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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금태 Apr 21. 2021

잠도 오지 않는 밤에(4)

피아노와 나

1999년인가. 좋은 기회로 [유희열의 FM 음악도시] 게스트로 나갔을 때 일이다.

정신없던 녹음이 끝나고 희열이 형은 내게 평소 다루는 악기가 있는지 물었다. 다루는 악기라... 그 당시 내게 악기 연주는 언감생심, 그냥 음악은 듣는 걸로만으로도 만족하던 때였다. 그래서 악기는 평생 만져본 적도 없고 배울 생각도 한 적이 없다고 대답을 했다. 내 대답을 들은 그는 음악을 이렇게나 열심히 이것저것 찾아 듣는데 악기를 배우고 싶은 맘이 전혀 든 적이 없냐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시간은 흘러 여전히 난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 '듣는'것만으로 만족하며 지냈다. 그러다 2017년 초 우연한 기회로 피아노를 접하게 된다.

처음으로 레슨을 받은 날, 화음이 쌓여 동요 <비행기>가 세상 제일 멋진 소리를 내는 <비행기>가 되는 근사한 경험을 하게 된 지금도 잊히지 않는 그 날.

그 날 이후 내 마음을 내가 지닌 짧은 언어로는 낼 수 없던 그 마음의 소리를 대신해주는 피아노가 좋아졌다.


비록 빌린 전자 키보드였지만, 처음으로 내 키보드도 가질 수 있었다. 100페이지가량의 매뉴얼을 프린트해서 버튼 하나하나 누르며 기능을 익혔다. 전자 키보드가 내는 여러 가지 다양한 소리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동네 꼬마들이 다니는 피아노 학원에 등록도 하고 피아노 레슨 어플을 정기 구독하며, 점점 피아노를 알아 갔다.

처음으로 구입한 전자 키보드

피아노는 알면 알수록 좋은 친구가 되어줬다. 비록 손가락은 뻣뻣하고 건반의 위치는 헤매기 일수며, 계이름 위치도 바로 읽을 수는 없었지만 그 앞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그냥 좋았다. 나답지 않게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잘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첫 번째 키보드를 보내고, 나의 두 번째 키보드를 배송받은 날. 아니 내 돈으로 처음으로 산 악기니까 나의 첫 키보드와 설렘 가득한 만남을 가진 날. 박스를 뜯으며 작은 몇 가지 목표도 세웠다. 목표에 도달하려면 시간은 꽤 오래 걸리겠지만. -여전히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는 중이다.-


악기란 것이 참 묘하다. 단순히 누르니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니라 그 소리에는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음악을 듣기만 했을 때 머리로만 알던 사실을 직접 만지고 눌러보니 그 마음의 표현이 가슴으로 느껴진다.

음악을 듣고 그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그 음악에 담긴 마음을 같이 나누고 공유하는 의미도 있음을 직접 체험하고야 깨달았다.

당시 내 대답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희열이 형의 의미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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