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멈춤, 그리고 머무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날 아무 약속도 없고, 특별할 일정이 없는 날은 마음이 너무 편하고 행복하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의 홀가분함과 자유로움이 주는 행복이 좋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난 때때로 심심한 것을 즐긴다.
빈둥빈둥 게으름을 피우다가, 갑자기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하고,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가고,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하루 종일 빈둥댈 수 있는 그런 여백의 날을 좋아한다. 빈 도화지에 점 하나 찍는 날도 있고, 선 하나 긋는 날도 있고, 수채화를 그리는 날도 있는 지금의 삶이 좋다.
도표나 그래프처럼 짜여진 틀 속을 뭔가로 빽빽하게 채워 넣으며 살 때, 뿌듯하고 행복했었던 적도 있다. 잠을 줄여가며 바쁘게 살고 만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다는 것에 괜한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도 봤지만, 그땐 화려함 속에 가려진 불편함의 그늘이 있었다.
‘선생님을 만나 제 인생이 바뀌었어요.’라는 말 한마디에 사명과 보람을 느끼며 내 인생을 갈아넣기도 했으나, 뭔가 균형이 깨진 내 삶은 결국 정신적인 쫓김 현상과 신체적인 건강의 악화로 돌아왔다. 그땐, 무언가 성취를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계속 도전하고 성취하는 삶에 도취되어 살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달려가고 있었을까?
그런 내 삶에 본의 아니게 찾아온 코로나로 인해서 ‘잠시 멈춤’을 해보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땐 ‘관성의 법칙’이 내 삶을 이끌고 있었고, ‘성취욕과 인정의 욕구’에 사로잡힌 채 ‘멈출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겉으로 보여지는 우월감에 도취되어 속으로 곪아터지는 열등감을 꾹꾹 누른 채, 그것이 행복이라고 스스로에게 세뇌를 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그리고 멈추었다.
하루에도 몇 번, ‘멈춤과 머무름’이 요즘의 내 삶의 모습이다. 아무것도 아니어도 괜찮고,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는 것. 그냥 감사하고 좋다.
요즘은 일도 거의 하지 않고, 하루의 풍경 속에 담겨진 은은한 삶을 즐기고 있다.
‘Lazy’한 삶이 좋다.
남의 눈을 의식하고 비교하며, 아등바등 살지 않는 내 삶이 좋다. 내 삶의 느낌에 집중하고 감사하고 살아갈 수 있음이 좋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내 볼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백의 삶이 좋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치열했던 삶이 있었기에 지금이 더 좋은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 느낌아니까. 그때 못 보던 것을, 보고 느끼며 삶이 주는 가르침에 감사하는 요즘이다. 지금의 내 삶은 천천히 흐르고 있다. 그리 내세울 것 없는 수수한 삶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