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걷기_오타루
삿포로 역에서 JR을 40분 정도 타고 미나미 오타루 역에서 내렸다. 전철 창가로 푸르게 펼쳐지는 고요한 겨울 바다와 산 듬성듬성 아직은 녹지 않은 하얀 눈은 4월임에도 이 곳이 겨울 왕국 삿포로 임을 보여 줬다.
작은 편의점과 매표소, 두 명(?)의 역무원, 딱 시골역 크기에 걸맞은 소박한 구성을 갖춘 미나미 오타루 역은, 작은 역이 가지는 따뜻한 기운을 담고 있어 괜히 기분이 푸근해졌다.
오타루는 전 국민이 '오이시이'와 더불어 다 알고 있는 일본말 '오겡키데스까?'란 명대사를 남긴 이와이 슌지의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이 된 곳이다.
영화의 팬들은 오타루의 거리 곳곳을 거닐며, 영화 속 명장면의 장소들을 찾아다닌다 하는데, 영화를 제대로 못 본 나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장면이 되고 말았다.
다음에는 영화를 보고 한번 영화 속 그곳을 찾아 다시 와봐야겠다.
성수기를 지난 오타루 거리는, 소수의 관광객을 제외하면 시종 조용한 인상을 풍겼다. 딱히 목적을 지닌 여행을 하는 타입이 아니라서 하루 종일 발길 닿는 대로 오타루 이곳저곳을 걸어 다녔다.
유명하다는 치즈 케이크와 버터 쿠키도 먹고, 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배경이 된 초밥집에서 초밥도 양껏 즐기며 눈과 배 모두 풍족해지는 오타루 산책이었다.
중소도시가 좋은 점이, 대도시와 달리 건물들 높이가 높지 않다는 것이다. 낮은 건물이 대부분이라 고개를 들지 않아도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무언가 안정적인 기분이 들게 한다.
언제부터인가. 아파트부터 시작해서 한없이 높아지는 건물들을 바라보면 건물의 높이가 사람의 욕심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탐욕과 소유욕, 갖은 욕망들을 차곡차곡 쌓아 고개를 아무리 들어도 감당이 안 되는 욕심의 건물들.
나도 한동안 그 욕심에 끌려다녔다. 목 아프게 고개를 높이 들고 나를 사랑하는 주변 사람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고개를 들지 않아도 되는 곳에 있는 내 눈높이에 맞는 사람들의 손을 잡고 함께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