전화가 왔고 마음이 너무 조급하지만 손이 없어 전화도 받지 못했다. 역이 도착해 보니 타러면 기차는 이미 떠났고 친구도 그 기차와 함께 공항으로 갔다. 다행히 15분 뒤에 다음 열차가 있었고 나와 애인은 무사히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급한 마음으로 기차에서 내렸을 때 친구들이 보였다. 이렇게 이른 아침 나를 보러 공항까지 와준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다. 다들 정신없는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반가웠고, 이제 이곳을 영영 떠난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기쁨도 잠시, 나의 무거운 짐들이 안전하게 통과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맹렬하게 카운터로 달려갔다. 에티하드 카운터는 공교롭게도 터키항공 바로 옆이었는데, 줄이 훨씬 짧은 걸 보고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나처럼 백팩에 작은 캐리어, 큰 캐리어까지 든 사람들이 보여 조금은 안심되었다. 철저하게 무게를 맞췄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초초해졌고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누구보다도 친절하게 직원에게 인사했다. 다행히 큰 캐리어와 작은 캐리어 모두 무게를 통과했고, 나의 가득 찬 백팩을 본 직원은 친절하게도 체크인 전에 가방 안에 든걸 캐리어에 조금 옮기라고도 조언해 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게이트에서 돈을 더 낼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철저하게 준비하길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직원의 친절이 고마웠다.
보안검색을 통과하기 전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는데도 나를 아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게 고마웠고 내년에 한국에 놀러 오겠다고 약속했다. 아쉬운 마음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8월이면 한국에 오는 애인도 나와 떨어지는걸 무척이나 속상해했다. 그래도 곧 볼 거라고 위로하는 나의 마음이 잘 전달되길 바랄 뿐이었다.
짐이 워낙 많아서일까, 보안 검색대를 통과할 때 두 개의 짐이 걸렸고 사람이 많이 않은데도 느릿느릿한 서비스 덕에 내 차례까지 꽤나 기다렸다. 맨체스터 공항은 아직도 오래된 설비라 가방 안에 모든 것을 꺼내야 하는데 고작 키보드 때문에 걸린 것이 맘에 안 들었다. 특히 작은 캐리어를 열 때 안에 있는 많은 것들이 쏟아졌고, 짐을 새로 싸다시피 하는 바람에 시간이 배로 걸렸다. 게이트가 열리기 10분 전까지 짐을 정리하느라 온몸에 땀이 났고, ‘역시 마지막까지 쉽지 않구나 ‘하며 약간은 포기한 채 게이트로 뛰어갔다. 다행히 게이트에서 내 백팩의 사이즈를 보고 나를 멈춰 세우는 사람은 없었다.
기차역을 가기 위해 수없이 걸었던 그 길, 친구들의 모습, 날씨 좋은 영국의 여름을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콕콕 찌르듯이 아프다. 그럼에도 한국에 놓고 온 내 친구들, 나를 보고 반가워할 부모님을 생각하면 기대감에 부풀어 오른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내 인생의 다음 챕터에 시작되는 것을 이제는 조금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 어른이 되었구나, 스스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