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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금태 May 05. 2021

잠도 오지 않는 밤에(6)

건담과 나

6년이다. 내가 집의 빚을 갚는데 걸린 시간이.


2002년 겨울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못한 채, 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났다. 당시 24살이었던 난 '아들'이란 이름에 '가장'이란 이름도 더해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야 했다.

매사 집념을 불태우며 열심히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어진 역할에는 꽤 충실한 성격인지라 이후 나의 하루는 아버지의 자리를 채우기 위한 고군분투의 연속이었다.


새벽 지하철 무가지를 나눠주며 시작한 하루는 오후에는 학원 강사로 밤에는 과외 선생, 집으로 돌아와 기출 시험지 교정 알바로 마무리되었다. 일이 없는 주말은 집 근처 편의점 알바를 구해 시중에 판매하는 담배 이름도 다 알 수 있게 되었다. 여러 역할로 변신하는 하루하루였다. 절망적이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어느 주말 편의점 박스를 나르며, 이렇게도 여러 일을 할 수 있는 체력을 남겨 준 아버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가 남긴 빚과 엄마의 병원비, 돈이 나가야 할 곳이 많았다.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찾아 해내야 이 빚을 갚아 나갈 수 있었다. 그래도 이것을 당연히 받아들였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뿌듯한 나날이었다. 다행히 학원에서도 점차 자리가 잡히며 버는 돈도 늘어났다. 꾸준히 꼬박꼬박 돈을 갚아 나가며 6년이 흘렀다.


마지막 남은 빚을 은행에 갚은 날, 수고하셨다란 담당자의 말을 들었을 때 시원함 보단 헛헛함이 밀려왔다. 뭐랄까? 이제는 뭘 하지란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한 가지 목표만 보며 달려왔는데 그것이 이제 끝이 나고야 만 것이다.

당시 돈은, 풍족하고 잘 벌게 되었기에 빚으로 갚던 돈의 일부를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건프라였다. 어렸을 때, 아빠 손을 잡고 함께 산 나의 첫 프라모델이 건담이었다. 80년 대 중반 2,000원이 넘는 꽤 비싼 건담이었다. 함께 사준 건담 책 또한 나의 건담 사랑에 한몫하였다. 후에 알고 보니 프라모델은 퍼스트 건담이었고, 책은 일 년 전쟁에 대한 내용이었다.


집으로 택배가 매일 도착했고, 매일 밤 나의 두 손은 건담 프라모델을 만드는데 여념이 없었다. 단순히 조립에만 머물지 않고 도색에도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프라 공방도 유지하며, 집에는 프라모델 컴프레서와 에어 브러시도 구입해 4년 정도 건프라에 푹 빠져 지냈다.

건프라 40주년을 맞아 모든 기술력이 동원된 최고의 퍼스트 건담이 발매되었다. 가격도 슬프게도 최고다. 초기에는 물량이 적어 가격이 폭등되는 일도 있었으나 점차 안정적 공급이 이뤄지며 예전보다 어렵지 않게 구할  있게 됐다.

마침 어린이 날이라 쓰고 어른이 날이라 읽는 기념일이 다가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퍼스트 건담이 지난 40년의 모든 기술력이 동원되어 발매됐는데 이것을 어찌 지나칠 수 있을까. 과감히 구매... 가 아닌 선물을 사달라 졸랐고 이렇게 손에 넣게 되었다.


박스만 봐도 기분이 좋다. 잠자던 건프라에 대한 열정도 불타오른다. 그리고 고사리 같은 작은 손에 프라모델을 꼭 쥐어주던 아버지의 웃는 얼굴도 떠오른다. 마흔셋, 육체적 사회적 어른의 모습이지만 마음만은 어린이고 싶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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