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금태 Apr 23. 2021

잠도 오지 않는 밤에(5)

소리그림과 나

막연하게 과학자나 대통령을 장래 희망으로 삼던 시기를 지나 처음으로 하고 싶다 생각한 일이 음반가게 점원이었다. 다행히도 내 음악의 길잡이이자 지금도 굳건하게 버텨주는 훌륭한 음반가게를 학창 시절에 만났다. 그리고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든 결과, 21살이 되던 해 그곳에서 ‘불친절한’ 점원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주인장의 내공이 굉장한 곳에서 일한다는 것은 음반가게 점원으로서는 최고의 혜택이었다. 그 내공을 믿고 드나드는 또 다른 내공의 사람들의 이야기와 접하기 힘든 다양한 음반들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내 음악의 히스토리는 그곳에서 일하며 대부분 써나갈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편식 없이 다양한 음악을 누구보다 많이 접하고 들었던 시기였다.


요즘은 독립음반 매장이 새롭게 생겼단 얘길 들으면 반가운 마음이 든다. 그 맘에 멀리 있더라도 직접 방문해 주인장과 짧은 담소를 나누며 몇 장의 음반을 사곤 한다. 난 책과 음반은 되도록 매장에서 직접 구매하는 걸 선호한다. 아무래도 들었다 놨다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꽤 큰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구입한 책과 음반은 시간이 흐른 뒤에또 다른 추억을 선사하곤 한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쉽게 다가오는 것은 금세 잊힌다.

지금도 여전한 마음의 고향 소리그림

불현듯 내가 처음으로 일한 음반가게 <소리그림>에 가고 싶단 생각이 마구 들었다.

재수 시절 팻 메쓰니의 ‘Are you going with me’를 듣고 음악의 힘을 처음으로 느낀 그곳. 즐겁게 음악에 대해 얘기했던 그곳. 중고등학생들에게 적당히 구라도 치며 음반 좀 팔아먹던 그곳.

오래간만에 <소리그림> 들려 가게 형이랑 소주  잔을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니 시간이 많이 흘렀음이 느껴졌다. 아직도  손길이 닿았던 악성 재고들을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근래 들어 불안하고 마냥 우울했던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 또한 느껴졌다. 돌이키니 모든 장면 장면들이 그리운 간이었다.


형에게 재즈 피아노 앨범으로 추천 좀 해달라고 얘기했다. 어릴 때부터 형의 추천은 나에게 딱 이었다. 그래서 내 음악 취향이 소리그림화 되긴 했다만… ㅎㅎ

요즘 재즈 음반들을 찾아 듣는 내게 '얘가 이제는 맛이 갔구나'라는 소리를 들었다. 가게 형에 보장하는 두 장의 재즈 명반을 봉투에 담아 집에 오는 길은, 어린 시절 추천받은 메탈 음반을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그때처럼 두근두근 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CD 비닐을 벗기고 집 안에 모든 불을 끄고 오디오에 텔로니어스 몽크의 [Thelonious alone in San Francisco] 앨범을 걸었다.

나만을 위한 야밤의 음악 감상실 문이 열리는 순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잠도 오지 않는 밤에(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